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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유망주였던 고 최숙현 선수가 가혹행위에 시달려 사망 전 최 선수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고 알려진 가운데 인권위가 관련 부처와 문재인 대통령에게 ‘독립기구를 만들어 신고와 처벌을 강화하자’는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등 늦장처리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해 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 여성가족부와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특조단)을 꾸리고 실태조사에 나섰다. 조재범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고발한 이후 스포츠의 고질적인 폭력 문제를 뿌리 뽑겠다고 나온, 체육계 미투 확산에 따른 조치였다.

특조단은 지난해 7월 22일~8월 5일(15일간) 총 1251명의 실업팀 선수를 대상으로 인권 실태 조사를 했다. 17개 시도와 40여 개 공공기관 소속 실업 선수 56개 종목의 전체 선수 총 8289명 중 4069명에게 ‘모바일 설문조사’를 진행, 1251명이 답을 완료했다. 경주시청도 포함됐다. 대통령에게 보고할 권고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실태조사 결과가 심각할 경우 인권위가 당국에 수사 의뢰를 하기도 하는데 실태조사에서 약 200명인 선수가 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에도 수사의뢰, 고발 등 후속 조치가 없었다. 아쉬움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이 조사에서 경주시청 팀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선수들이 15명 안팎에 달했다.

이후 전국체전 경기장과 숙소를 현장 조사하고 실업팀 선수와 체육 단체 기관종사자 성폭력 등 조사한 결과 개선방안을 마련해 국가기관 등에 권고하기로 전원위원회에서 의결했지만 이를 권고하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나 최숙현 선수 사태가 터진 뒤 지난 6일 당시 의결 건을 재상정해 다시 의결하는 방식이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전날 전원위원회를 개최하고 고 최숙현 선수의 비극적 피해를 살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2019년 2월부터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운영하며 스포츠계 선수 등 폭력과 성폭력 피해에 대한 보호체계 전반에 대한 직권조사를 해 같은 해 12월 전원위원회에서 관계국가기관 등에 새부개선방안을 권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분산된 체육 행정 주체들만으로 폭력 등 피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대통령에게 독립적이고 전문적 조사기구인 인권위 역할의 강화 필요성을 표명하기로 했다고도 해명했다.

인권위는 대통령에게 하는 권고가 지연된 데 대해, 지난 2월부터 확산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국가기관과 국민의 방역과 생존 노력이 최우선시되면서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결정한 권고 사항 중 일부 권고 내용이나 적용 법리가 명확하지 못한 사항을 보완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대통령에게 더욱 근본적인 국가적 책무를 강조하는 권고를 하기로 했다고 결정했다. 이와 함께 현재 체육인들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보호하는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개선사항도 보완해 세부 권고의 주문으로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위의 이같은 해명에도 석연치 않는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상정된 안건이 재상정되기는 해도 의결이 된 안건이 6개월간 해당 기관에 통보가 안 됐기 때문이다. 전원위 의결까지 내린 사항을 다시 논의할뿐더러 통상 전원위 결정부터 기관 권고까지 최대 3개월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6개월간 권고를 묵힌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대대적 실태조사를 진행했지만 인권위 권고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최숙현 선수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인권위가 권고했다면 최 선수의 죽음을 최소한 막았을 것이란 얘기다.

인권위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 조사 구제규칙 35조에 따르면 법에 따라 권고를 의결한 경우 의결일로부터 40일 이내 통지해야 한다. 위원회 규칙에 어긋난 상황이다.

한편 최 선수 측은 지난 2월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가 취하해 각하 결정을 받았다. 인권위는 최근 진정 내용을 토대로 사실 관계 등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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