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시선으로 여성 신체
성적 대상화 하던 미디어
‘미스터트롯’에선 성별 역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첫 회 장면. ©TV조선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첫 회 장면. ©TV조선

 

방송이 끝나면 열기가 수그러질 또 하나의 오디션 프로그램일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본 프로그램이 끝나고 ‘TOP 7인’은 방송사의 경계와 음악 프로그램, 리얼리티쇼, 코미디 등 예능 프로그램의 세부 장르를 넘어 그야말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광고 모델로도 곳곳에 등장한다. 이들의 출연 소식은 연예 뉴스를 통해 화제로 재생산되고 시청률 급상승으로 연결된다. 지난 1월 초 TV조선에서 시작한 ‘미스터트롯’은 올해 최고의 TV 예능 성공작이자 젠더 관점에서 문제작이다.

‘미스터트롯’이라는 제목부터 문제적이다. ‘미스OOO’를 여성에 대한 성 상품화로 반대했던 일을 떠올려보면, 미스터 트롯 진선미를 뜨거운 팬덤으로 소화하는 현상에 시비를 걸어볼만하지 않은가? 1만 5000명의 신청자 중 101명을 선발해 11주에 걸쳐 경연을 진행한 ‘미스터트롯’은 진선미 3인을 포함한 TOP7을 결정하는 것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TOP7’은 전국의 시청자로부터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들려주는 ‘사랑의 콜센터’와 코미디를 가미한 예능 ‘뽕숭아학당’을 이끌 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에도 인기 게스트로 나서고 있다. ‘미스터트롯’에서 만들어진 7인의 캐릭터와 이미지는 여타 프로그램으로 전이되고 상호작용하면서 TOP7에 대한 서사는 켜켜이 쌓여가고, 이들을 둘러싼 세계는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 명이 은근히 암시하듯, 남성 출연진들이 과거 미디어가 여성을 상품화/대상화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 속 여성들의 몸은 남성의 시선으로 입술, 허벅지, 가슴골, 다리 등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하면서 파편화되어 왔다. ‘미스터트롯’은 이를 역으로 차용한다. 오디션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남성성을 전시하는 스펙터클이었다. 현란한 골반 댄스와 엉덩이 흔들기, 풀어헤친 가슴, 탄탄한 허벅지를 강조하는 춤들이 때론 진지하고 때론 유머러스하게 의자춤, 뮤지컬, 물 쇼 등 성적인 코드가 뚜렷한 안무를 통해 강조되었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농염 섹시, 치명적, 섹시 치트키, 꿀렁꿀렁’이라는 자막과 함께, 또 장윤정 등 여성 마스터(심사위원)들이 ‘어머어머’ 감탄사를 연발하며 경탄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혹은 즐기는 모습과 함께 소비되었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첫 회 장면. ©TV조선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첫 회 장면. ©TV조선

 

‘미스터트롯’ 제작의 총지휘자가 여성이며 다수의 여성들이 PD, 작가로 참여했다는 점이나 남성 출연진이 스펙터클로 전시되었다는 ‘성 역할 전환’을 우리 사회가 이뤄낸 남녀평등의 징후로 해석할 수 있을까? 남성 제작진이 여성 출연진을 담아내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여성 제작진들이 남성 출연진의 몸을 볼거리로 그려낸 것은, 남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일 뿐이다.

‘미스터트롯’이 보여준 남성성의 전시가 위험한 것은 이 지점이다. 미디어에서 남성의 성이 상품화되고, 여성이 시선의 주체가 되어 남성과 여성의 위계가 바뀐 것처럼 느껴지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 수 있다. 한걸음 더 나가, 힘을 가진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를 자극한다.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정치·사회·문화적인 역풍(backlash)의 빌미가 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합격과 탈락이 반복되는 치열한 경쟁 속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경험을 이야기로 녹여 시청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진정성을 강조하는 리얼리티 쇼이다. 출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각자의 캐릭터가 되어 이미지로 소비된다. ‘미스터트롯’은 가족의 죽음, 방황하던 지난 시절, 오랜 무명의 세월을 겪은 참가자들의 절박함을 부각하여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원동력으로 활용하였고, 또 성공하였다. ‘미스터트롯’ 성공의 여파로 ‘트롯전국체전’(KBS), ‘최애 엔터테인먼트’(MBC), ‘보이스트롯’(MBN) 등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노래와 참가자의 진정성에 집중하는 오디션이 되길 바란다.

필자: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이화여대 언론학박사이며,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과젠더에 관심을 두고 다수의 영상문화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이화여대 언론학박사이며,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과젠더에 관심을 두고 다수의 영상문화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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