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성교육으론
해결 못하는 호기심에
‘포르노’ 찾는 여성들
남성 중심·폭력적 성 묘사와
사실과 다른 지식에 불편·혼란
“포르노 산업의 성 착취적 실체”
알고 나면 불편해

ⓒ이세아 기자, CC0 Public Domain
ⓒ이세아 기자, CC0 Public Domain

 

“여성을 성욕 해소 도구로 취급하는 야동, 만화가 너무 많고 어릴 때부터 인터넷으로 접하기 쉬워요. 저도 그랬고요. 올바른 자위법도 몰랐고, 그냥 섹스하면 무조건 기분 좋은 건가 싶었지만 사실이 아니죠.” (A씨, 23세)

“여성의 자위조차 남성의 판타지에 묶여있는 건 아닌지 걱정돼요.” (C씨, 31세)

“여성이 보고 정말 흥분할 만한 영상이 딱히 없어요.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을 물건처럼 대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불편했거든요. 여성의 성욕을 해소할 창구가 미디어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남성의 시선으로 말고요.” (B씨, 23세, 이상 여성신문과 우머나이저의 설문조사 결과 중)

남성뿐 아니라 많은 많은 여성들도 ‘포르노’를 보며 자위한다. 학교 성교육이 해결해 주지 않는 호기심이 여성들을 포르노로 이끈다. 문제는 절대다수의 포르노가 남성의 시선에 치우쳐 여성의 존엄과 즐거움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동등한 파트너로서 부드럽게 교감하는 성관계가 아니라, 남성이 여성을 굴복시키는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관계가 포르노의 단골 주제다. “여성은 삽입만 하면 느낀다”, “클리토리스를 강하고 빠르게 자극할수록 여성은 쾌감을 느낀다”처럼 사실과 다른 지식도 포르노에서 배웠고, 당연히 실전에서 혼란을 겪었다는 여성들이 많았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에서도 여성 3분의 1 이상이 포르노로 성을 배우며(BBC, 2019) 남학생의 53%는 온라인 포르노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NSPCC 조사 2017, 영국 자료).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인 페기 오렌스타인은 최신작 『Boys & Sex』(Harper, 2020)에서 “누군가와 키스하거나 손을 잡기도 전에 포르노를 보며 자위하는 법부터 배우는 미국 10대 남성들”의 실태를 소개했다.

성 건강 정보를 담은 『질 좋은 책』(위즈덤하우스, 2020)을 펴낸 정수연 성교육 활동가도 이런 현실을 비판했다. 그 자신도 남성향 포르노를 보며 자위하는 습관이 있었지만, “자존감은 물론 윤리 의식에도 맞지 않아” 고쳤다고 했다. “여성주의를 알면서부터 제가 왜 이런 (남성향 포르노 속) 장면을 보고 흥분했던 건지 이해가 가질 않더군요. 남성향 포르노에서 카메라 렌즈는 곧 남성의 눈입니다. 이성애자 ‘여성’이 자위하기 위해 보는 영상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죠. 제가 이런 걸 보고 흥분했던 것은 학습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 활동가는 “포르노 산업의 성 착취적 실체”도 꼬집었다. “‘AV 배우 연봉이 높은데 무슨 착취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성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장면을 보고도 ‘돈 주니까 당연히 견뎌야 한다’고 가볍게 말할 수 있나요? ‘촬영 전 여러 성병 검사를 하니 안전하다’는데, HPV 검사까지 하고 있을까요? 가장 흔한 성병이지만 콘돔으로도 완벽히 예방할 수 없는 HPV 바이러스는 여성에겐 자궁경부암, 남성에겐 두경부암을 유발할 수 있는데 말이죠. 남성의 HPV 검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못 받아서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포르노 배우들의 출연료가 생명 수당으로밖엔 보이지 않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한 ‘페미니스트 포르노’ 운동이 1990년대부터 벌어졌다. 미국의 애니 스프링클과 트리스탄 타오르미노, 스웨덴의 에리카 러스트, 독일의 페트라 조이 여성 포르노 제작자들이 “여성의 경험과 즐거움을 다룬 포르노”를 표방한 영상을 선보였다. 이들은 23세 미만의 배우는 캐스팅하지 않고, 다양한 신체와 성적 지향을 반영하며, 여성 관객의 성적 판타지에 기초해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 같은 근육질의 남성 파트너가 등장하며,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와 감정선을 중시하며, 촬영감독부터 편집 담당까지 여성들로 제작진을 구성하는 등의 원칙을 세웠다.

2019년 5월 30일 에리카 러스트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촬영장 모습 ⓒErika Lust Films
스웨덴 출신 에리카 러스트 감독은 ‘페미니스트 포르노’를 표방하며 다양한 영상을 제작해왔다. 2019년 5월 30일 에리카 러스트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촬영장 모습. ⓒErika Lust Films

“여성이 더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한다”고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잘못된 성 관념을 고착화할 수 있는 매체들을 주로 접하게 되며, 그로 인해서 섹스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 얽매일 수 있다는 지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성들이 ‘빻은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섹스를 말하기만 해도 잘못됐다고 해왔던 역사가 긴 만큼, 도덕적이고 옳은 판타지를 찾기 이전에 본인의 상상이 더 확장되도록 놓아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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