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 의원 주최 젠더폭력 근절 토론회
데이트폭력 연간 1만건 신고
피해자 77.6%는 여성
늦은 신고, 피해의 지속성,
증거수집 시기 지연 등 특수성 반영해
'젠데폭력특별법' 제정 필요

절반 이상의 여성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뉴시스·여성신문
데이트폭력 피해자 77.6%는 여성으로 젠더폭력화 된 경향을 보인다. ⓒ뉴시스·여성신문

 

과거 또는 현재 교제 관계에서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은 일반 범죄와는 다른 특수성을 갖는다. 심리적으로 친밀하고 신뢰하는 관계에서 폭력 행위가 일어나 피해자가 이를 범죄 피해로 인식하지 못 하고 일반적인 폭력범죄와 달리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때로는 죽음에까지도 이르지만 법적으로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접근금지 가처분신청 등에는 최소 2개월 이상 소요된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이 갖는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웅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젠더 폭력 살인 근절법’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약자를 향한 다양한 폭력에 대한 릴레이 정책 토론회로 지난 6월26일 아동 폭력에 이어 젠더 폭력을 주제로 마련됐다. 오는 10일에는 학교 폭력을 주제로 열린다.

젠더 폭력은 사회 구조적으로 남성에 비해 약자에 위치하는 여성을 향해 이루어지는 폭력 행위를 뜻한다.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와 왜곡된 성 인식 등이 젠더폭력의 배경으로 지적된다.

대검찰청의 살인·강도·폭행·강간 등 강력 흉악 범죄에서 여성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5년 29.9%였으나 매년 급증해 2017년 90%를 넘겼다. 아울러 같은해 범죄 희생양이 된 여성의 8만4000여명(36.4%)는 상해를 입었고 1367명(0.59%)는 사망했다. 여성을 향한 폭력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지난 4월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정의당 등은 일제히 젠더 폭력 종식을 위한 법안 마련을 약속했다.

개회사에서 김 의원은 “데이트 폭력은 연간 1만여 건에 달하지만 현행법에 데이트 폭력은 개념 정의조차 되어 있지 않다. 스토킹 또한 마찬가지”라며 “토론회 자리를 통해 젠더 폭력을 근절할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김웅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주최 젠더 폭력 살인 근절법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여성신문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김웅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주최 젠더 폭력 살인 근절법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여성신문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 연인간의 일이 아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의원은 데이트 폭력이 다양한 친밀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데이트 폭력 이후 일어나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형사사법기관의 피해자 중심적 시각의 필요성을 말했다.

경찰은 2016년 2월 데이트폭력 근절 TF를 구성하고 112 신고 시스템에 ‘데이트폭력’ 코드를 신설했다. 이를 통해 데이트폭력 실태 및 현황에 대한 공식 통계가 집계할 수 있게 됐는데, 2018년 연간 데이트폭력 피해자 수는 1만245명에 달하며 77.6%가 여성으로 범죄 자체가 젠더폭력화 된 경향을 보인다. 가해자의 연령대는 20대가 34%, 30대가 25.2%, 40대 20%, 50대 14.3%, 60대 3.7%, 10대 2.8%였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미혼, 이혼 부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남녀, 동성 전 영역에 분포됐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데이트 폭력은 일반 폭력 사건과 달리 일회성에 끝나지 않고 상습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교제관계 등이 유지되면서 신고율 또한 낮아 드러나지 않은 범죄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이며 보복범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데이트 피해자는 감정적으로 매우 친밀한 상태에서 폭력을 겪어 폭력의 심각성을 조기에 인지하기 어려워 신고가 늦어지고 폭력으로 심리적 충격이 일반 폭력 범죄보다 훨씬 치명적으로 온다”고 말했다.

데이트폭력 방지를 위한 정책으로는 △데이트 폭력 예방 교육 및 피해자 지원 서비스 홍보 강화 △형사사법기관의 성인지 감수성 및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고취를 위한 제도 △데이트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 및 피해자 보호조치 등을 요구했다. 현재 데이트폭력에 대한 독자적 제재 규정 없이 형법이나 성폭력처벌법에 근거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초동조치나 사후조치가 미흡해진다는 지적이다.

조윤오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 교수는 “우리는 생면부지 관계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적극적으로 저지하려고 하지만 명확하게 친밀한 관계로 보이는 관계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에는 개입을 꺼린다”며 “이는 데이트폭력을 사적 영역으로 보는 시각과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젠더폭력 범죄 피해가 10대와 20대 여성에게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생각해 10대 때부터 철저한 인식 교육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법만으로는 데이트폭력 피해자를 구할 수 없지만 개념 정의도 안 됐다

심재국 법무법인 대륜 대표변호사는 수임 사례를 들어 △데이트폭력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며 △데이트폭력을 피하기 위한 저항이 폭력으로 기소 되거나 △데이트폭력에 수반된 성폭력이 연인 간 문제로 여겨져 기소가 안 되거나 △신고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물적 증거가 소실되거나 △교제 중 이루어지는 협박과 세뇌로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돼 신고가 이루어지지 못 했다고 설명했다.

심 변호사는 “데이트폭력이 갖는 특수성(늦은 신고, 피해의 지속성, 증거수집 시기의 지연 등)을 기존 형법과 성폭력 특별법 등으로는 수용할 수 없다”며 “접근금지가처분에만 최소 2개월이 걸리는 등 법률 제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접근금지가처분이란, 특정인으로부터 정서적·신체적 폭력, 모욕적 언사, 주거지나 직장 등으로의 접근, 전화 · 문자 등 연락 및 접촉을 방지 하는 제도다. 접근금지가처분 결정을 받기 위해서는 특정인으로부터 생활의 안정과 평온을 침해받고 있다는 사실관계를 충분히 소명해야하며, 접근금지가처분 위반 시 재산상 강제수단이 사용되거나 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데이트폭력 개념의 법적 규정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하고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데이트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모두가 허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데이트폭력특별법들은 모두 ‘합의된 교제관계’를 개념으로 드는데 폭력 행위가 일어난 시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더 이상 합의된 관계도 교제된 관계도 아니다”라며 “일시적 교제관계를 핑계로 은밀하고 지속적인 폭력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가중처벌해야 하겠으나 법안들은 이러한 부분을 모두 놓쳤다”고 밝혔다.

한때 데이트폭력 특별법에서 필요하다고 설파됐던 ‘클레어법’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2014년 영국에서 시행하기 시작한 클레어법의 정식명칭은 ‘가정폭력 및 학대정보제공 제도’로 폭력 위험에 노출된 사람 또는 피해자를 염려하는 가족 등 제3자가 경찰에 데이트 상대의 전과기록을 요구하면 이를 제공하는 제도다. 김 연구위원은 이같은 제도가 결과적으로는 국가가 피해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위험을 피할 기회를 주었으니 피해 원인을 피해자에게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데이트폭력 특별법이나 스토킹 처벌법이나 비동의 간음죄나 모두 입법을 바라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개념 정의만 해두면 이후에 판례를 통한 개념 형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지만 이는 입법부의 책임을 법원에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며 “피해자 관점으로 각 범죄의 가해와 피해 양상 모두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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