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의 W정치 인사이드]
1년 7개월 이어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단 9시간 회의 끝에 불기소 권고 결정해
멈추면 미래가 없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공화국의 기틀
검찰은 기소로서 존립 이유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멈추면 미래가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제 30일 반도체 부문 자회사 사업장을 찾아 남긴 말이다.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안을 발표한 지 나흘 만이다.
“(나를) 멈추면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가 없다”로 들리는 사람은 나뿐일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10개 시민단체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회의원 18명이 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를 촉구했다.<br> ⓒ뉴시스·여성신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10개 시민단체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회의원 18명이 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를 촉구했다.
ⓒ뉴시스·여성신문

 

그동안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 변경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분식회계와 주가조작 등의 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수사를 벌였다.
기간만 1년 7개월, 기록만 20만 장이 넘는 수사였다. 그 방대한 과정을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단 9시간만에 멈추라고 권고했다.

권고안이 나올 때까지 위원회 내부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담은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판단의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제시도 없다. 투표 역시 비밀투표로 진행하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도 없다. 참 황당한 일이다.

검찰개혁을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바로 기소 독점주의다. 군부독재가 끝난 시점의 한국 사회에서 검찰의 기소독점권은 돈과 힘 있는 사람들에겐 축복이었다. 어떤 죄를 짓던 검찰이 묵인해주면 죄가 되지 않았다. 반대로 검찰이 죄가 있다 하면 누군가는 죄인이 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일도 많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식처럼 퍼진 비극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제도는 바로 ‘기소 독점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2018년에 도입되었다.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는 검찰 수사의 적절성을 평가하고 소, 수사 계속 여부 등을 판단하여 의견을 낸다. 국민의 헌법적 권리인 ‘법 앞의 평등’을 검찰의 부당한 기소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이재용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이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언제나 그래왔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조성의혹을 공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삼성이 돈과 인맥을 이용해 대한민국 사법부 및 언론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모습들이 생생히 그려지고 있다. 일반인들은 몇 년씩 붙어 해결해야 하는 일을 재벌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고, 직접 부탁하기 전에 밑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삼성을 생각한다’ 책을 통해 그들이 공화국을 훼손하고 있는 악행이 세상에 알려졌고 사람들은 끓어오르듯 분노했다. 그때부터 10년이 지났다. 삼성 공화국말고 민주주의 공화국 한국은 얼마나 앞으로 나아갔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를 방문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2020.06.23. ⓒ뉴시스·여성신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를 방문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2020.06.23.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3일 언론사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가전사업부를 점검하는 ‘현장 경영’ 사진을 앞다투어 실었다. 몇 언론사들은 52번째 생일날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현장에 나가 있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어조였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생일날에도 일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서 삼성을 흔들면 대한민국 자체가 도태된다는 말을 돌리고 돌려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다들 아는 것처럼 최순실 국정농단 건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됐던 353일 동안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오히려 83% 증가했다.

법률기술자들과 언론을 동원해서 두 번의 특검을 넘긴 전력이 있는 삼성이다. 국민들의 막대한 세금으로 꾸려진 특검이 아버지와 아들을 조사했지만, 그들은 유유히 빠져나갔다. 사과문 한 장으로 할 도리를 다했다는 듯 국민 위에 군림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오래된 반체제적 집단이 아닐 수 없다.

촛불혁명의 주체인 시민들은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공권력의 부정을 평화와 희망으로 극복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금권으로 엮여 그들만의 편법을 누리며 살아온 금권 카르텔을 넘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기소는 그 시발점이다. 지금 기소를 멈춘다면 민주주의 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

검찰은 자신의 존립 근거를 시민들에게 보여주길 바란다. 거대 재벌 총수에게도 법의 엄정함을 세운다면 총장의 진퇴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지금의 논란도 힘을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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