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부모 출산휴가 130일 준 게
우리 ‘애민전통‘”
21세기에는 당당하며 품어주는 어머니리더십 필요
여자대학, 여성연대 위해 꼭 있어야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은 "근본적이고 정신적 문화 운동을 이르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서의 공부를 더 하면 국민 의식이 높아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은 "근본적이고 정신적 문화 운동을 이르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은 역사학자인 동시에 이화여대 13대총장(2006-10)과 국가브랜드위원장(2010-12),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2009-10), 국립중앙박물관 운영자문위원장(2009-13), 한국학중앙연구원장(2013-16)으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역사인식을 높이고 인문학을 실제 생활 문화의 현장에서 피어나게 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2019년 현존하는 9개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이끌었던 그가 윈(WIN)문화포럼에서 조선의 서원 전통과 미래적 의미를 열정적으로 들려줬다. 서원은 조선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한국 교육의 핵심 자산인 사학의 근원이며, 미래에는 시민 교육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서원 문화론’이다.

 

-서원은 유교문화의 기반입니다. 유교문화라면 가부장제와 남녀차별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여성 교육과 여성사를 오래 공부 해 오신 이 이사장님은 유교 전통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제가 오는 9월 퇴계를 모신 도산서원 향사에 초헌관으로 참례합니다. 원래 지난 3월 하려던 게 코로나19 사태로 미뤄졌습니다. 여성으로는 첫 기록입니다. 그만큼 유교도 시절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지요. 남녀 차별을 없애는 데 투쟁 만으로가 아니라, 햇빛으로 얼음을 녹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조선의 서원은 근대 사립학교의 모태입니다. 서원을 세워 인재를 키웠던 전통이 근대에 들어 사립학교 설립으로 이어졌지요. 1909년에 사립학교가 전국에 3천개였어요. 국권을 잃은 시기, 시대적 사명과 의무를 갖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돈 댄 것도 아닌데 자립적으로 학교를 세웠어요. 또 하나 감동적인 것은, 서원의 교육 목표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과거시험 족집게 학원, 그런 게 아니에요. 가장 근본 뿌리가 제향이에요. 도산서원이라고 퇴계의 자손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전국의 지성인들이 찾아옵니다. 지금 서원을 건축물로만 이해하는데, 서원과 인근 학교를 접맥해 인성 교육에 활용했으면 합니다.“

퇴계 이황 위패 앞에서 인사를 올리는 사람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을 모신다. ⓒ뉴시스.여성신문
퇴계 이황 위패 앞에서 인사를 올리는 사람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을 모신다. ⓒ뉴시스.여성신문

-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조선의 유교 사상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에게 출산-육아의 책임을 지우는 정부 정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비판 받고 있습니다.

“유교의 근본정신으로 ‘애민(愛民)’이 있다고 강의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세종대왕입니다. 세종이 아기를 낳는 여종(婢)에게 산전 30일, 산후 100일의 출산 휴가를 주었습니다. 여종의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었습니다. 부부합산 160일 출산휴가입니다. 그런데 성종 때 경국대전을 정비하면서 그때 판관들이 노비에게 1년에 130일을 쉬게 하면 내내 애만 낳고 노는 거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해서 80일로 깎였어요. 그래도 출산 휴가 80일은 성문법으로 남았어요. 국가가 출산과 보육에 대해 실제적인 고려를 해야 해요. 국가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 부부가 함께 가정을 꾸려나갈 방책 등에 대해 애민 정신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사장께서는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며 여성리더십을 육성했습니다. 21세기 사회에서 여성리더십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저는 어머니 리더십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는 당당하면서 품어주는 리더십이 있어요. 제가 서원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총괄했을 때 여러 사람들과 협력했습니다. 이런 협심을 이끌어내는 것이 어머니 리더십입니다.”

 

- 출산은 물론이고 결혼도 안 하겠다는 비혼 여성이 많은데, 어머니 리더십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본질적으로 역지사지하는 리더십이지요. 일상에서는 어머니의 당당함이 가족을 지탱하고 자녀를 키워내는 힘이었지요. 이웃을 위해,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당당했습니다.”

 

- 한국에서 여성 리더십의 산실로 여자대학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제 남녀 공히 대학 진학률이 80%를 웃돌고, 여학생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보다 더 높은데도 여자대학이 필요할까요?

“그럼요. 이제 2000년대 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지만, 사회 전반에서 여성들의 능력만큼 기회가 열린 건 아니에요. 아주 예전에 이화여대 김활란 총장께 누가 여자대학의 필요성을 물었을 때 ”여성 국회의원이 50%가 될 때 까지 여자대학이 필요하다“고 하셨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도 나왔고 이번에 여성 국회부의장도 나왔습니다. 여성들 하나하나는 나무처럼 수려하게 자랐어요. 그러나 숲을 못 이뤘다고 생각해요. 21대 국회에 여성의원이 19%라는데, 아직 임계점에도 못 간 비율이지요. 품어주고 같이 이끌고 나가는 여성들의 연대가 더 크게 나타나야 해요. 여대를 잘 키우고, 남녀공학도 키우고 해야지요. 제가 총장일 때 많은 기자들이 물어보곤 했어요. 이화여대는 언제 남녀공학이 되나? 언제 남자 총장이 나오나? 그때 저는 서울대학교 가서 언제 여자 총장이 나오는지 먼저 같은 질문을 해보시라고 했어요.”

 

- 2020년의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콘텐츠는 무엇일까요?

“책임과 심지라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공정한 줏대를 가지고, 잘못된 것은 바꿀 수 있는 담대함과 실력도 있어야 해요. 저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향을 잘 잡아 역사에 책임을 갖고 미래에도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당대에서는 정치권력이 우세한 것 같지만, 나는 더 근본적인 것이 정신과 문화라고 봅니다. 정치로 가면 정파성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뜨거운 여성 인권 이슈가 나와도 정파적 이해에 따라서 목소리가 커지거나 아예 입을 다무는 일도 많아요. 때문에 나는 여성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봐요.”

 

- 이사장님 자신은 생활에서는 어떤 여성, 어떤 리더십인가요?

“며느리는 교사인데, 역지사지가 있어요. 서로 역지사지하며 지내면 어려울 일이 없지요. 나는 역지사지와 휴머니즘이 함께 하면 이상적인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여성리더십의 전형으로 종부를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종가를 유지하는 것은 종부에요. 수많은 제사나 집안 간 교류 모두 종부가 관리합니다. 그런데 그 큰살림을 종부 혼자 하겠어요? 정말 많은 조력자가 있어야 하는 데 품 넓은 리더십이 없으면 누가 돕겠어요? 하회마을 최소희 할머니나, 윤증 고택 종부를 뵈면 주변과 아주 잘 지내세요. 수직적인 관계가 어딨겠어요? 윤증 고택 종부님은 시집와서 처음에 조심스럽게 걸으니 시아버지가 “너 그래서는 종가를 다스릴 수 없다. 두 팔을 넓게 흔들면서 당당함을 보여줘야 종가를 다스린다”고 하셨대요.”

 

이 이사장은 자신을 “전통과 탈 현대 중간에 낀 샌드위치 세대”라고 했다. 자신도 ‘시집살이’ 20년을 하며 시부상 때 궤연을 모시고 조상식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익어서 지금도 새벽 4시에 일어나요. 전화도 안 오고, 책 읽고 글 쓰는데 최적의 시간이죠.” <한국근대광업침탈사>를 전공한 이 이사장은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공저)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 역사 속의 여성들> 등 많은 역사서를 썼다. 새벽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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