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한숙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
발달장애 1급 가진 딸을 둔 엄마
5년째 제주살이하며 사회적 약자
위한 공동체 플랫폼 마련에 주력
“궁금적으로 ‘아트 팜’ 만들겠다”

오한숙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 ⓒ홍수형 기자
오한숙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 ⓒ홍수형 기자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짚신벌레처럼 모든 생명은 공생 관계라고 생각해요. 제가 수십 년 간 여성운동을 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도 ‘공동체’였어요. 지금은 스펙트럼을 더 넓혀 장애·결혼이주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공동체 플랫폼을 마련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어요.”

여성학자로서 방송과 책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중에게 여성학을 알려온 오한숙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이 제주도에 정착해 장애인·시니어·다문화가정·학교 밖 청소년 등으로 더욱 확대해 사회적 약자들의 자립기반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단체 전속작가인 고동우 작가의 전시회가 열려 잠시 서울에서 머물고 있는 그를 서울 종로구 아트링크 갤러리에서 만났다.

5년 째 살고 있는 제주도를 떠나 일주일째 서울에서 머물고 있다. 
“누구나의 전속작가 고동우의 ‘귀를 기울이면’ 전시가 서울에서 진행하고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고 작가에게는 섬세한 감각이 있다. 미술을 배워 습득한 계산된 색칠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현이다. 한 번은 고동우 작가 어머니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다. 아들이 그림을 그리면 어머니가 그대로 수를 놔서 전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아이 뒷바라지를 하느라 자신의 삶을 챙기지 못 하는데 고 작가의 어머니는 자아실현도 하시며 장애가 있는 아들과 예술로 소통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자폐를 앓는 딸을 가진 나도 제주도 주변의 발달장애 청년 작가들을 발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과 언어가 아닌 예술로 소통하고 싶어 슬로건도 ‘누구나 예술로 소통한다’로 정하게 됐다.”

오한숙희 이사장은 그동안 다양한 저서와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여성학을 알려왔다. 
“23살에 1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남녀차별을 느껴 여성학을 배웠다. 내가 문제의식을 느끼던 때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여성운동가라는 마음가짐으로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며 여성학을 가지고 글을 쓰기도 하고 방송을 했다. 그러한 일련의 활동들은 오로지 사회적으로 여성운동을 한다는 뜻으로 임했다. 가끔 ‘지금은 왜 방송을 하지 않냐’라고 물어보는 분도 계시는데 이제는 내가 나서서 하지 않아도 사회연결망서비스(SNS)로 정보 공유가 되고 있다. 방송에서는 더 여성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공동체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여자는 남자가 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고 여겨 실제 많은 여성들이 좌절했던 시절이 있었다. 여성들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판이 등장하면서 시대적 변화를 이끌었다.”

여성학자·여성운동가 타이틀이 있었던 그가 장애인 인권을 위한 단체의 이사장으로 지내게 됐다.
“여성학이라고 해서 특정한 갈래로 나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라보는 것이 여성학이라고 하면 현재 나는 장애가 있는 딸을 가진 엄마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딸 덕분에 여성학자로서의 역할이 더 넓어진 것 같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엄마들과 함께 우리의 삶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공유한다. 그러면서 이 장애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것인 개인 가정이 아니라 국가라는 생각도 든다. 돌봄의 영역에서도 여성들이 전담 중이다. 과거에 여성학자로서 방송이나 책을 통해 공중전을 펼쳤다면 지금은 직접 현장에서 뛰고 있다.”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트링크갤러리에서 오한숙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은 "장애 아이를 가진 가정들을 위해 넓지는 못하지만 작은 곳에서라도 구체적인 사례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서 깊이 있게 만들어 보고 싶다"며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트링크갤러리에서 오한숙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은 "장애 아이를 가진 가정들을 위해 넓지는 못하지만 작은 곳에서라도 구체적인 사례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서 깊이 있게 만들어 보고 싶다"며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사단법인 ‘누구나’에서는 사회·문화·소통약자의 문화예술교육과 비언어적 창작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문화 예술활동을 통해 이들의 자립기반을 구축한다.
“‘누구나’에서는 작가의 정체성이 관계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소통 능력이 약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언어에 집착해 그들을 소외시킨다. 우리는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이들 한명 한명이 자기정체성을 확립할 때까지 지원하는 판을 벌이는 일을 한다. 그래서 장애뿐 아니라 시니어, 결혼이주여성 등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립’이라고 하면 경제적 자립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자립은 심리적인 것이다. ‘내가 여기의 일원이다’라는 멤버십을 확인할 때 자존감이 생긴다. 그러면서 사회적인 자립 기반이 마련되고 점차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에서 ‘누구나’가 될 수 있도록 문화를 형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고동우 작가의 전시에서도 이 작가의 장애성에 집중하지 말고 예술성에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제주도에 정착하며 살게 된 계기는 자폐증을 앓는 딸 때문이었다.
“서른 살이 된 딸은 발달장애로 인해 도시에서 생활할 수가 없었다. 복잡한 도시 대신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 제주도에 살게 됐다. 자폐가 있으면 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뒤에는 사회에 정착해 살기 어렵다. 대중교통도 복잡해 혼자 이용할 수 없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언어 대신 소리를 지르거나 뛰는 등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한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아이가 처음에는 숨다가 나중에는 사회에 갇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자연이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됐다. 제주 주간활동센터에서는 딸을 느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선생님들과 지내고 있다. 주말에는 올레길을 걸으며 종주를 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사회적 소통을 한다. 딸에게는 자연과 올레길 같은 플랫폼이 필요했다.”

그는 2016년부터 제주 양성평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삼다도’라는 말처럼 제주도에는 여성들이 많다. 여성들의 사회 경제활동 참여율은 90%로 굉장히 높다. 그렇지만 남존여비 사상은 여전해 양성평등 수준이 낮다. 이 수준을 어떻게 높일 나갈 것인가 고민했다. 내가 활동한 분과는 ‘돌봄소통상생’으로 이번에는 결혼이주여성들에 좀 더 주목하고 싶다. 매번 우리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국 문화와 언어를 강요해왔다. 이번에는 반대로 결혼이주여성들의 경험과 삶, 모국의 역사·문화 등을 그들의 그림으로 표현한 다문화 이야기책을 통해 우리도 그들의 문화를 배워보는 것이다.”

최종 목표는 ‘아트팜’(Art Farm)을 만드는 것이다.
“딸이 발달장애 1급인데 ‘배고파요’, ‘화장실 가고 싶다’ 정도로만 표현한다. 불편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사는 데는 지장 없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궁극적으로 아트팜을 만들고 싶다. 아트팜에서 예술가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농사도 짓고 함께 밥도 해서 먹고 같이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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