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관이 가상의 신원 만들어
범죄자에 접근하는 ‘위장수사’
네덜란드 ‘스위티’ 프로젝트로
아동 성착취 시도 2만명 드러나
현행법은 위장 수사로
범죄 부추기면 위법
허용 범위 확대 요구 거세

네덜란드 아동인권단체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는 2013년 아동 대상 음란 화상채팅을 막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스위티(sweetie)’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어냈다. 10세 필리핀 소녀로 설정된 스위티가 화상채팅을 한 10주 간 70여개 국가에서 2만명이 넘는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Terre des Hommes 유튜브 영상 캡쳐
네덜란드 아동인권단체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는 2013년 아동 대상 음란 화상채팅을 막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스위티(sweetie)’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어냈다. 10세 필리핀 소녀로 설정된 스위티가 화상채팅을 한 10주 간 70여개 국가에서 2만명이 넘는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Terre des Hommes 유튜브 영상 캡쳐

아동 성착취물 영상 구매자로 위장하는 등 
기회제공형 함정수사 필요한데 위법 소지

텔레그램 등 디지털 성범죄로 검거된 수는 총 957명이며 이 가운데 120명이 구속됐다(6월 16일 현재). 범죄형태가 드러나며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과 ‘잠입수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온라인 그루밍’은 온라인상에서 성착취 목적을 갖고 타인의 환심을 사거나 유인하는 행위를 뜻한다. 청소년이 온라인 그루밍의 주요한 타깃이 된다. ‘잠입수사’는 현행법에 명문화 되지 않은 수사 기법의 하나로 수사기관이 신분 등을 위장하고 범죄현장에 잠입하는 것을 뜻한다. 

박완주‧진선미‧임종성‧정춘숙‧권인숙‧한준호 의원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디지털 성착취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수사 일선에 나서고 있는 경찰과 법무부, N번방 공론화에 힘쓴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리셋)' 활동가도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는 온라인 그루밍 처벌과 잠입수사의 입법 필요성과 구체적인 입법 방향이 논의되었다. 

디지털 성착취는 다크웹, 해외 기반 SNS 플랫폼 등 수사기관의 집행력이 닿기 힘든 곳에서 피해자의 심리적 취약성을 이용해 범죄가 진행된 까닭에 원천적 해결이 어려웠다. 이 탓에 N번방 방지법 6개 법안 통과 이후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과 잠입 수사를 위한 제반 법률 등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난 4월 정부는 국무조정실 주관 관계부처 합동회의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심의·확정하며 잠입수사(위장수사)도입을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권인숙 의원도 1호 법안으로 온라인 그루밍 처벌과 잠입수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함정수사는 수사기관의 적법한 권한 행사에 관한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현재 함정수사는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항(위법수집증거의 배제)에 어긋난다는 해석이 많다. 지금도 마약, 조직범죄, 성매매범죄 등 수사에서 일부 활용되고 있는 기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판례에서는 위장수사를 △범의유발형 수사와 △기회제공형 수사로 구분하고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수사기관이 범행을 유발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위법하다고 본다. 

인간의 대지는 아동을 대상으로 음란 화상채팅을 한 이들 가운데 성적 행위를 요구한 1000여명의 신상정보를 국제형사경찰기구인 인터폴로 넘겼다. ©Terre des Hommes 유튜브 영상 캡쳐
네덜란드 아동인권단체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는 아동에게 성적 목적을 갖고 화상채팅을 한 이들 가운데 성적 행위를 요구한 1000여명의 신상정보를 국제형사경찰기구인 인터폴로 넘겼다. ©Terre des Hommes 유튜브 영상 캡쳐

미국·네덜란드·호주 등 해외에선
아동 성착취 막기 위해 위장수사 도입

해외에서는 이미 성착취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위장수사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한 아동보호단체는 2013년 10대 소녀처럼 보이는 3차원(3D) 아바타 ‘스위티’를 이용해 전 세계에서 아동 성매수자 1000명을 적발했다. 

한국과 다르게 선진국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범 검거에 위장 수사를 널리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 ‘스위티 프로젝트’다. 네덜란드 아동인권단체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는 2013년 아동 성착취를 막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스위티(sweetie)’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어냈다. 10세 필리핀 소녀로 설정된 스위티가 화상채팅을 한 10주 간 70여개 국가에서 2만명이 넘는 남성이 ‘그루밍(길들이기)’ 범죄를 시도했다. 이 가운데 1000명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 인터폴이 수사를 진행해 검거했다. 

지난해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발표한 ‘온라인 기반 청소년 성착취 체계 분석과 법·제도적 대응방안’ 보고서를 보면 미국에서는 수사관이 아동 성착취 가해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닉네임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함정수사를 시작한다. 

호주 퀸즈랜드주는 성인이 성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해 16세 미만 아동을 알선(procuring)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함정수사 법안을 통과시켰다. 경찰관이 아동으로 가장해 위장수사를 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어 피의자가 허구의 인물과 한 대화일지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의 경우, 연구자들이 10대 소녀로 위장해 랜덤채팅앱에 접속해 대화를 나눈 결과를 분석한 결과, 상대가 청소년이라는 것을 알아도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를 하는 성인이 많았다. 

여성가족부는 15일 발표한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연구진이 13·16·19·23살 여성으로 위장해 랜덤채팅앱에서 2230명과 나눈 대화를 분석한 결과, 상대가 청소년일 때도 대가를 제공하고 성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등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76.8%(1232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의 두 대학생도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텔레그램 내 비밀방에 잠입했다. 
 
 

박완주‧진선미‧임종성‧정춘숙‧권인숙‧한준호 의원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디지털 성착취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여성신문
박완주‧진선미‧임종성‧정춘숙‧권인숙‧한준호 의원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디지털 성착취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여성신문

박완주‧진선미‧임종성‧정춘숙‧권인숙‧한준호 의원
디지털 성착취 근절 위해 토론회 열어

첫 발제를 맡은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과장은 “익명성과 폐쇄성을 활용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위장수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디지털 성범죄의 연쇄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특수 수사기법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위장수사의 법률 근거 필요성을 △위장수사에 대한 남용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가능한 요건과 허용범위의 명시 △수사관의 개인 신변상 안전 및 위장수사를 위한 위법행위 활동에 대한 보호 △법제화 효과에 따른 범죄심리 억제 등으로 설명했다. 법제화 방향에 대해서는 △위장수사 개시 요건의 마련 △위장수사와 관련된 허용 행위 △수사권 남용 등을 막기 위한 위장수사를 위한 개시 승인 주체 등이 구체적이고 효율적으로 명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정연 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장은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중 추진해야 할 입법 과제가 온라인 그루밍 처벌과 잠입수사 도입”이라고 밝혔다. 이 과장은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의 필요성에 대해 “미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잠재적 범죄인 ‘접근’ 자체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며 “현행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으나 규정의 포괄성과 개념 정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친밀감 쌓는 행위 자체는 죄형법주의상 규정할 수 없다. 다만 그루밍 과정에서 포착되는 객관적 행위 중 불법성 높은 행위를 규정하는 방향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길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성적대화, 성적 사진·영상의 요구 또는 송부, 만남 등을 그루밍으로 규정하는 방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성폭력, 성매매, 성착취의 경계가 없이 일어나고 본질적으로 같다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ICMEC가 2004년부터 UN, 인터폴, 각국 대사관, 마이크로소프트사 등의 협조로 아동이용음란물 관련 입법제도에 관해 연구한 표준법률안은 법률의 구성요소를 △아동포르노그라피의 정의 △범죄 △보고의무 △처벌 및 신고 등으로 말한다. 이 대표는 “주목할 부분은 ‘보고 의무’인데, 해당 보고서는 의로 및 사회복지전문가, 교사, 법집행관, 사진현상업자, IT전문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 신용카드사, 은행에 의무 확립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현행 아청법 제34조는 신고 의무자로 IT전문가 및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 신용카드사 및 은행에 대해서는 지정하고 있지 않다.

이 대표는 “온라인 그루밍 범죄는 무작위로 목표물로 선정되기 때문에 전형적인 피해자가 없다”며 “모든 그루밍 행위를 법에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법제화는 곧 사회적 합의를 만들게 되고 수사 재판 과정에서의 고려점을 준다”고 밝혔다.

김진우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는 잠입수사와 온라인 그루밍의 법제화에서 보완될 법적 요소들에 대해 설명했다. 김 검사는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수사관은 위법에 뛰어들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구조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어 위험성도 크다”며 “따라서 사전 통제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며 내부 통제를 받을 경우 자의적 제도 운영이 우려돼 외부기관의 통제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의 입법취지에 깊이 공감하지만 앞서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예비음모죄가 신설돼 2일부터 시행 중이다. 해당 법과 겹치는 영역이 없는 지 법적 검토가 필요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협박 및 강요 등에 대한 그루밍 행위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진우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는 잠입수사와 관련, 기본권 침해여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대원 카카오 정책팀장은 “인터넷 플랫폼 기업으로 AI윤리규범 개선 등을 통해 서비스를 하면서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수립, 온라인그루밍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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