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수영시설 월경 기간 할인 안내에
‘가임기 여성’ 표현 여전...“여성혐오” 비판 일어
“단순 연령 기준은 부정확” 지적도

올해 1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에 오른 한 공립 스포츠센터의 할인 안내문. '가임기 여성'이라고 쓰여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올해 1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에 오른 한 공립 스포츠센터의 할인 안내문. '가임기 여성'이라고 쓰여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가임 여성(13세~55세)’ 10% 할인”. 서울 도봉구에 사는 대학생 김모(22) 씨는 동네 수영장 할인제도 안내판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든다. “여성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꼭 ‘가임기 여성’이라고 써야 할까요?”

도봉구만이 아니다. 서울 종로구, 대전광역시, 경기도 군포시, 경남 창원시 등 전국 여러 공립 수영시설에서 2020년 업데이트한 여성의 월경 기간 할인제도 안내문을 보면, ‘가임기 여성’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 13세~55세 ‘가임기 여성’에 한해 이용요금의 5~10%를 할인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가임 여성’ 표현을 사용한 공립 수영장 할인 안내문. ⓒ웹사이트 캡처
‘가임기 여성’ 표현을 사용한 서울 도봉구 수영시설 할인 안내문. ⓒ웹사이트 캡처
‘가임 여성’ 표현을 사용한 공립 수영장 할인 안내문. ⓒ웹사이트 캡처
‘가임 여성’ 표현을 사용한 서울 종로구 수영시설 할인 안내문. ⓒ웹사이트 캡처
‘가임 여성’ 표현을 사용한 공립 수영장 할인 안내문. ⓒ웹사이트 캡처
‘가임 여성’ 표현을 사용한 경남 창원시 수영장 할인 안내문. ⓒ웹사이트 캡처

그러나 여성들 사이에서는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가임기 여성’ 자체가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로 보는 여성혐오적 인식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최원진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가임기 여성’이니까 할인해준다, 임신 가능한 몸이니까 혜택을 준다는 논리에는 ‘여성은 임신해야만 사회적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가치판단이 전제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신혼부부 가구 조사 기준으로 49세 이하 ‘가임기 여성’을 제시했다가([단독] 국토부 '신혼부부' 기준 성차별 논란…여성 49세 이하여야 ‘신혼부부’? https://url.kr/cuXiR8), 비판에 직면하자 “삭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가임기 여성 지도’를 공개했다가 거센 비난 여론에 하루 만에 삭제했다.

또 여성마다 가임기가 다른데 단순히 13세~55세처럼 나이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의 문제 제기가 이끈
공립 수영장 여성 할인 체계화
“‘남성의 몸’ 기준 삼는 관행 깨고
여성 등 소수자의 차이 고려해
제도 설계·운용해 나가야”

수영장 여성 할인제도의 역사는 사실 길지 않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성들이 월경으로 수영장 이용에 제한을 받아도 ‘개인 사정’으로 치부해 할인이나 보상을 제공하지 않았다. 2006년 20대 여성 송모 씨가 서울의 한 수영장에서 한 달 이용권을 구매한 후 월경을 사유로 기간 연장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하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일이 계기가 됐다. 송 씨는 “여성은 매달 월경하는 동안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하는데 남성과 동일한 강습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 주장은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샀다. 당시 시민단체 희망제작소가 성인 여성 대상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61%가 월경 때문에 5~7일 정도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이 문제가 알려지면서, 여성 대부분이 겪는 월경 현상을 소비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며, 여성이 체육시설 이용 시 할인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희망제작소는 정부와 지자체에 개선을 요구했다. 2007년 서울 송파구를 시작으로 울산 동구, 서울시 등 전국 지자체가 관련 조례와 시행규칙을 마련했다.

수영장 여성 할인 요구 운동은 단순히 여성 우대를 요구한 사건이 아니라, 수영장 요금 체계가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돼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지닌 사람들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월경은 ‘여성이 알아서 처리해야 할 사적인 문제’라는 통념을 깼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사회 운동으로 주목받았다.

‘가임기 여성 할인’이라는 표현을 넘어 소수자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왔다. 희망제작소는 2008년 관련 활동 후기에서 “생리 할인” 대신 “탄력적 이용요금제”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할인’에는 일정 정도 ‘혜택’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제안의 핵심은 특정 신체를 기준으로 요금을 책정할 것이 아니라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는 신체 또한 요금 책정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최원진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도 “여성의 신체를 부각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소수자가 자신의 신체적 차이를 증명하지 않고도 차별을 받지 않도록 제도에 반영하는 식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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