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동안 한국서 벌어진 여성혐오 사건들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한국 여성들
한국 여성으로 숨쉬며 살기 어려워
21대 국회서 비가역적인 법 개정 필요

아래는 지난 2주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장면 하나: 성추행 부장검사 

ⓒ뉴시스·여성신문
여성 어깨 만지는 부산지검 현직 부장검사 모습이 담긴 CCTV영상 ⓒ뉴시스·여성신문

6월 1일 부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가 여성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추행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망가는 여성의 뒤를 20여 분 동안 수백 미터를 뒤따라 갔다. 성추행 부장검사는 범행 이후 나흘 동안 검찰청에 정상 출근을 했다. 사건 영상이 언론에 알려지고 나서야 법무부는 해당 검사를 업무에서 배제했다. 6월 9일, 이례적으로 심야에 이뤄진 피의자 조사에서 그는 “술에 취해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지방검찰청은 현재 오거돈 전 시장의 성폭행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장면 둘: 서울역 여성 폭행 사건

 

서울역 묻지마 폭행 피의자 이모씨가 4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용산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역 묻지마 폭행 피의자 이모씨가 4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용산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6월 2일 서울역에서 아무 상관 없는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30대 남성이 체포됐다. 그는 5월 26일 서울역 공항철도 내부에서 피해자의 광대뼈가 함몰될 정도의 중상을 입혔다. 

사건의 피해자는 사건 당시 주위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민간인들 뿐 아니라 최초 출동한 경찰 역시 관할구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현장을 외면했다. 범죄수사규칙 2조에 ‘필요한 경우에는 관할구역 밖에서도 그 직무를 행할 수 있다’는 부분을 편의적으로 외면했다.

사건이 언론에 노출되기 전까지, 관할 담당인 ‘철도 특별 사법 경찰’은 용의자의 도주경로가 담겨있을 수도 있는, 역 주변 CCTV를 파악하지 않았던 것이 한 방송사의 취재를 통해 드러났다.
 


장면 셋: 피해자를 외면하는 교육 기관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 캡처본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 캡처본

 

6월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우리 아이가 성범죄 가해학생과 같은학교를 다닙니다. 우리 아이를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1월 전북 전주 모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새벽에 여러 개의 음란 메시지와 성관계 사진을 받았다. 메시지를 보낸 이는 피해 학생과 성관계를 가지고 싶다며, 학생의 실명을 언급했다고 한다. 공포에 떨던 학생과 보호자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조사 결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인 가해자로 특정됐다. 

4개월이 지난 5월 담당 교육지원청에서 열린 학폭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특별교육을 12시간과 출석 정지 15일의 처분을 받았다. 

피해자들(남학생은 비슷한 시기 같은 학교 다른 여학생에게도 동일한 범행을 저질렀다)은 가해자와 같은 공간 분리가 가능한 전학을 원했고, 위원회 내부에서도 비슷한 강도의 처벌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나, 참여 의원 한 명의 강한 반대로 인해 안좋은 상황으로 이어졌다. 

회의록에 따르면 반대를 표한 의원은 성적 호기심은 남학생들이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일이고, 전학은 가해자에게 좌절을 안기는 가혹한 처벌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가해 학생이 성적도 어느 정도 되는 것 같다는 식의 사건과 전혀 상관 없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현재 피해 학부모는 재심 청구를 준비중이다.
 


장면 넷: 피해자도, 사건도 있지만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 판결들

5월 28일 배우 고 장자연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희천 전 조선일보 기자가 ‘윤지오씨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판결 받았다. 5월 29일 김학의 별장에서 성접대·성착취한 핵심인물 윤중천 씨도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성접대 강요에 못 이겨 자살한 탤런트 고 장자연씨의 영결식(지난 2009년 3월, 분당 서울대병원)과 그의 심정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 편지 사본(왼쪽). 7일 장씨 사망 2주기를 기해 경찰청 앞에서 열린 전국여성연대의 재수사 촉구 기자회견(오른쪽) © 여성신문
성접대 강요에 못 이겨 자살한 탤런트 고 장자연씨의 영결식(지난 2009년 3월, 분당 서울대병원)과 그의 심정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 편지 사본(왼쪽). 7일 장씨 사망 2주기를 기해 경찰청 앞에서 열린 전국여성연대의 재수사 촉구 기자회견(오른쪽) © 여성신문

다시 한번 말하지만 2주도 안되는 사이,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다른 듯 보이나 모두 같은 궤적 위에서 움직이고 있어서 더 끔찍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2등 시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은 국민을 보호하거나 사법 체제를 수호해야 하는 기관들로부터까지 무시되고 배제당한다. 미투운동 이후에도 검사들에 의한 성폭력, 성추행은 일상처럼 일어나고, 경찰들의 부실 수사 및 수사 외면도 비일비재하다. 교육현장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성을 시민으로 살게 할 것이냐, 아니냐의 공은 21대 국회로 넘어왔다. ‘스토킹 방지법’과 ‘디지털 성폭력 특별법’, ‘비동의 간음죄 도입’ 같은 비가역적인 제도의 전환이 시급하다. 상임위 구성이 늦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180석에 가까운 절대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마음 먹기에 따라 언제든 위의 법안들은 제개정 가능하다.

지난 5월 31일 여성계의 강한 반대를 알면서도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을 의전비서관(1급)으로 내정한 문재인 정부이기에 미심쩍은 눈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거듭 주장해 온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을 믿고 싶다. 20대 국회에서 현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거듭 발목을 잡았기에 대통령의 약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믿고 싶다. 개헌 외엔 하지 못할 일이 없고, 자신들의 의석수가 가진 권력을 서슴없이 쓰겠다고 공언하는 이해찬 대표의 의지가 여성을 위해서도 쓰일 것이라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백인 경찰의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시민의 “I can't breathe(숨이 막혀요)”라는 말이 세계인들을 눈물 짓게 만들었다.
지난 2주 동안 이 땅의 많은 여성도 같은 말을 쉼 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한국 여성으로 살기 숨 막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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