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복지법 '가정 보존'을 목적
학대 부모 친권박탈 거의 없어
관계자들은 핑계만

ⓒ여성신문
ⓒ여성신문

 

참혹한 아동학대에 철수(가명·9)는 가방 속에 갇혀 숨을 거뒀다. 영희(가명·9)는 길거리에서 상처투성이에 성인용 슬리퍼를 신은 모습으로 발견됐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철수가 겪은 고통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이 학대사실을 알고서도 부모와 살겠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철수가 그랬듯이 영희도 자신을 끔찍하게 학대한 부모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동복지법 제42조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목적을 ‘아동학대와 방임의 문제에 전문적으로 개입할 때에는 가정 보존과 가족 기능의 회복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밝힌다. 경찰과 아보전은 철수의 학대를 지난달 이미 알았다. 철수의 학대 사실을 조사한 아보전은 “반성한다”는 계모 A(43)씨와 친부 B(45)씨의 말을 토대로 ‘가정 기능 강화’라는 결론의 보고서를 경찰에 냈다. 경찰은 그대로 따랐다. 철수의 집은 ‘학대우려 가정’으로 지정됐지만 철수는 보호받지 못했다. 철수는 학대의 결과로 4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1일 A씨가 철수를 '거짓말 한다'는 이유로 가방 속에 7시간 동안 가뒀기 때문이다. A씨는 의식을 잃은 철수를 뒤늦게 병원에 이송했지만 철수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예견된 사태“라며 영희 또한 지금의 경찰과 아보전이라면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가부장적인 질서에 따라 가정의 회복을 골자로 하는 아동보호법은 매번 피해자를 가정에 돌려보낼 것이고 범죄는 반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표창원 전 국회의원은 “우리 법상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법원에 친권상실 청구를 할 수 있지만, 실제 잘 안 이뤄진다”며 이러한 배경에는 “아이는 부모와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와 종합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아동학대 피해 아동들 중 82.0%는 학대를 한 부모에게 돌려보내진다. ⓒ여성신문 

 

영희는 10일 경찰의 2차 조사를 받았다. 경찰 조사에서 영희는 2년 전부터 계부 C(35)씨와 친모 D(27)씨가 식사를 잘 주지 않고 몽둥이로 때리거나 욕조에 물을 채워 머리를 집어넣는 등 학대를 가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C씨를 불구속 조사했으며 추가 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영희는 병원에 입원해 아보전 관계자 등이 보호 중이지만 C씨와 D씨는 아직 친권을 행사할 수 있다. 향후 영희가 위탁가정이나 시설로 가지 못 하고 C씨와 D씨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친권자인 이들에게 가는 수밖에 없다. 

현행 아동보호법 등 아동 학대와 관련한 시스템 전반은 보건복지부 소속이다. 미국은 아동학대를 심각한 범죄로 보고 학대가 일어난 가정에 대해 법원의 즉결심판을 통한 강제명령으로 학대 행위자와 피학대 행위자를 즉시 분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한국의 아동학대 관할 부처는 보건복지부기 때문에 이러한 개입이 쉽지 않다. 천안 사건을 두고 서울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학대가 의심된다고 해서 기관이 아이를 당장 빼 올 수 있는 게 아니고, 조사관이나 예산이나 모두 부족한 상태니 어쩔 수 없다”며 “기관의 조사관들도 어디까지나 직장인이고 출퇴근 시간이 있는데, 방문하려고 해도 아동 보호자가 집에 없다고 하면 법이 없는데 어쩌겠는가?”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10월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은 기관이 수행하던 현장조사와 응급조치 등을 지자체 소속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대신하도록 한다. 공무원이 학대 행위자에 출석과 진술,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불응시 처벌도 할 수 있게 됐다. 전담 공무원 1명은 아동학대 사건 50건을 담당한다. 그러나 개정안은 시행 전부터 허점이 지적되고 있다. 해당 개정안에 대해 실무자들은 공무원에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결국 경찰-아보전-담당 공무원 모두가 학대 사건에 대한 집행력을 갖지 못하면 상담을 조건부로 하는 기소유예 등만 늘 것이라고 비판한다. 

공혜정 아동학대방지방지협회 대표는 아동의 보편적인 심리를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 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3년 일어난 칠곡 아동학대 사건 등에서 학대 피해 아동들은 가해 부모의 편을 들었다. 공 대표는 “부모가 학대할 것이 뻔히 보여도 친권을 행사하거나 아이가 돌아가겠다고 하면 경찰과 아보전은 아이를 돌려보낸다. 아보전은 모니터링을 진행한다면서 학대를 한 부모에게 전화로 ‘잘 지내시죠?’ 묻고 경찰은 이를 방치한다. 시스템을 전부 고치지 않으면 철수와 같은 일은 또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키워드
#아동학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