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묻지마 폭행 혐의를 받는 이 모씨가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철도경찰 호송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뉴시스

 

서울역에서 이유 없이 3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피의자 이모씨(32)가 석방됐다.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일 오후 3시 상해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이모씨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긴급체포가 위법해 그에 기초한 이 사건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범죄혐의자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있어 예외를 둘 수 없다”며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김 부장 판사는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원과 주거지 및 휴대전화 번호 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며 “피의자가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상황이 아니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피의자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즉시 피의자 주거지의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긴급체포하고 압수수색을 실시할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구속영장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쉽게 말해 법원은 긴급체포 제도는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하며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긴급체포는 ’영장 없는 체포‘로서 위법했기 때문에 이 사건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긴급체포는 피의자에게 장기 3년 이상 징역형에 해당하는 혐의가 있어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을 경우나 사전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는 긴급한 사정이 있을 때만 허용되는 제도다.

이에 대해 피해자의 가족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이날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인데 비록 범죄 혐의라 할지라도 주거의 평온 보호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재판부의 영장 기각 이유를 보고 최근 본 문장 중 가장 황당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SNS 운영자는 “분노가 더욱 차 오른다”며 “추가 피해자가 지금 몇 명인지 모르느냐”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잠도 못 자고 불안에 떨며 일상이 파괴됐는데 가해자의 수면권과 주거의 평온을 보장해주는 법이라니 대단하다”며 “동생과 추가 피해자들을 보호나는 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고 강조했다.

앞서 이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1시50분 공항철도 서울역 1층에서 처음보는 30대 여성이 어깨를 부딪치자 이유 없이 여성의 얼굴을 때리고 도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은 눈가가 찢어지고 광대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폐쇄회로(CCTV)에 잡히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역 근처 CCTV 영상과 피해자 진술 등 토대로 용의자를 특정한 뒤 지난 2일 이씨를 자택에서 검거했다. 경찰이 이씨를 검거할 당시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걸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경찰이 출입문을 강제로 열고 잠을 자던 피의자를 긴급체포해 논란이 일었다.

한편 철도특별사법경찰대는 5일 피의자 이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대해 법원 기각사유를 검토한 후 향후 법과 원칙에 따라 여죄 등을 철저히 수사할 계획이다. 체포 당시 피의자가 주거지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했지만 휴대폰 벨소리만 들리고 아무 반응이 없어 도주나 극단적 선택 등 우려가 있어 불가피하게 체포했다고 철도경찰 측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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