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가정폭력 증가에 각국 지원기관들 대책 강구
마트·약국 등 필수 시설 이용한 신고·상담에
감염·가해자 만날 우려 없는 ‘비대면 재판’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가정폭력 피해 우려가 커지자, 각국의 가정폭력 피해지원 기관들이 ‘코로나 시대’에 맞는 지원 대책을 하나둘 내놓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UN) 등 국제기구는 코로나19 사태로 가정폭력이 증가할 전망이지만, 공식 통계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가정폭력 범죄 특성상 이를 수치로 입증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UN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40%도 되지 않는다. 봉쇄령이나 거리두기 조처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도움을 청하기는 더 어려워진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국가가 먼저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집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나마 약국과 슈퍼마켓 정도다. 이에 착안한 것이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카라니섬평등연구소가 지난 4월 시작한 ‘마스크19(Mascarilla-19)’ 캠페인이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가 약국에서 암호를 말하면 약국 직원이 대신 신고할 수 있다. 약국 직원은 ‘마스크 19’를 달라고 한 여성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받아 피해지원기관에 신고한다. 피해자는 귀가하거나 경찰 혹은 활동가가 올 때까지 약국에서 기다릴 수 있다. 스페인 외에도 프랑스, 영국 등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 비슷한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카라니섬평등연구소가 지난 4월 시작한 ‘마스크19(Mascarilla-19)’ 캠페인 ⓒGobierno de Canarias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카라니섬평등연구소가 지난 4월 시작한 ‘마스크19(Mascarilla-19)’ 캠페인 ⓒGobierno de Canarias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에서는 피해자가 슈퍼마켓에서 암호를 말하면 직원이 대신 신고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수도 파리와 프랑스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슈퍼마켓 내에 ‘팝업 상담소’를 열고, 가정폭력 피해자가 장을 보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피해 상담과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구매 영수증 하단에 피해 신고·지원기관 연락처를 인쇄해서 나눠주고, 매장에서 공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 피해자가 지원기관에 연락할 수 있도록 돕는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슈퍼마켓에서 가정폭력 지원 정보를 담은 책자를 나눠주는 캠페인이 최근 시행 중이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지낼 보호소와 쉼터 등이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해 폐쇄되거나 지원을 축소하면서 피해자들이 갈 곳을 잃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프랑스 정부는 이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호텔 방을 제공하겠다고 지난 3월 밝혔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슈퍼마켓에서 가정폭력 지원 정보를 담은 책자를 나눠주는 캠페인이 최근 시행 중이다. ⓒUNDP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슈퍼마켓에서 가정폭력 지원 정보를 담은 책자를 나눠주는 캠페인이 최근 시행 중이다. ⓒUNDP

법원 출석 없는 ‘비대면 재판’도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뉴욕주·북웨일즈 법원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보호명령을 청구하면 ‘비대면 심리’를 거쳐 신속하게 명령을 발부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법원에 보호명령을 청구함으로써 경찰·검찰을 거치지 않고도 신속하게 가해자로부터 접근금지 등 임시 조처를 받을 수 있다. 지난 5월 31일 현지 언론 ‘디사이드’ 보도를 보면, 북웨일즈 법원 측은 최근 가정폭력 심리를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 전화, 이메일을 이용해 진행한 결과 행정 효율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법원에 출석하는 데 드는 비용과 가해자 측과 마주해야 하는 부담도 줄일 수 있어서, 각국 법원들이 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 비대면으로 성폭력 피해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 피해지원 기관들은 피해자에게 스마트폰의 사생활 보호모드 작동법을 교육하고, 가해자가 불시에 방에 들어올 때를 대비해 클릭 한 번으로 피해 신고 사이트 접속화면을 구글 화면 등으로 바꾸는 기능도 제공한다. 각국 피해지원 기관들은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가정폭력 신고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만든 코로나19 속 가정폭력 대응법 홍보물 ⓒWHO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만든 코로나19 속 가정폭력 대응법 홍보물 ⓒWHO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만든 코로나19 속 가정폭력 대응법 홍보물 ⓒWHO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만든 코로나19 속 폭력피해자 지원 방법 홍보물 ⓒWHO

 

미국 기반의 가정폭력 피해지원단체 'Women's Funding Network'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간단한 손짓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교육, 홍보하고 있다. ⓒWomen's Funding Network
미국 기반의 가정폭력 피해지원단체 'Women's Funding Network'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간단한 손짓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교육, 홍보하고 있다. ⓒWomen's Funding Network

개인 전화를 갖고 있지 않거나 쓸 줄 모르는 피해자들, 가해자의 감시와 방해 때문에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은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유니세프는 지난 5월 1일 발표한 ‘직통전화와 모바일만으로는 부족하다 : 코로나19 속 젠더폭력 서비스 제공’이라는 제목의 가이드라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고,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안심전화 부스’ 설치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원하면 집 밖에 천을 매달거나 양동이를 내놓는 등 주변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라고 권고 △웨어러블 긴급호출기 지급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단 피해자가 믿고 도움을 청할 만한 지지자들이 가까이에 있는지, 피해자가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히지는 않는지 등을 섬세하게 고려해서 실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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