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를 향한 김어준의 음모론과 우상호의 폄훼가 가부장 그 자체다
진영논리에 갇혀 스스로 적폐가 된 586세대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의 말에 우리 사회가 경청해야

거대한 적폐가 진보라는 탈을 교묘하게 쓰고 앉아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여성운동을 권력의 액세서리로 쓰고 있다. 민주당과 김어준, 우상호 그리고 586 운동권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다.

“첫째는 사실 여부, 두 번째는 만약 사실이라고 하면 그 경위 이런 내용들이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 문제가 떠올랐을 때, 2016년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청와대를 지킨답시고 한 말이다.

2020년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사실관계가 명확해야 하고, 신상털기식 의혹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윤미향 당선인을 엄호했다. 아울러 민주당 내 의원들에게 개별 의견을 내지 말 것을 주문했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의원들을 정당 조직원 정도로 여기는 태도다.

지난 25일 기자회견하는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5일 기자회견하는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 ⓒ뉴시스·여성신문

김어준이 이용수 여성인권 운동가의 25일 기자회견 후 제기한 의혹은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라도 오랫동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언제나처럼 음모론을 내세웠다. 이용수의 회견에는 반드시 배후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근거는 언제나처럼 그의 예지력뿐이다. 회견문에 적힌 ‘소수 명망가’라는 단어가 그 연세 어르신이 쓰는 용어가 아니라는 주장이 유일한 근거라면 근거다.

1991년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열기가 이 땅에 가득할 때 학생운동 배후에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있었다. 1994년에는 대통령 앞에서 학생 운동의 뒤에 김정일이 있다는 주장을 펼쳐 “주사파 파동”을 일으켰다. 2019년에 선종한 박홍 신부 (전 서강대 총장)가 그 사람이다. 그의 근거 없는 말로 야기된 피해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의심은 매우 잔인한 폭력이다. 복구하기 어렵고, 상흔은 지워지지 않는다.

2019년 故 이희호 여사 빈소 조문하는 김어준 ⓒ뉴시스·여성신문
2019년 故 이희호 여사 빈소 조문하는 김어준 ⓒ뉴시스·여성신문

이용수의 말하기는 저항적이다. 그가 말한 30년 위안부 운동의 한계와 새롭게 이루고자하는 위안부 운동의 방향은 본질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반일감정을 내세우며 국내 정치에 활용한 정권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러자 우상호 의원은 이용수를 남의 편으로 만들었다. 윤미향을 ‘같은 당의 동지’라고 칭하며 ‘네가(윤미향) 나를 정치 못 하게 하더니 네가 하느냐가 이용수 운동가의 분노 원인’이라고 했다. 이용수 운동가는 ‘동지’가 아니고, 윤미향 당선인은 ‘동지’인가. 북한에 유리하다며 정권 비판을 금지하고 인신을 구속했던 독재 시대의 피해자이자 민주화의 주체라는 현 정권의 주요 인물들은 얄팍한 진영논리에 갇혀버렸다.

이용수를 대하는 민주당 586 정치인들의 태도는 가부장 그 자체다. 일찍이 하버마스는 “관행에서 벗어난 소수파의 행동에 대해 지배자나 다수파의 문화가 자기들 마음대로 기꺼이 ‘관용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행위”를 가부장적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소수자에게는 자애로운 얼굴이지만, 조금이라도 위협을 받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괴하는 오래된 관습이다.

지난 3월 비례후보 국민공천심사단 통과자 발표하는 우상호 위원장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3월 비례후보 국민공천심사단 통과자 발표하는 우상호 위원장 ⓒ뉴시스·여성신문

이른바 진보 정치인, 진보 언론인들의 이용수에 대한 폄훼와 공격을 외면하고, 윤 당선인과 정의연에 제기된 의혹에 침묵했던 시민단체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시민단체는 누구보다 앞서 윤 당선인과 정의기억연대에게 명확한 입장과 해명을 요구했어야 했다. 윤 당선인은 시민단체의 대표에서 공적인 견제와 비판을 수용해야 하는 위치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그가 헌신했던 30년 세월에 대한 안쓰러움은 잠시 뒤로 밀어두어야 옳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가혹한 칼날을 맞는 것 아니냐.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는 여성운동 스스로 가부장에 종속되는 꼴이다.

오랜 시간 민주당을 비롯한 기성정당은 공천이라는 기회 자체를 절차적 민주성이라는 외피를 쓰고 사실상 독점했다.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소수파인 여성계에 최소한의 ‘관용’을 보여주며 자신들의 자애로움을 보여줬다. 권력을 민주적으로 독점한 민주화 세력이 찔끔찔끔 여성계에 준 자비는 그들의 권력을 단단히 쌓는데 일조했다. 매 선거 때마다 여성 정치인이 기성 정당의 액세서리로 쓰인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여성계 또한 권력자의 관용을 자의적으로 수용하며 가부장 정치에 기대어왔다. 이번 위성정당 사태에도 몇 석의 여성정치인 의석은 편법의 근거이자 명분이자, 액세서리가 되었다. 여성 운동과 여성 정치의 전략은 새롭게 서술될 필요가 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홍수형 기자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홍수형 기자

삼십 년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은 부정할 수 없는 시민사회의 업적이다. 윤미향이라는 자연인의 수고도 너무 크다. 그러나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거리에 나와 이야기를 펼쳤던 당사자가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분들의 학력이 어떻고, 나이가 어떻고(늙고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딴지를 거는 태도는 온당치 못하다. 피해자에게 논쟁에 참여할 지적인 자격을 요구하는 것은 주객을 전도하는 일이다. 당사자들의 위안부 운동과 윤미향 당선인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누가 더 정당한 것인지 평가하는 것은 민주화 운동의 과실을 독점한 86세대들의 독선에 불과하다.

지난 25일 이용수 여성인권 운동가가 기자회견에서 “여자로서 미안합니다.” “더러운 성노예” “팔려 다녔다” “재주는 곰이 했다” 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가슴 아팠다. 나 또한 위안부 ‘할머니’를 단순한 피해자로만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그가 마땅히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의 피해를 전시하는 일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가. 성노예라고 칭해야만 피해자라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이용수 운동가가 “운동의 미래를 생각하자”고 충고했을 때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진정한 피해자의 회복은 어떻게 가능한가. 어떻게 당사자를 운동의 주체로 초대할 수 있는가. 새로운 여성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질문은 586 정치와 여성운동의 한계를 변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 또한 이 일의 피해자고 책임자’라는 이용수의 말은 자신뿐 아니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문제 해결의 당사자라는 당부처럼 들린다. 미래를 향해 가자는 이용수 여성인권 운동가의 말을 우리 사회는 경청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