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관리직종 평균 53세
평균 근속기간 1년 미만...
중장년층 일자리 부족에 못 떠나
근로기준법에 입주민은
직장 괴롭힘 당사자 포함 안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경비원 고 최희석씨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기도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직 노동자들은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려도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 없다. 고용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뉴시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경비원 고 최희석씨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기도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직 노동자들은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려도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 없다. 고용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뉴시스

 

아파트 주민의 ‘갑질’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비원 고 최희석(59)씨 사건을 생각하면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 강군희(68)씨는 목이 메인다. “그 사건을 보고 우리 아파트 주민 한 사람도 말하길 ‘그냥 관두면 되지 않았겠어요?’라고 하는데 그건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나이에 일자리가 어디 많은 줄 압니까? 젊은이도 어렵다지만 우리는 더 그래요.” 

아파트 관리소 직원들을 향한 입주민들의 ‘갑질’이 죽음을 부르고 있다. 중장년층 일자리의 부족과 근로기준법에 소비자나 원청 관계자 등을 포함하지 못 하는 허점 등 현행법제도의 부실이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고 최희석씨에게 폭언과 협박을 일삼고 폭행으로 코뼈를 골절시킨 혐의를 받는 아파트 입주민 심씨가 27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심씨는 4월21일 처음 주차문제로 불만을 가지고서부터 최씨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당장 사표 써라” “너는 내 머슴이다” 등 폭언을 퍼붓고 폭행을 가했다. 다른 주민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최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목숨을 잃었다.

사건이 알려지고 온 사회가 공분했지만 한 달도 되기 전 비슷한 사건들이 또 세상에 알려졌다.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 A(62)씨가 경비원 재계약 문제를 두고 입주민 B(56)씨로부터 폭행을 당해 전치 3주 진단을 받고 입원한 사실이 26일 전해졌다. 그보다 앞서 4월에는 경기 부천시의 아파트 관리소장 C(61)씨가 미완성의 사직서와 주민 갑질을 암시하는 메모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서울 지역 아파트 경비 노동자 5명 중 1명은 입주민으로부터 ‘갑질’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10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발간한 ‘서울시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 490명 중 92명(19.1%)이 입주민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는 관리소장 김모(64)씨는 “입주자대표회의가 누으라면 눕고 기라면 기어야 하는 게 관리소의 사람들이다. 자치회장, 동대표들이 ‘주민들의 의견이 이렇게 됐으니 저렇게 하시오‘ 하면 ’알겠습니다‘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바로 해고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주민이 ’갑(甲)‘으로서 관리직들의 모든 고용을 결정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관리소장을 포함해 경비원, 미화원, 기술직 등 모든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과거 다른 아파트에서 다른 직원들과 함께 자치회장의 집에 가서 대형 가구를 옮기고 대신 버려준 일도 있다. 

공동주택 위탁관리업체 우리관리의 조사에 따르면 아파트 관리직종 전체의 2018년 기준 평균 연령은 만 53세다. 미화직과 보안직은 평균 63.4세와 63.6세에 이르며 가장 젊은 층이 많이 종사하는 경리직 또한 평균 45세다. 성별로 보면 전체 직종 평균은 남성이 76%, 여성이 24%지만 경리직, 서무직은 여성이 100%, 미화직은 74.9%가 여성이다. 문제는 이들의 근속년수다. 관리직 전체 근로자 중 근무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는 44.3%이며 3년 미만을 전부 합하면 76.3%에 달한다. 장기간 근속이 어려운 것을 업계는 급여수준, 업무 과중 등으로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관리직원들을 향한 입주자의 ’갑질‘을 막기 위해서는 중장년층 이상 일자리 확충 및 노동권 보장과 관련 법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1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0·60대의 취업자 증가폭은 1963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60대 이상의 취업자 수는 37만7000명 증가했고 50대도 9만8000명 증가했다. 배경에는 정부의 공공서비스 일자리 확충이 있다. 따라서 5060세대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대거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 아파트 관리직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일자리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현재로써는 아파트 관리직 노동자들이 겪는 입주민 ’갑질‘을 막을 방법 자체가 없다고 비판했다. 국가인권위는 24일 소비자 등 제3자에 의한 외부적 괴롭힘 또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현재 고용관계에 있는 경우에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된다. 따라서 아파트 관리직 노동자와 입주민은 고용관계가 아니므로 근로기준법 적용이 불가능하다.

박 운영위원은 “우리 쪽으로 ’갑질‘ 사례를 신고하는 아파트 관리직 노동자들도 많지 않다. 중장년층이 종사하는 직업군이다 보니 온라인을 통해 신고가 용이하지 않아 그렇다. 그나마 신고된 경우는 자녀가 신고한 경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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