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의 티타임] ‘한국 몰카(Molka)’ 취재하는 해외 다큐팀 ‘Gaze Docs’
[신지예의 티타임] ‘한국 몰카(Molka)’ 취재하는 해외 다큐팀 ‘Gaze Docs’
  • 신지예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
  • 승인 2020.05.23 06:30
  • 수정 2020-06-1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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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불법촬영 피해 사실에 다큐 제작에 뛰어든 게이즈 독스
일부 한국 사회가 보인 n번방 피해자들에 대한 의심에 충격
피해자에 대한 대책과 논의 시급해
점점 커지는 디지털 이미지의 파급력 이해해야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서 성별을 지울 수 없다

신지예 여성신문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이 우리 시대 인물들과 티타임을 갖는다. 여성신문 온라인과 지면을 통해서 연재한다.
지치고 피곤할 때 마시는 한 잔의 차가 마음을 위로하는 것처럼, 읽는 이에게 따뜻하고 기분좋은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기를.



지난 3월 총선 준비 도중 해외 다큐멘터리 제작팀 Gaze Docs(게이즈 독스)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영화 제목은 <Molka(몰카)>(가제)였다.
한국 불법촬영물 사태를 집중 조명하기 위해 지난 12월부터 촬영 중이란다. 해외 사례 중 하나도 아니고 한국 사건을 중심으로 다큐를 찍는다니, 어떻게 한국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들이 궁금해졌다.
"제가 인터뷰이가 될테니 여러분도 저의 인터뷰이가 되어주세요." 게이즈 독스는 나의 제안을 재밌어했다. 아예 하루 날을 잡고 서로가 서로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Gaze Docs 멤버 (왼쪽에서부터 이론(Liron), 올리비아(Olivia), Leva(이에바), 태이(익명 처리)) ⓒ 여성신문


게이즈 독스에는 총 다섯 명의 팀원이 있다.
팀의 총괄 감독인 아니사 록펠러(Anissa Rockefeller, 미국, 35세)는 한국에서 5년 넘게 살았다. (아니사는 아쉽게도 인터뷰 당일, 코로나 때문에 스페인에서 발이 묶여 참여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2년 쯤 살았을까. 아니사는 친구로부터 불법촬영물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들었다. 불법촬영물 범죄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피부로 와닿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혜화역에서 불법촬영물 규탄 시위가 열렸다. 파도처럼 일어나는 여성들을 보며 아니사는 불법촬영물을 주제로 한 독립다큐멘터리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영화제작자 친구인 이에바에게 연락했다.

이에바 켈리타 (Ieva Zellite, 라트비아, 27세)는 아니사의 연락을 받고 예전에 읽었던 기사를 떠올렸다.
영국 가디언지가 보도한 한국 불법촬영 범죄 기사였다.

이에바 켈리타 (Ieva Zellite, 라트비아, 프로듀서)

이에바 : 그 기사에서 처음 '몰카'라는 단어를 봤어요. 그런데 내용을 읽으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불법촬영 범죄 사건을 마치 기행처럼 다뤘거든요. 아무리 외신 보도라지만 기사 자체에서 피해자, 생존자에 대한 고민이 적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더랬죠. 기존의 미디어나 언론에서는 성폭력 관점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니사의 제안이 좋다고 생각됐어요.

올리비아 넬러(Olivia Neller, 영국, 28세)는 디지털 성폭력의 심각성에 주목했다.

올리비아 넬러(Olivia Neller, 영국, 프로듀서)

올리비아 : 누군가는 디지털 성폭력을 성별의 문제로 보지 말자고 합니다. 그러나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서 성별 격차를 지울 수 없어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이미 현존하는 이미지에는 여성혐오가 담겨있습니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동된 사회죠. 온라인의 불평등이 현실의 여성들에게 피해를 주고 여성의 삶을 위협하고 있어요. 

이론(Liron Shalit, 이스라엘, 26세)은 게이즈 독스의 유일한 남성이다.

이론(Liron Shalit, 이스라엘, 카메라맨)

이론 : 남성으로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중요한 이슈를 알리는데 함께 할 수 있어서요. 영화 제작을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조사하면서 젠더 불평등 문제와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남성으로서의 제 삶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제 친구들에게도 이 문제를 알리고 있고요.

Gaze Docs 팀에 가장 마지막에 결합한 사람은 번역 및 필드 프로듀서를 맡은 한국인 멤버 태이(가명)였다. 게이즈 독스의 이름은 태이씨가 만든 한국 사회 속 만연한 여성혐오 애니메이션 <Gaze>에서 따왔다.

태이 : 2018년 지방선거에서 투표하면서, 또 홍대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불평등한 판결을 보면서 무기력함을 많이 느꼈어요. 사회 속에 만연한 여성혐오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불행하다고 느끼기도 했죠. 그때의 무기력과 분노를 원동력 삼아 애니메이션 <Gaze> 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여성분을 만나면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바꾸기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도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을 취재 중인 Gaze Docs


아직 가제지만 '몰카'라는 단어를 작품 제목으로 정하셨네요.

올리비아 : 불법촬영 범죄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은 정부의 방임 아래 성착취가 산업화되었어요. '몰카'라는 단어가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법촬영 범죄가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됐잖아요. 그 문제를 영화에 잘 담고 싶었어요.

또한 한국 여성들이 보여주는 활동력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요. 유럽에서도 이미지 기반 디지털 폭력이 일어나지만,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지 않아요. 시민들이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거든요. 그러나 한국 여성들은 집회를 열고, 결국 정부가 여성들의 말을 듣게 했습니다.

해외 언론에서는 한국 문화가 매우 조용하고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묘사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한국 여성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며 변화를 위해 움직이는 모습에 감명받았어요.

 

활동가 인터뷰 중인 Gaze Docs

 

다른 나라의 불법촬영물 범죄 현황은 어떤가요?

올리비아 : (제가 영국에 살아서) 영국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불법촬영물이나 성착취물 관련 사건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서 법 제정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Up-skirt shot(치마 속을 촬영한 사진)이나 Creep shot(성적수치심을 일으키는 사진)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었고 관련한 법 제정을 했어요. 그러나 아직 불법촬영물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는 매우 낮은 편이에요.

이에바 : 미투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게 최근 일이잖아요. 성범죄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이제 겨우 하게 되었는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이해는 더 낮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많으시겠어요.

이에바 : 촬영을 하면서 한국 기자와 활동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전에는 한국 자료에 대한 번역이 많지 않아 이해가 낮았거든요. 특히 프로젝트 리셋 팀이 보여준 n번방 관련 자료 등을 보게 되면서 생각보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았습니다. 너무 어린 여성들이 착취당하고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죠. 현실에서 벌어진 일인데 현실성이 없었어요.

올리비아 : 저는 다큐를 찍기 위해 잠시 한국 영어 회화 원어민 강사로 일한적 있는데 이런 일도 있었어요. 남자 수강생이 영어 회화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군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남자는 군대 가야하고 여자는 안가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여자도 군대 가면 공평할까요?”라고 물으니까 여자들은 또 군대에 가면 안 된대요. 물론 영어로 이야기하니까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제가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 여자는 전용 주차장이 있지 않냐는 연관성이 떨어지는 카드를 꺼내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여성권리에 대해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로 들렸어요.

 

영화 <Roll Red Roll>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논쟁 속에서 종종 나오는 주장이에요. 결국 이런 일도 사회 인식 개선과 연결된 것 같아요. 젠더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도록 하는 일이 또 디지털 성착취를 막는 일과 연결되고요.

올리비아 : 같은 이유에서 저는 영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교육과 인식개선에 영화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낸시 스워츠맨이라는 (Nancy Schwartzman) 다큐멘터리 감독이 있습니다. <Roll Red Roll>, <The Line> 등 여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어요.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상영되었어요. 청소년과 남성이 잘못된 남성성과 강간문화를 돌아보고 스스로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임팩트 캠페인으로까지 이어졌고요. 저도 그 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n번방 관련한 경우 취재해보니 n번방 안에 들어갔다가 이건 문제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지만 신고까지 안 한 경우가 있대요. 그런데 방관도 잘못이잖아요.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n번방 같은 성착취 사건을 목격했을 때 묵인하지 않고 신고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어요.

 

디지털 성착취에 대한 문제의식이 아직 부족한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이에바 :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회에서 생존자의 일상을 말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자살하는 경우도 많고 교육권을 박탈당하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이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론 : 지금은 현실세계와 디지털세계를 분리할 수도, 분리될 수 없습니다. 두 세계가 혼합되어 있고 점점 더 똑같아지고 있어요. 피해자들은 현실 세계의 피해만큼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성폭력은 특히요. 남성들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인간의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몇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사회의 젠더 불평등을 바꾼다는 건 더욱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페미니즘은 시민권의 탄생과 함께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지금보다 척박한 시대 속에서 많은 여성이 싸워왔다. 어떤 때는 투쟁으로, 어떤 때는 설득으로. 앞서간 이들의 헌신 덕분에 현재가 있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현실 속 여성폭력을 보며 우리는 낙담해야 할까, 용기를 내야할까.

페미니즘은 실천이자 운동이다. 여성들의 연대가 슬슬 국경을 넘어서고 있다. 최근의 n번방 방지법 제정은 디지털 성폭력과의 싸움의 시작일 뿐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여성들 덕분에 첫발을 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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