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사무총장 각국 정부에 "혐오를 막기 위해 노력해달라" 당부
한국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는 소수자 혐오 발언
혐오와 차별은 감염병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혐오의 쓰나미가 전 세계를 덮쳤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8일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전달한 메시지다. 그는 온라인과 길거리에서 혐오 발언 및 폭력이 늘어나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혐오와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가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 ⓒ뉴시스·여성신문

구테헤스 사무총장은 각 정부에 “혐오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하며 언론, 특히 소셜미디어 기업들에는 인종차별주의와 여성 혐오 등 해로운 내용의 콘텐츠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혐오 피해를 받은 당사국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호주에서 코로나19를 옮기고 다니지 말라'며 현지인에게 폭행당하기도 했고, 미국 뉴욕 길거리 한복판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얼굴을 가격당한 국민도 있다. 학교, 직장에서 차별적 언사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호소하는 재외국민도 상당하다. 특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감염병을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한국계를 포함한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인종차별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도 혐오의 쓰나미가 일고 있다.


한국 내부의 혐오 폭력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이태원 지역의 코로나19 감염을 계기로 성소수자 혐오 발언들이 가감 없이 표현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를 주도하는 것은 공식 언론사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혐오를 막자고 당부하기 하루 전날, 한 매체에서는 이태원 코로나19 감염 사태 관련한 보도를 내보냈다.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갔다’ 제목의 보도기사였다. 뒤이어 여러 언론사에서 코로나 감염 사태의 책임을 성소수자 정체성을 연결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태원 클럽과는 관계없는 ‘성소수자 찜질방 탐방기’ 내용의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코로나19 감염 현황이나 방역과는 관계가 적고, 성소수자 혐오 확산을 일으킬 수 있는 보도내용이었다.

'감염자 개인정보'라고 불리며 온라인 유포되고 있는 이미지 캡처 ⓒ뉴시스·여성신문
'감염자 개인정보'라고 불리며 온라인 유포되고 있는 이미지 캡처 ⓒ뉴시스·여성신문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갔다’ 기사에는 확진자의 거주지와 직업 등을 과도하게 담아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이태원 클럽 방문자와 주변인의 직장 등 신상정보가 담겨있는 이미지 파일이 유출되기도 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태원 게이클럽 확진자 정보’라는 파일이 돌았다.

혐오는 해결책이 아니다

위에서 인용한 기사를 조금만 바꿔 상상해보자. 만약 미국의 한 언론사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기사를 보도한다면 어떨까.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녀갔다’ 가 아닌 ‘LA 한인 전용 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한국인 찜질방 탐방기’ 등의 기사가 보도된다면 미국 내 재외국민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일상을 두려움 속에서 지내야 하는 괴로움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과거 팬데믹 사태에도 소수자를 향한 혐오 문화가 만연했다. 일례로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에는 흑인들이 바이러스 전파자로 몰렸다. 흑인들은 표준 의료 시설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치료받거나 흑인 전용 병원에서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열악한 의료서비스는 결국 지역사회 감염을 악화시켰다.
현재에도 혐오는 방역의 걸림돌이다. 국내 성소수자 
혐오가 심해질수록 소수자 집단은 아웃팅 등을 두려워하게 된다. 개인의 신상 공개 우려를 감수하면서 감염 검사 받는 것을 꺼리게 되고, 전반적인 방역 체제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소수자를 공격하는 혐오 발언을 멈춰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인간은 성별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 아무리 코로나 사태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야만의 사회로 치닫지는 않길 바란다.

13일 오늘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더 파운틴 ⓒ뉴시스·여성신문
13일 오늘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더 파운틴 ⓒ뉴시스·여성신문

코로나 팬데믹은 전 세계를 덮친 대규모 재난이다. 혼란의 시기인 만큼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재난 보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회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증가하는 혐오발언과 폭력 사건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촉구한 사무총장의 말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을 위한 요청이다. 동시에 우리 또한 혐오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주체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사람은 소수자를 차별한다. 차별과 혐오는 감염병 예방에 도움은커녕 해악만 끼칠 뿐이다. 지금 같은 팬데믹 시국에는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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