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피해자 재심 청구 예정
남성중심적인 재판부
폭행/협박 없이는 강간 아닌 형법
어이없는 판결들 많아

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하고 있지만, 남성중심적 법체계는 여성들에게 공평하지만은 않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 사건에서 사법부가 피해 여성의 관점에서 정당방위를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하고 있지만, 남성중심적 법체계는 여성들에게 공평하지만은 않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오는 6일, 최말자(74)씨와 한국여성의전화는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6년 전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1964년, 부산지방법원은 강제로 입을 맞추고 성폭행 하려 한 가해자 노모(77)씨의 혀를 이로 물어 1.5cm 자른 최씨를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최씨의 재심 청구로 과거 잘못된 통념에서 내려진 성폭력 사건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성폭행 가해자-피해자 약혼 사건

1973년 5월3일, 대구고등법원 형사부는 성폭행 가해자와 피해자를 약혼시켰다. 재판부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피해자(17)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을 선고받은 정모(17)씨가 형이 무겁다는 취지로 낸 항소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를 설득해 두 사람을 법정에서 약혼시키고 증인이 됐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이미 버린 몸이니 오히려 짝을 지어서 백년해로 시키는 것이 좋다”며 구슬렸다. 사건은 1973년 5월20일 선데이서울에 실렸다.

 

△안동 주부 사건

1988년 9월,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은 2월 골목에서 강제로 입맞춤 하려는 남성 신모(19)씨의 혀를 깨물어 자른 30대 여성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죄를 적용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피해자는 당시 성폭력 사실을 신고조차 못 해 그대로 사건이 묻힐 뻔 했다. 도리어 피해자를 억압하고 강제로 입을 맞추려 한 남성 신씨와 김모씨가 피해자를 고소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유죄판결의 근거로 ‘가해자가 놀라 피하게 하는 정도로 그쳐도 될 것을 물어뜯어 혀를 잘랐고’, ‘범행장소가 상가가 밀집돼 있고 범인이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으니 피해자가 공포에 떨어 혀를 깨물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1심 선고 후 강기원, 김은집, 박원순, 박주현, 조창영, 한승헌, 황산성 변호사 7명이 무료 변호에 나서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밀양 사건

2005년 4월, 울산지방법원 가정지원은 10명의 남고생들에 대해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렸다. 밀양 소도시에서 1년에 걸쳐 중학생 피해자를 불러내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피의자들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일명 ‘밀양 사건’으로 알려진 용의자만 116명에 달하는 집단 성폭행의 판결이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울산지검은 범행에 적극 가담한 피의자 10명을 기소하고 20명을 소년부로 송치했으며 13명에 대해서는 피해자와의 합의, 고소장 불포함 등을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검찰로 넘어간 전체 피의자 수만 43명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형사처벌 이력이 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시 재판부는 피의자들의 진학과 취업이 결정됐고 청소년들로 성적 호기심과 충동적 집단심리로 일어난 우발적 측면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보습학원 원장 사건

2019년 9월, 대법원은 채팅앱으로 만난 초등생(10) 피해자에게 소주 2잔을 마시게 하고 취한 피해자의 양손을 잡아 눌러 성폭행한 보습학원 원장 이모(35)씨를 강간죄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신 13세 미만 피해자의 동의 어부와 관계없이 모든 상황에서 처벌하는 미성년자 의제 강간에 대해서만 유죄로 보고 징역 3년을 내렸다. 2심 재판부가 이씨가 피해자를 양손을 잡아누른 행위를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이 없으며 이를 피해자가 뿌리치거나 할 수 있었다고 본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법률전문가들은 반드시 폭력이나 협박이 수반되어야만 강간으로 인정하는 형법 297조 강간죄 구성요건의 개정과 남성 중심적인 법원 판결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조현욱 변호사는 “과거 우리 사회의 성의식은 지금과 현저하게 달랐다. 성폭력 피해자를 가해자와 결혼을 시킬 정도의 사회였기 때문에 처절하게 반항하는 여성의 입장을 헤아려 정당방위를 인정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 법원은 아직 피해자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정당방위에 달할 행동을 하면 이를 위법 행위로 보고 피해자에 책임을 묻는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이번 재심 청구에 대해서 “공무원의 고의적인 중대과실이 인정되어야 국가배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직 배상 가능성에 대해 속단할 수는 없다”며 “다만 반드시 정당방위로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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