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의 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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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마흔의 길에 들어선 공선옥

소설가 공선옥씨가 첫 기행산문집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를 냈다. 현장에서 소외 받는 이들에게 관심을 보여온 그가 한 달에 한번 전국 곳곳을 돌며 만난 다양한 이들의 삶이 등장한다. 마흔에 길을 나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공선옥(40). 못남과 모자람, 세상의 그늘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아 온 그가 첫 기행산문집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 말)를 펴냈다. 작년 한해 월간 <말>지에 연재를 하는 동안 ‘달거리 하듯, 한 달에 한 번씩 바람난 어미’가 되어야 했던 그는 길에서 주름진 얼굴과 수줍은 매무새, 가난한 살림살이와 풍요로운 심성을 가진 이들을 만나 왔다. 강원도에서 만난 도붓장수 지복덕 할매, 전남 순창 모산 마을의 정영섭 노인, 강원도 화천·김화의 군인들, 가난한 이들의 첫 기착지 가리봉동의 노동자들, 수해가 휩쓸고 간 무주 무풍 마을, 경북 봉화 화전민 마을의 사람들.

‘집에 여섯 새끼를 두고 한번 나오면 열흘이고 보름이고 비방약을 팔아야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지복덕 할매를 보며 공씨는 자신과 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떠올린다. 길 떠나기 전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마치 전쟁을 치르듯 집에 남을 아이들 ‘먹이’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말한다. ‘엄마가 집구석에만 갇혀 있으면 글을 제대로 쓸 수 없고, 그러면 엄마 글을 아무도 사보지 않게 되고, 그러면 엄마는 다시 공장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가 거기에 갔다 오면 글도 더 잘 쓰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느냐’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에게 ‘집 떠남’은 치열한 모성의 확장이 아닐까. ‘살기 위해’글을 쓰고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문학을 한다는 그에게 아이들은 남성들이 강요한 모성 이데올로기로부터 떠났을 때 온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현실에 발 딛고 설 수 있는 힘을 준다. 전남 영광. 세 아이의 엄마로서 그는 장애 여성 최옥란의 죽음을 떠올렸다. ‘세상 사람들 다 부자 좋아하고 힘센 자 좋아하고 건강한 사람 좋아해도 같은 여성인 내가, 가진 것 없는 내가 왜 남의 일인 듯, 강 건너 불 보듯, 그이가 죽음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는 그 순간까지도 그이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것일까’자책하며. 언젠가 신문에서 ‘학대당한 엄마가 낳은 아이들은 행복한 엄마가 낳은 아이들보다 건강하지 못하다’고 쓰여진 기사를 보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모든 아이 엄마들은 무조건 다 행복해야 한다. 돈이 있든 없든, 건강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아이 엄마들은 무조건 다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고.

‘애 엄마’로서 그가 마주하는 가난한 이들은 사람 냄새, ‘신식이 아닌 구식 엄마들만이 낼 수 있는’ 고향 냄새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지독히도 눈물겹다. 마흔에 길 떠난 공씨가 처연한 시선으로 보아낸 이들의 삶은 날 것 그대로 보는 이의 가슴 한 편을 저리게 만든다.

소외 받은 이들의 삶,

‘봄은 차별하여 오지 않는다’

시대가 요구하는 천박함. 그 안에서 그가 발견해 낸 인간과 그들의 삶이 지닌 진정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우리 땅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품위, 배운 사람들이 잃어 가는 품성이 있지 않을까 그걸 찾아보자 생각했어요. 연재 시작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품성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남들은 상투적이라 해도 결국 자기의 슬픔이요, 자기의 것인 가난. 십 이삼년 전 구로동 주민이었고, 가리봉동 노동자였던 그는 길을 떠난 후 불쑥불쑥 비집고 들어오는 가난과 마주한다. 그리고 경북 봉화의 화전민 마을에서 읍내의 어르신들을 찾아 ‘어렵지 않으세요?’라고 묻던 도중 자신이 걸어 왔고 서 있는 곳을 발견한다. 그 곳은 주변이며 자신은‘아무리 기를 쓰고 도망친다 해도 절대로 센터로 갈 수 없는 변방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난 4월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아이 셋과 함께 여수에서 춘천으로 이사온 그. 변두리에서 바라보는 중심은 이면의 허상을 가진 채 지나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중심부가 지나치게 각광을 받잖아요. 도회지 사람들은 자기들이야말로 세련되었다 생각하지만 이는 장식이라고 생각해요. 그 속을 들여다보면 허상이 있어요.”

‘서울발 뉴스보다 지역 자체 방송국에서 제작한 지방 뉴스를 더 흥미롭게 본다’는 그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분명히 어느 동, 어느 슈퍼 뒷집 강아지가 몇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는 뉴스를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주변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계절은 변화한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갑자기 내 나라, 내 땅 사람들을 내가 너무 홀대했구나,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내보리라고 맹세하는 그토록 순한 사람들을 나, 아직 많이 사랑하지 못했구나 싶은 마음에 울컥 목이 메어왔다. 계절은, 자연은 세상의 중심이건, 세상의 귀퉁이건 차별하여 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한다. “인생은 이렇게 걷는 거야. 두려워할 것 없어. 걷다보면 당도하는 곳이 있게 마련이지. 우리같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오직 걷는 것, 누구의 힘도 빌릴 것 없이 오로지 내 튼튼한 두 발로 내 앞에 떨어진 인생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는 것, 거기에서 힘이 나오는 거라구. 공것은 원하지도 않고 그저 내 한발 내딛는 딱 그 만큼씩만 얻으며.”

‘도붓짐 등에 지고 해 기우는 국도변을 타박타박 걸어가던’ 지복덕 할매에게 그가 배운 모습이다.

마흔에 떠난 길. 작가로서 엄마로서 그에게 마흔은 의미 깊다. “마흔. 나서고 보니 마흔이더라구요. 서른에 나섰으면 ‘공선옥, 서른에 길을 나서다’가 됐겠죠. 젊은 것도 늙은 것도 아닌 기로에 서 있는 나이 아니겠어요.”

전남 곡성에서 출생한 공씨는 지난 91년 계간 <창작과 비평>에 단편소설 <씨앗불>로 등단 한 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멋진 한 세상>, <붉은 포대기> 등의 작품을 내놓았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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