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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가 모든 영역에서 여성을 대표하던 시대는 갔다

전문영역에서 경력 쌓은 여성들이 대표성을 갖는 시대

공영방송 이사진에 여성할당제 도입한 것은 의미있는 일

여성비율 30%에 도전 유숙렬 방송위원

페미니스트 언론인 유숙렬 방송위원의 활약이 기대를 받고 있다. 제2기 방송위원 중 유일한 여성인 그의 노력으로 공영방송의 여성이사 비율은 30%선까지 올라갔다. 그는 여성계로 분리되어 여성단체장이 여성대표가 되어왔던 관행을 없애고 각종 방송관련위원회에 여성할당제를 도입했다.

지난 5월 유숙렬(50·문화일보 여성전문위원)씨가 제2기 방송위원 중 유일한 여성위원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의 경력과 연륜이 그 자리에 넘침에도 불구하고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어쩌면 그것은 유숙렬 위원에게 있어 방송위원급의 경력보다는 ‘페미니스트 기자’라는 비주류 이미지가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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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하면서 방송계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유숙렬 위원. <사진·민원기 기자>

그런데 그의 제도권 진입은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가진 여성전문가들이 언론개혁, 정치개혁 등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코드와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라는 표식 자체가 이단아, 반항아, 마녀의 상징이었던 과거와는 한참 달라진 우리의 현실이다.

방송위원은 차관급의 권한과 책임을 갖는 자리로 KBS, MBC, EBS 등 공영방송의 정책을 결정한다. 작게는 방송프로그램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방송사 사장(EBS의 경우)을 임명하는 것까지 대한민국 방송에 관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방송사 내의 여성에 관한 승진차별, 중요결정직의 남성독식 등 성차별적인 관행이나 방송프로그램의 여성비하적인 부분에 대한 지적은 여성운동계의 중요한 아젠다.

이러한 상황에서 페미니스트 유숙렬 위원의 방송위원 진입은 방송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던 것. 기대는 엇나가지 않았다. 그가 방송위원이 된 후 공영방송 이사진의 여성비율이 대폭 증가했다.

방송위원회에서 추천 임명하는 KBS, MBC, EBS 이사진 총 23명 중 여성이사 6명이 진출해 여성할당 30%에 근접했다. 지난 6월 16일 방송위 발표에 따르면 KBS엔 총 11명 이사 중 윤수경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이영자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김상희 여성민우회 대표 등 3명이, 방송문화진흥회엔 총 9명 이사 중 임국희 아나운서·이옥경 미즈엔 대표 등 2명이, EBS엔 총 5명 이사 중 안정임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1명이 임명됐다.

- 이번 공영방송 이사진에 여성비율이 증가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할 때 각 분야에서 골고루 여성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성할당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방송위원회는 방송·언론분야, 문화·예술분야, 노동계, 법조계, 시민시청자단체, 언론학계, 경영·회계, 광고, 지역, 여성계 등의 분류를 통해 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여성몫은 여성계에서만 나왔다. 그로 인해 방송 등 전문분야와 무관한 명망가들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나는 여성계라는 분류를 없애고 여성쿼터를 지정해서 30%를 요구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자료들을 들이밀었다.

여성부 권장사항도 30%이고 2002년 여성부 백서를 보니 정부 부처 산하 소위원회에 여성참여율이 2002년 12월 현재 30.1%다. 실제 정부부처 산하 위원회의 여성참여비율 평균치를 제시하는데 거기에 다른 방송위원들이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또한 여성할당제는 정권이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즉 여야에 상관없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그래서 분야에 상관없이 여성비율 마지노선을 정해 여성부터 이사를 뽑는 식으로 했다. ”

DJ정부 이래로 정부 중요직의 여성자리는 주요 운동단체의 활동가들 자리였다. 여성운동은 여성대표직으로 가는 중요한 경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각각의 분야에서 꾸준히 일해온 여성들이 그것을 기반으로 국가적인 일에 참여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유숙렬 위원의 작업은 바로 그러한 시대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여성계 분류를 없애는 것에 대해 반대여론은 없었나?

“이미 여성계라는 이름으로 여성운동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 사안에 따라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시대다. 여성계라는 분류로 인해 여성단체장이나 명망가들이 각 분야의 대표성을 가지면서 역으로 전문분야에서 성장해온 여성들이 나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변호사 출신의 여성이 법무부장관이 되었지 않나. 그렇게 자기 분야에서 성장한 여성들이 각각의 분야를 대표할 수 있도록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유숙렬 위원은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지적을 서슴지 않는다. 이번 방송사 이사진 구성을 위해 시민단체에서 2배수 추천인 리스트 46명을 작성해 제출했는데, 거기에 여성몫으로 추천된 사람은 고작 5명에 불과했다는 것. 시민단체조차 여성할당제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여성단체에서도 정부를 향해서만 여성할당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함께 운동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에게도 그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는다.

- 여성의식이 부족한 여성들이 대표성을 갖게 되는 부작용도 있지 않나.

“그런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대표성을 갖는 여성들이 여성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반여성적인 여성이 자기 분야에서 여성으로 대표성을 갖기는 힘든 그런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3년 간 유숙렬 위원이 방송계 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그 활약상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페미니스트 언론인의 정체성을 견지하면서 방송조직 구조 내의 문제에 직면할 것이며, 누구보다 투명하게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마찰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유머로 잘 무마시켜 나갈 것이다.

유숙렬 위원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글이 있다. 유숙렬 위원의 언론인 후배인 엄주엽(문화일보 지키편집장)은 <신문과 방송> 최신호(5월호)에 실린 ‘기자 재발견 시리즈- 유숙렬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잘 놀고, 술 잘 먹고, 담배 잘 피고, 어줍지 않게 까불었다간 욕이나 실컷 먹고 찌그러질 각오를 해야 하는 ‘튀는’ 선배였다… 회사 권력에선 ‘왕따’를 당했을지 몰라도 그는 조직 속에서 격의 없이 어울렸고 상부의 문제점에 대해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였으며 노조활동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따르는 후배가 적지 않았다 … 그는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선배다.”

황오금희 기자egalia2@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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