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양형위 아청법(청소년보호법) 양형논의
피해회복 사실상 불가능한 점 등 반영
유사 범죄군 보다 높은 형량 설정하기로
5월 추가회의
6월 공청회 후 최종 결정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제101차 양형위원회 개의에 앞서 위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제101차 양형위원회 개의에 앞서 위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일명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크게 일어난 가운데 20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의 양형 기준을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성착취 범죄의 피해자 다수가 미성년자인 점, 피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 점 등을 고려해 관련 범죄를 엄벌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는 2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중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 제11조의 양형기준에 관한 논의를 했다.

양형위는 회의 직후 "소위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한 엄중한 현실을 인식하고, 기존 판결에서 선고된 양형보다 높은 양형기준 설정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의 양형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양형위는 5월18일 추가회의를 열고 형량 범위와 감경•가중 양형인자, 집행유예 기준 등에 관해 구체적 논의를 이어 갈 예정이다.

양형위는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기존 판례보다 높은 처벌을 내리는 데서 나아가 유사 범죄에서 권고 되는 형량보다 무거운 양형을 선택할 것으로 권고하기로 했다. 

N번방 사건과 맞닿은 이번 아청법 양형 논의 전 양형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사건의 심각성도 있지만 기존 여타 범죄들과 처벌의 형평성을 따져 정할 것이라는 의견과 디지털 성착취 근절을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우선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기존 아청법의 제11조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과 제7조 아동·청소년 강간은 모두 5년 이상의 징역형 또는 무기징역을 법정형으로 한다. 

그러나 지난 2012년 양형위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의제강간의 양형기준 기본영역을 징역 4~7년, 가중영역은 징역 6~9년으로 권고 했다. 

따라서 처벌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의제강간에 대한 양형기준과 유사한 수준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디지털 성착취 근절을 위해 더 높은 형량을 설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다. 

특히 피해자가 13세 미만일 경우 양형기준을 높이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했다.

이날 주요하게 논의된 사안 중에는 형량 감경요소다. 아동 피해자의 처벌 불원이나 의사능력이 있는 피해 아동의 승낙 등이 포함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처지가 대체로 양육환경 및 보호자의 태도에 크게 영향을 받고, 범죄 대상이 성인보다 되기 쉬우며 연장자의 의견에 쉽게 감화되는 특성 등을 살폈을 때 처벌 불원 의사 등을 감경요소로 반영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 

일명 N번방 사건 이후 아청법의 양형기준 가중영역 형을 무기징역 등 법정 최고형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졌다. 지난 N번방의 가해자 처벌 등과 관련된 주제의 청와대 국민동의청원 5개는 사상 최대 기록인 700만여 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현재 양형위가 설정한 법정 최고 기준형인 무기징역 등이 적용되는 예는 사망에 이른 성범죄 등 극히 일부다. 

이날 디지털 성범죄군의 대표 범죄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로 설정하기로 했다. N번방 사건 전 디지털 성범죄의 대표격은 일명 불법촬영으로 불리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였기 때문에 대표 범죄로 유력하게 거론 됐으나 법정형 등을 고려해 탈락됐다. 

지난 3월 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다가 부실 논란을 일으키고 일부 판사들로부터는 성명문 발표까지 있게 한 '법관 상대 설문조사 재실시' 요청은 없기로 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안과 관련된 범죄이나 설문조사 재실시가 있으면 양형기준 설정 작업이 지체된다는 점이 고려됐다.

양형위는 다음 달 추가 회의에서 양형기준안을 의결시킨 뒤 관계기관 의견을 조회할 예정이다.

이후 오는 6월22일 공청회를 개최한다. 이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양형기준안을 확정하게 된다.

양형위 운영규정에 따르면 양형기준안은 관보에 게재된 날 이후 공소가 제기된 범죄에 대해 적용된다. 따라서 공청회 이후 기준안이 게재될 예정이므로 빨라도 6월 말경 기준안이 실제 재판에 적용될 전망이다.

이 탓에 '박사' 조주빈(24), '부따' 강훈(18) 등 일부 기소가 이루어진 텔레그램 디지털 성착취 관련자들에게는 강화된 양형기준안이 적용 안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양형기준 자체가 강제안이 아닌 권고안이기 때문에 조씨와 강씨 등 텔레그램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들의 판결에 권고안이 강력한 효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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