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혐오와 ‘N번방’ 사건

 

3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박사방·n번방 회원에 대한 전원조사와 엄벌을 명령했다. 4월 9일 기준, 검거된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 221명 중 65명은 10대다. 경찰은 “미성년자는 신상공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론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경미한 처벌을 하는 것에 분노했다.

사람들은 n번방 운영진 중 ‘12세 초등학생’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같은 성착취임에도 10대 가해자의 사건은 더 끔찍한 범죄로 여겨진다. 아동청소년은 다른 세대에 비해 순수할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순수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인 동시에 통제 불가능한 범죄를 저지르는 무서운 존재로 인식된다. 사람들의 경악은 ‘요즘 10대 무섭다’는 말과 함께 청소년 집단 전반에 대한 비난과 혐오, 낙인찍기로 이어진다.

김어준은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범죄가 10대, 20대에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n번방 사건과 기성세대의 문화를 구분 지었다. 그러나 40대 중년의 남성 배우 역시 외모 품평과 음담패설, 모욕으로 뒤덮인 카톡방에 있었다. n번방 사건은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닌, 성착취 카르텔 전반의 문제다.

아동청소년이 순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n번방 사건의 청소년 피해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여성 청소년이 성에 무지해야 한다는 편견은 그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성에 대해 발화할 수 없게 만들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여성 청소년은 성착취의 피해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아동청소년의 범죄가 논란이 될 때마다 ‘소년법 폐지’ 주장이 제기된다. 나는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더욱 끔찍한 가해자로 묘사되는 것도, 더욱 무력한 피해자로 묘사되는 것도 반대한다. 소년범죄에 대한 엄벌주의적 정책이 소년범죄를 감소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엄벌주의를 넘어서, 청소년 내부의 성착취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지난 4월4일, n번방 사건에 연대하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지난 4월4일, n번방 사건에 연대하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n번방 사건 이후, 시민단체들에는 성교육과 관련한 상담 문의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2015년, 교육부가 발표한 성교육 표준안은 성차별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큰 비판을 받았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조와 금욕 중심의 성교육 표준안은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는 각 시도교육청의 매뉴얼로 인용되고 있다. 현재 n번방 관련 범정부TF에는 교육부의 성교육 주무 담당자가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성교육 표준안의 개편은 여전히 요원하다.

제대로 된 성교육 표준안은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안이할뿐더러, 잘못된 주장이다. 청소년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청소년 역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양한 공간에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대안으로써의 성교육이 비청소년의 관점에서 ‘옳은 것’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여성혐오에 물든 어린 아이들을 교정해야 한다’는 시혜적인 우려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남성 청소년이 성착취에 가담하는 이유는 '잘못된 줄 몰라서'가 아니다. 그간 성착취가 일상적인 문화로 통용되어온 남성권력 때문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학교를 비롯한 공동체에서 폭력과 착취가 아닌, 존중과 협력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일방적인 교육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운영방식의 전면적 변화, 성평등에 대한 구성원의 합의로 이루어질 일이다.

n번방 사건은 여성 청소년의 일상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성범죄다. n번방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당수가 청소년이며, 범죄의 공간 역시 여성 청소년에게 매우 익숙한 디지털 공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의 청소년 세대는 가장 극심하게 성차별에 대한 인식차를 경험하고 있는 세대다. 조사에 따르면 여성 청소년의 76%는 여성차별에 공감하나, 남성 청소년은 32.1%만 공감했다. 더 나아가, 남성 청소년의 31.7%는 남성차별에 공감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차는 공적 질서가 힘을 잃고, 각자의 생존만이 요구되는 사회현실과 닿아 있다. 그 어떤 안전망도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서 혐오와 차별은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된다. 차별을 시정하는 행위는 공정성을 위배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남성 청소년 역시,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를 겪으며 살아간다. 남성 청소년이 착취와 폭력에 가담하는 이유로는 혐오와 차별이 통용되는 사회구조의 책임과 청소년 혐오의 책임이 모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공적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도, 청소년도 착취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착취하는 것이 권력이 되지 않아야 한다. 혐오와 차별이 용인되지 않아야 한다. 청소년이 ‘무서운 10대’도 ‘무력한 10대’도 아닌, 한 명의 시민으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양지혜 위티 공동대표가 18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위티 사무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양지혜 위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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