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여성이 ‘고용한파’ 직격탄 맞아
“남자 일자리 없는데 어디 여자가”
왜곡된 인식이 여성 해고 쉽게 만들어

코로나19 사태 직후 일시휴직자
61만8000명 중 여성이 62.8%
현재 여성노동자 41.5% 비정규직
성인지적 고용대책 수립 시급

코로나19 사태로 소상공인들의 휴업과 폐업이 속출하면서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경기 안산취업지원센타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코로나19 사태로 소상공인들의 휴업과 폐업이 속출하면서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경기 안산취업지원센타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997년 외환위기(IMF) 때 여성들은 일자리를 잃고 해고 0순위가 되어도 여성 실업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일명 ‘고개 숙인 아버지’ 담론이 휩쓸면서 가장의 해고에는 공감하지만 여성 실업은 “가정으로 돌아가면 될 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만 가장인 것도 아니며 성별에 상관없이 해고는 살인이다.

당시 한국여성노동자회 여성실업대책본부에는 실직 여성 가장의 애끓는 사연이 넘쳐났다. “남편은 몇 달째 연락 두절인데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어 어느 날 밤에 삽 한 자루 들고 집 밖을 나섰습니다. 정신없이 땅을 파고 있는데 옆에 어린 아들이 엄마, 나 살고 싶어 하더군요.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정신이 번쩍 들어 찾아왔습니다.” 당시 부천여성노동자회 활동가로 일했던 나는 내담자와 부둥켜안고 울다가 “사람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에 또 한번 울컥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남자도 일자리가 없는데 어디 여자가”라는 차별과 배제 속에 기업의 이해는 별 다른 저항 없이 관철되어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69%로 치솟게 되었다. 여성노동자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이었으며 남성 비정규직 비율(41%) 대비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1.7배나 높았다(통계청, 2000). 여성노동자는 가장 먼저 잘리고 가장 나쁜 일자리로 복귀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어떠했을까? 2008년 12월부터 취업자 수가 감소하면서 고용위기는 본격화되었다. 2009년 4월 남성은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가 1만7000명 줄었는데 여성은 무려 17만4000명이 줄었다. 2009년 상반기 남녀 모두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수가 감소했는데 감소분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75%로 사라진 일자리의 75%가 여성 일자리라고 윤자영 박사(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는 분석했다. 30대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가장 많이 밀려났는데 이들은 가사·양육 등 비경제활동인구로 흡수되어 청년인턴 같은 정부 대책에서도 소외되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의 실업대책과 일자리 대책이 IMF 외환위기 시대의 정책 수단과 다르지 않으며 성별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여성에게 그 피해가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 실업문제는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했고 어느 매체에서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조용한 학살”이라 일컬을 만큼 대체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제 2020년 코로나19 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과 비견될 만큼 심각한 고용위기와 경제위기를 불러올 것이며 이에 대한 비상한 수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한 소비 침체이므로 즉각적인 소득보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 국민 현금지원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보도되었듯이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월 급증한 일시휴직자 61만8000명 가운데 여성이 62.8%(38만8000명)를 차지하여 누구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교육서비스업(20만명), 도소매업(4만명), 숙박음식업(2만9000명) 등 여성노동자들이 바로 고용한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세대별로도 20대가 가장 많이 고용이 감소했는데 남성고용률은 0.2%(+2만5000명) 올랐지만 여성은 1.7%(-5만명) 큰 폭으로 떨어져 IMF 때처럼 여성 우선 해고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예견된 결과다.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 피해는 여성에게 집중되었지만 성인지적 고용대책이나 실업대책은 지지부진했다. 더욱이 박근혜 정권에서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정책적으로 확대하여 2019년 기준 여성 시간제 노동자는 197만1000명으로 4명 중 1명이 시간제 노동자이며 여성비정규직의 53.6%가 시간제 노동자다. 비정규직의 절반이 시간제라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나? 이들은 수시로 취업과 실업을 넘나들기에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진보정당과 노동계가 대책으로 주장하는 ‘해고금지’조차 실효성 있는 구제책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동안 기업과 정부는 여성은 생계부양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성은 아이도 보고 일도 해야 하니 시간제가 딱이라며 여성 비정규직 확대를 적극 추진하거나 방조해왔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일하는 간병인, 요양보호사에게 마스크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을 만큼 돌봄노동자를 유령인간 취급하고, 영화산업 종사자, 방송작가 등 문화예술계는 허울만 프리랜서일 뿐 특수고용노동자여서 4대보험 밖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콜센터의 비인간적 근로 환경은 원·하청의 구조적 문제임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여성노동자의 41.5%가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정부는 이번 코로나19 위기도 그 피해를 여성에게 전가하여 가장 빨리 해고하고, 가장 나중에, 가장 나쁜 일자리로 복귀시킬 것인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제는 성인지적 고용대책을 수립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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