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국회 앞 기자회견
안전한 공식 의료시스템과 노동환경에서
여성,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 모두
재생산권과 건강권 보장받아야

10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년 맞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신문
10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년 맞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신문

 

지난해 4월11일 헌법재판소는 임신 중지를 선택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 모두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낙태죄 폐지를 위해 수많은 여성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그러나 지난 1년 간 정부와 국회는 낙태죄 폐지 이후 필요한 어떤 개정안도 만들지 않았다.

10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년 맞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에는 모낙페에 연대하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 친구들, 장애여성 공감 등이 나섰다.

모낙페는 3월8일부터 4월8일까지 한달간 SNS를 통해 총 1338명에 7개 문항으로 구성된 임신중지 상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사람들은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하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가로막는 법·제도 및 절차가 없어져야 한다(95.3%)는 인식이 매우 높았으나 임신중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위험도, 피임에 대한 상식 등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임신중지 시술은 출산보다 위험하다”는 질문에 19%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선택했다. 또 “임신중지 수술 혹은 약물 복용 경험이 있으면 임신이 잘 안 된다”에 ‘그렇다’는 응답이 11.9%, “임신중지 시술을 받은 여성이 경험할 수 있는 장기적 후유증”에 ‘자궁암’이라는 응답은 11.8%로 나타났다. 실제로 2000~2009년 사이 미국의 임신중지 관련 사망률은 10만 건당 0.7건이었으며 이는 마라톤을 달리다 사망할 확률 1.2건 보다 낮았다. 또 임신중시 수술 및 약물 복용 경험은 미래의 가임력과 장기적인 질병 발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100%의 성공률을 보이는 피임법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72.1%는 ‘없음’을 선택했으나 ‘정관수술’(21.8%), ‘콘돔’(6.1%)이 뒤를 이었다. 현재 100% 안전한 피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낙페는 이러한 응답에 대해 임신중지가 그동안 합법적으로 안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잘못 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포감을 준 사례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여성신문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여성신문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암이 진행 상황에 따라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 법이 정하지 않았지만 환자와 표준 의료방법을 아는 의료인이 상의해 치료하듯 인공유산 또한 그래야 한다. 몇 주까지는 가능, 몇 주까지는 불가능하도록 정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인공유산은 상담, 수술, 시술, 약 처방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의료 시스템상에서 제공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봉혜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위원장은 정부의 인구정책이 출산정책에 맞춰지며 노동자들의 현장에서의 재생산권도 그에 맞춰졌다고 주장했다. 봉 위원장은 “여성 노동 정책의 대부분은 일·가정의 양립으로 임신 유지와 출산, 양육에 맞춰져있다. 난임부부 지원, 임신기 여성에 대한 유급휴가, 남성 출산 휴가 등이 늘고 있지만 긍정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며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월경 관련 문제 등은 노동권에서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즘 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낙태죄 헌법 불합치 이후 여성의 정조를 강조하고 낙태를 범죄화하던 성교육은 변하지 않았다”며 “남자는 누드에 약하고 여자는 무드에 약하며 성범죄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등의 문제가 있었던 2015년 성교육 표준안은 개정되지 않은 채 지금도 매뉴얼로 제공된다. 청소년의 성적 실천을 문란한 일로 치부하며 신체에 대한 결정권(임신 중지에 대한 결정 등)과 거소결정권을 모두 부모에 전임하는 상황에서 청소년의 성적 곤란은 혼자만의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애란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 사무처장은 “노동과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입국하는 이주민 여성들은 성적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 하고 있다”며 “이들은 피임과 임신 중지에 대한 정보와 상담에 거의 접근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원치 않는 출산이 동반된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을 왔으나 가난의 굴레에 빠져버린다. 여성의 건강권은 한국의 여성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여성들이 보장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는 “장애인의 성적실천은 문제행동으로 인식되며 자위와 연애는 원천적으로 금지되지만 시설 내 성폭력은 외부로 나오지 못 한다. 장애인의 성과 재생산권리에 대한 책무는 은폐됐다”며 “시설에서의 관리 편의와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명목을 위해 장애인에 대한 생활 통제와 불임 시술은 현재도 빈번하다. 장애인의 몸과 성에 대한 권리를 허락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했다.

투표함 판넬에 안전한 임신 중지와 여성의 건강권,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뜻하는 것들이 그려진 투표용지를 붙이고 있다. ⓒ여성신문

 

기자회견을 마치고 각계를 대표하는 여성들은 투표함을 흉내 낸 판넬에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그린 10개의 투표용지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했다. △핫팩(온정적 지지와 시선) △건강보험증(공식 의료시스템상에서의 안전한 건강권 실현) △단체협약서(노동환경에서의 여성 재생산권과 건강권 보장) △참정권(청소년의 주체적인 권리 실현) △여권(이주 여성까지 포함한 넓은 권리실현) △성교육 동화책(장애인의 성적 실천을 위한 토대) △돌봄휴가계(돌봄 휴가 권리의 필요성) △가이드북(임신 중지에 대한 정보) △핫라인(임신과 관련된 전반 사항에 대한 빠른 서비스 대처) 등이 붙었다.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붙어 있는 판넬 ⓒ여성신문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붙어 있는 판넬 ⓒ여성신문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