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노출 사진영상 올리고
성적 욕망 말하지만
온라인 그루밍 첫단계
‘강간문화’ 표적되기도

전문가들은 일탈계에 성착취 원인을 돌리는 것은 ‘짧은 치마가 강간을 유발한다’는 말과 다름없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일부 여성이 일탈계로 빠지고, 쉬운 성착취 표적이 되는 원인을 살펴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일탈계에 성착취 원인을 돌리는 것은 ‘짧은 치마가 강간을 유발한다’는 말과 다름없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일부 여성이 일탈계로 빠지고, 쉬운 성착취 표적이 되는 원인을 살펴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관심 먹고 자란 성착취] 2020년 3월17일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100여 명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금전 대가를 받고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 '박사방'에 유포한 '박사' 조주빈(25)이 검거됐다. 경찰조사 결과 텔레그램 단체채팅방 '박사방'에는 최고 1만 명이 대화에 참가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20~150만원에 이르는 돈을 지불하고 채팅방에 참가했으며 성착취 영상이 올라올 때면 누가 더 모욕적인 말을 하는지 경쟁했다. 1990년대 저화질 8mm 캠코더로 촬영한 성착취 영상이 청계 상가에 나올 때 제대로 뿌리 뽑지 못한 디지털 성착취는 소라넷과 다크웹을 거쳐 오늘날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산업화 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①'N번방' 새로운 '박사' 또 있다… ‘디지털 집단 성폭력’ 도입 필요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290
②N번방 피해자 “제 잘못 없는 것 맞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515
③소라넷 회원 100만명 감방 대신 N번방 갔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749
④성착취 타깃된 ‘일탈계’는 왜 자기 몸을 전시하나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949

 

7일 트위터에서 ‘일탈계’를 향한 성착취를 최초로 공론화하고 사례를 수집한 유저 ‘저격계(@net__pol)’는 “미성년자들은 신속하게 일탈계를 그만 두셨으면 좋겠다.(중략)미성년자들이 하기에는 이 일탈계는 무수하게 많은 범죄가 여기저기 안 보이게 숨겨져있다”고 글을 올렸다.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이 일탈계에서 성착취 대상을 찾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에서 “스스로 옷을 벗어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탈계를 했으니 피해자라고 할 수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일탈계에 성착취 원인을 돌리는 것은 ‘짧은 치마가 강간을 유발한다’는 말과 다름없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일부 여성이 일탈계로 빠지고, 쉬운 성착취 표적이 되는 원인을 살펴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탈계’ 또는 ‘섹계’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텀블러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신의 노출 사진·영상을 울리는 계정을 일컫는다. 주로 10대에서 20대의 남성과 여성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일탈계도 있지만 1만명에 이르는 팔로워(구독자)를 거느린 계정들도 있다.

트위터에서 일탈계를 운영하는 대학생 A는 현재 3600여명에 이르는 팔로워를 두고 있다. 2018년 텀블러에서 일탈계를 처음 만들어 2019년에 트위터로 옮겨왔다. A는 노출 사진과 나체로 춤을 추는 영상을 올리고 일상적인 잡담을 계정에 올린다. 노출이 심한 사진을 올릴 때면 최대 20개 이상의 멘션(답변)과 수십 개의 DM(1대1 메시지)를 받는다. A가 받은 메시지 중에는 “강간하겠다”, “만나주지 않으면 죽이겠다”, “누구 아니냐?” 등 협박도 있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일탈계 여성들을 향한 남성들의 칭찬은 일종의 온라인 그루밍의 첫 단계”라며 “과연 일탈계의 여성들이 드러낸 욕망이 모두 자신의 욕망인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학자 변혜정은 일탈계가 최근에 와서 생긴 일부 청소년만의 문화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99년 생겨 2016년 폐쇄된 소라넷에서도 자신의 신체를 자발적으로 찍어 올리는 여성과 남성 회원들이 있었다. 2003년에는 대기업 계열사가 인터넷 화상채팅 사이트를 운영하며 음란채팅을 방관하고 몰래 채팅을 훔쳐보는 기능까지 판매하다가 적발됐다.

해외에 본사를 둔 일부 SNS 플랫폼들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2018년까지 대부분의 일탈계가 이용 했던 텀블러는 처음에는 “미국 법률에 규제받는 미국회사”라며 한국에서 서비스를 하면서도 음란물이나 성착취물, 불법 정보를 제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동 성착취물과 불법촬영물, 저작권법을 위반한 작품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2018년 12월부터 음란물을 본격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후 텀블러의 많은 일탈계들이 트위터로 옮겨왔다. 트위터는 현재 사용자들의 신고가 누적된 계정에 대해서만 차단하고 있을 뿐 불법적인 요소들을 규제하지 않고 있다.

일탈계를 운영하다가 공부를 하기 위해 폐쇄했다는 고등학생 B는 일탈계에 빠진 이유를 “재미있어서”라고 했다. “일탈계로 알게 된 사람들과 멘션으로 야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밌고 사람들이 ‘섹시하다’ 하는 것도 좋아요. 대화하는 게 재밌어요.” B는 ‘N번방’ 사건에 대해 “일탈계가 성착취 대상이 되기 쉬운 건 인정해요. 그런데 문제 삼아야 하는 건 ‘동의’를 구분 못 하고 성착취 하는 남자들의 의식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일탈계를 운영한 여성들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받은 후 점점 더 선정적인 사진을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A는 팔로워들의 주문에 따라 다음 동영상으로 올릴 영상을 구상한다고 했다. B는 더 많은 팔로워를 모으기 위해 더 자극적인 사진을 올렸다고 말했다.

변혜정 여성학자는 “온라인에서 성행동을 하는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며 “이들은 자신의 동의 없이 노출 사진이 돌아다니는 것은 안된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 자체가 동의 없이 유포될 가능성을 띤다는 사실은 믿지 않으려 한다. 인터넷이 그들의 생각 이상으로 확장성과 영원성을 갖고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성 취업준비생 C는 일탈계를 운영하고 있다. C의 계정에는 얼굴을 반쯤 가린 사진이 게시돼 있었다. “일탈계를 알면 야동 사이트가 따로 필요 없죠. 꾸민 게 아니라 훨씬 더 생생하잖아요.” C는 일탈계를 운영하며 오프라인에서 여성과 2차례 만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일탈계를 하다 보면 감각이 마비되는 게 있어요. 처음에야 흥분되고 하지만 나중엔 그렇지도 않아요. 그냥 일상적인 느낌? 그래서 다른 여트(여자 일탈계 트위터)들이 벗은 사진이나 영상을 올려도 산 사람처럼 느껴지지가 않아요.” C는 일탈계에서 여성들은 남성들로부터 열렬한 추앙도 받는 “일종의 권력을 가진 존재”라면서도 욕설과 범죄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반면 남성은 조롱거리는 되어도 범죄 대상이 될 일은 없다고 말했다.

윤김 교수는 “남성 일탈계도 존재하지만 N번방의 피해자가 된 것은 여성뿐”이라며 “온라인 공간과 일탈계가 정말로 성적인 억압에서 자유롭고 일상적인 공간이었다면 N번방의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성은 마음껏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소비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욕망될 만큼 섹시하지만 순결할 것’을 주요한 가치로 주문받는 현실이 일탈계와 N번방을 낳았다고 봤다. 이어 “남성이 여성을 욕망하는 방식과 여성이 남성의 욕망에 충실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일탈계와 N번방을 통해 드러났다”고 밝혔다.

포괄적성교육권리보장을위한네트워크는 지난 2일 “이번 사건은 성폭력(중략) 주동자, 가담자, 동조자 되지 않기 등 성폭력에 저항할 줄 아는 시민성 교육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을 확인했다”며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것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강간문화 및 성착취 구조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 △통념에 의해 피해자를 탓하지 않는 것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스스로의 성적자기결정능력을 키우는 것 모두를 포괄한 성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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