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미투 국면 이후보다 못해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여성정책 전문가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여성정책 전문가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형법297조 강간죄는 현재 최협의설을 따르고 있다. 폭력과 협박이 동시에 수반되지 않을 때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2018년 사회 전분야에 불어닥친 #미투(#metoo)와 2019년 장학썬(고 장자연 사건·김학의/윤중천 성착취 사건·버닝썬 게이트), 2020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현행 강간죄의 요건을 충족할 수 없는 성폭력의 다양함을 보여줬다. 그러나 각 당이 21대 국회를 앞두고 내놓은 강간죄와 성폭력 근절에 관한 공약은 오히려 #미투가 불어닥친 때부터 후퇴했다는 평이다.

강간죄 개정과 둘러싼 공약을 검토한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강간죄 개정은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어떻게 개념화하는지에 도전하는 문제다”라며 “지난 미투 국면 이후 5개당이 발의한 강간죄 관련 개정안이 10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21대 총선을 앞두고 나온 공약들은 도리어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 여부가 아닌 ‘동의’ 여부로 판단하는 비동의 간음죄의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통합당은 2020 희망공약개발단을 내놓고 ‘여성안전공약’을 발표했다. 김 부소장은 “비동의 간음죄 도입 제안이 이미 20대 국회에서 이루어졌는데 ‘도입 검토’는 문구상 소극적 태도로 보인다”며 “통합당은 미투운동의 의미를 문재인 정부의 성추문으로 기술하며 정쟁의 소재로 소비하고 있다”고 봤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통합당의 언어들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통합당은 “‘여성행복’이 ‘가족행복’의 출발점”, 불법촬영을 ‘몰카’ 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아동성범죄 관련 내용을 ‘조두순 방지법’ 으로 부르며 주취감경 폐지 공론화 등 과거 의제를 심화하지 않은 채 재탕 상정하고 있다.

정의당은 강간죄 개정과 관련해 가장 진보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2018 CEDAW 권고와 최협의설 비판에 입각해 동의 여부 기반 강간죄 개정을 주장하고 동시에 동의력 제한이 있는 피해자에 대한 별도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명시적 동의의사 원칙에 따라 성범죄를 엄벌하도록 형법을 개정하고 폭행, 협박 등이 수반된 경우 집행유예와 감형을 금지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공약집이나 자료 형태가 아닌 당대표 발언문 형태인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다양한 분야의 성평등, 여성 공약이 망라된 민중당과 여성의당은 강간죄 개정과 관련한 의견이 현재까지 나오지 않았다.

김 부소장은 “여성 폭력에 대한 강간죄 개정이 빠진 상태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논의 안 된 채 의제강간 연령을 높인다면 편리하게 사건을 치우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선임연구원도 “아동·청소년을 중심으로 성범죄를 바라보면 일반 성인에 대한 관점이 사장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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