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열고 이웃 속내 듣는 게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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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청이 크고 음색은 카랑카랑해서 얼버무려도 귀에 쏙 들어오는 말투에, 몸집과 손아귀가 작지만 재빠른 발놀림이 무슨 일이든 잘하게 생긴 사람이 있다. 보통 ‘저 사람 참 당차네’란 감탄사가 따라붙는 이들이다.

민주노동당 부산시지부 김은진(38·남구지구당위원장) 여성위원장의 품새가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야학 강학(교사)을 시작해 10년 넘게 노동, 환경, 통일 등 부산의 여성계를 두루 거친 이력만 따져서 그런 건 아니다. 지난해 6.13지방선거 때 민주노동당 이름을 걸고 출마해 2등을 차지한 전력은 그의 범상치 않은 ‘그릇’을 드러낸 방증일 터.

“부산 민심이요? 먹고살기 힘들어하죠. 정치 일정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 정도죠. 대신, 뭔가 확 바뀌어야 한다는 절절한 열망이 끓어오르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전국 최초 보육조례시민발의 추진

김 위원장을 만난 11일 민노당 부산남구지구당 사무실. 한창인 장마비가 천장을 뚫고 떨어진다. “건물이 낡아서 그래요. 옛날 생각나죠? 서울로 치면 연희동 같은 곳이에요. 부자와 가난한 이가 공존해요.” 비새는 사무실이 그의 지역구인 대연동 형편을 말해주는 듯하다.

“분위기가 보수적인 곳인데,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보고 민노당에 힘을 실어줍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땐 정말 당선되는 줄만 알았다니까요.” 김 위원장은 지난해 선거에 시의원(대연1~6동)으로 출마, 26.7%라는 비교적 높은 득표율로 후보 세 명 가운데 2위를 했다.

“선거 다음날 지역을 도니 세 가지 반응이 나왔어요. 1번 찍은 외면파, 저를 찍은 섭섭파, 투표하지 않은 모르쇠파죠. 섭섭해하고 무관심한 대중들을 부단히 만날 겁니다.”

김 위원장이 내년 총선에 어디로 출마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남구지구당에 동료이자 선배인 위원장이 있고, 중앙당도 아직 총선구상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9월이나 10월께나 돼야 후보들이 드러나리란 전망이다.

“내년 총선은 민노당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진보정치 실현의 시금석이 될 거예요. 당과 당원이 요구한다면 저도 의무를 다 할 생각입니다.” 주변에선 ‘김 위원장이 나가야 하니, 남성들은 다 양보하라’며 우스개를 던진단다.

386세대들이 그랬듯, 김 위원장도 녹록치 않은 ‘운동역정’을 겪었다. 야학을 시작으로 민주택시노조, 부산여성노동자회 등 주로 노동단체에서 활동했다. 95년 부산여성노동자회가 옛 부산여성회와 몸을 합쳐 (통합)부산여성회로 출범했고, 첫 편집부장을 맡았다. 타고난 부지런함 덕인지 3년 만에 사무처장이 됐고, 부회장을 맡은 지금까지 스쳐가지 않은 사안이 없을 만큼 부산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현안에 댓거리를 해왔다. 97년 대선 때 민노당 전신인 국민승리21과 잠깐 연을 맺었을 뿐, 정치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쪽. 하지만 지난해 부산 여성계는 그를 시의원 후보로 전격 추대했다.

늘 대중 편에 서고파

“중요한 건 이런 저런 공약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주는 겁니다. 바로 그게 정치 아닌가요.” 김 위원장의 총선 전략도 ‘잘 들어주는 것’이다. 지금 있는 정당 중 서민들의 얘기를 제대로 듣는 곳이 얼마나 있냐는 반문인 셈.

“우리 지구당이 지금 전국 최초로 보육조례를 시민발의하려고 합니다. 특히 남구는 보육시설의 80%가 사립이에요. 서민들에게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급합니다.” 그러나, 지방자치법이 보장한 시민발의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어서 애를 먹고 있다.

“새 정부가 지방분권을 말하고 있지만, 말뿐이에요. 시민이 직접 자기 권리를 찾고 구현하는 게 분권의 참뜻입니다. 우습게도 지방자치 관련 제도가 그걸 막고 있어요.” 김 위원장이 당분간 보육조례 시민발의에 온 힘을 쏟기로 한 이유다.

여유 찾는 요즘 세상에 좀 쉬고 싶기도 할 터. 지치지 않는 열정이 궁금하다. “지금까지 대중활동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건 변화에 대한 절절한 욕구입니다. 그 물결에 동참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겠죠.” 교과서 같은 답이지만, 진리는 단순한 법.

“늘 대중 편에 서고, 함께 하려 한다”는 김 위원장이어선지 여성들이 ‘여성편만’ 드는 데 이의를 달았다. “우리 여성운동 10년을 돌이켜보면, 토대가 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구의 페미니즘이 학문적·정책적 도움을 줬다면, 우리 여성과 문화에 맞는 여성주의가 필요하죠.”

늘 힘을 주는 남편과 초등학생, 유치원생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 안겨 주는 게 꿈인 김 위원장. 또 다른 소원은 그 ‘좋은 세상’에서 어렵고 힘들었던 때를 회상하는 책을 쓰는 일이란다.

▲65년 부산 ▲89년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90년 부산민주택시노동조합 간사 ▲98년 부산여성회 사무처장 ▲2002년 6.13지방선거 부산시의원 출마 ▲2003년 호주제폐지부산운동본부 공동대표 ▲2003년 민노당 부산시지부 여성위원장, 남구지구당 부위원장

부산=배영환 기자ddarijo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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