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선 칼럼] ‘여성정치’ 재난 신고 합니다
[김효선 칼럼] ‘여성정치’ 재난 신고 합니다
  • 김효선 발행인
  • 승인 2020.03.26 19:39
  • 수정 2020-04-02 1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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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 강풍 영향권에서
여성정치 실종
지난해 10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여성정치참여확대위원회와 전국여성위원회 등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구 30% 여성의무공천의 입법화를 요구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10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여성정치참여확대위원회와 전국여성위원회 등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구 30% 여성의무공천의 입법화를 요구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선거판을 만났다. 사표를 막아 소수정당의 국회 진입을 가능케 하고 거대 양당제의 폐해를 넘어서서 선진적인 의회문화를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정당의 입장에서 의석수 확보가 절대절명의 과제라는 점 인정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밥그릇에는 공공성이라는 조건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들의 밥그릇이 국민들에게 어떤 유용함이 있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편법도 꺼리지 않는 정당들의 모습, 어찌되었든 국회 입성을 하고야 말겠다는 집요한 권력의지 앞에서 유권자는 슬프다. 이번 선거는 실로 얼굴 두꺼운 자가 살아남는다는 ‘후안(厚顔)파’ 생존의 법칙이 지배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여성 정치가 실종되었다. 실종의 첫 번째는 여성공천비율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각당 공히 여성공천 30%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비록 의무가 아닌 권유 조항으로 되어 있지만 여성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실천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공천을 완료한 더불어 민주당의 여성공천률은 13%로 기대수준인 30%에 크게 못미친다. 남인순 최고위원이 이와 관련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미래통합당의 여성공천률은 11%로 30%에 크게 못미치긴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질적인 면에서 젠더 전문가의 진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인재영입에서도 ‘스토리’ 위주의 발탁이 이뤄지면서 성평등 공익성 인재의 비중은 더 작아졌다. 지금도 젠더 마인드가 부족한 국회에는 젠더 전문가가 더 들어가야 할 텐데, 정당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지난 2월 19일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여성 후보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여성 공천 30% 이행을 촉구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월 19일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여성 후보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여성 공천 30% 이행을 촉구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세 번째 원칙 없는 공천과정에서 여성후보들의 희생이 컸다. 현 장관으로 재직중인 중견 정치인들은 이 정부의 주요정책을 수행하느라 출마하지 못했다. 유은혜, 김현미, 박영선 모두 비중이 3선이상의 중견 다선의원들이다. 청와대 잠깐 거쳐서 너도나도 출마 러시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 세 명이 중견 여성정치인은 문재인 정부의 살림을 맡느라 자신의 선출직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다. 그 자리를 여성 후보가 받았으면 좋으련만 그 자리는 실세 남성 후보들로 채워졌다. 이 외에도 단수공천 됐다가 경선으로 번복되거나 탈락했으며 오랜 기간 정성들여 가꿔놓은 텃밭을 ‘전략공천’이란 이름을 달고 내려온 실세 남성후보에게 내주어야 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경선과정에 승복할 수 없어 단식 농성에 들어간 경우도 있다. 여성신인의 도전은 여전히 힘들어서 가산점은 무의미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선거판의 정치공학은 여성에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는데 이번에는 기울기 각도가 더 심해졌다. 최선을 다했지만 애처로운 희생을 비껴갈 수 없었다. 안타까움에 눈물을 머금던 세 여성장관의 모습, 유승희 의원의 단식농성, 민현주 후보의 울분... 이번 선거전이 무엇을 희생시켰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네 번째는 전반적인 여성정책과 성인지적 검증의 부족이다. 선거 때는 각 정당에서 경쟁적으로 여성정책을 발표해왔다. 그 과정을 통해서 여성정책은 조금씩 발전해가는 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분한 여성정책을 요구하기도 힘들 정도로 모든 정당이 호떡집에 불난 듯 급조와 번복을 통해 일을 해나가고 있다. 후보들의 성인지적 검증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영입된 인재들 중에서 미투 관련, 불법 관련 전력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지만  치밀하세 검증하고 대처할 여유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소신과 원칙을 지키려 했던 여성당대표의 불이익 또한 여성정치 실종의 일면으로 볼 수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여당에 선거법 개정에 공조해온 동지지만 위성정당 설립에 반대했다. 당연한 원칙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심 대표는 잘못된 게 없어 보이지만 ‘후안파’ 가 지배하는 선거판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 소신을 지킨 대가로 당지지율이 떨어지고, 원내 의석에서 기대치보다 손해 볼 가능성이 예상된다.  당 대표로서 불이익을 감당하면서도 원칙을 선택한 여성정치인의 행보가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으로 신뢰를 얻어가는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21대 국회는 페미니즘 대중화·미투 이후 새로 구성되는 국회로 어느 때보다도 성평등 입법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국회이다. 선거법의 취지는 실종되고 ‘밥그릇’ 정신이 지배하는 선거판이 되어버린 지금 무슨 페미니즘적 희망을 찾을지, 부실이 예고된 21대 국회를 맞을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스럽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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