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들은 대다수가 '미얀마'라는 나라를 잘 모른다. 과거의 ‘버마’가 바로 ‘미얀마’이다. 버마 하면 많은 사람들이 1981년 가을의 ‘아웅산 묘소 폭발암살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세계 테러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이 잔혹한 사건은 '테러집단'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다. 그 몇 년 뒤 버마의 군사정권은 나라 이름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었다.

국민을 상대로 연설하는 수치 여사. ©아웅산 수치 홈페이지
국민을 상대로 연설하는 수치 여사. ©아웅산 수치 홈페이지

 

조금 안다는 사람들은, 미얀마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나라’ 혹은 로힝야 족 인권탄압 사건을 일으킨 나라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몇년 전 새로이 민주국가로 태어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미얀마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사이가 미묘해 질 뻔한 사건들도 있었다. ‘로힝야 민족에 대한 인권탄압’과 관련하여 ‘미얀마 내부 상황을 잘 모르는’(한 미얀마 언론인의 표현이다) 우리 정부와 한 민간단체가 수치 여사를 강도 높게 비판한 일이 있었다.

​2018년 11월 1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우리 대통령이 수치 여사 면전에서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발생한 폭력사태와 대규모 난민 발생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비판했다. 또 같은 해 12월 18 일에는 ‘광주 5·18 기념재단’이 로힝야 족 인권탄압을 이유로 2004년에 수치 여사에게 수여한 '광주평화상' 을 철회했다. 대통령의 언급이나 민간단체의 행동에 대해 미얀마 정부가 감정적인 대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국통인 현지의 미얀마인 친구들은 “한국이 하는 일이 참 답답하다”며 걱정을 했다.

​최근 1~2 년 사이에 벌어진 로힝야 민족에 대한 미얀마 군부의 박해 사건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로힝야 민족’ 문제의 역사적 배경이나 미얀마 정국에서 지닌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난하는 일부 주장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미얀마의 로힝야 민족 문제는 지난 백 수십 년에 걸친 미얀마의 아픈 역사와 함께 생각해야 답이 나오는 문제이다.
​미얀마는 19세기 후반 이후 1948년까지 60여 년에 걸쳐 영국과 일본, 다시 영국의 식민 통치를, 그리고 1962년부터 최근까지 50여 년 간은 혹독한 군사독재를 겪어왔다. 오랜 세월 광대한 인도를 식민지배하던 영국은, 19세기 들어 미얀마의 풍부한 자원을 노리고 세 차례의 전쟁 끝에 1885년 미얀마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방글라데시로 가기 위해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 가족이 가재도구를 챙겨 강을 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월 방글라데시 팔롱 카일 인근에서 촬영된 로힝야 가족 모습. ©AP/뉴시스
방글라데시로 가기 위해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 가족이 가재도구를 챙겨 강을 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월 방글라데시 팔롱 카일 인근에서 촬영된 로힝야 가족 모습. ©AP/뉴시스

 

당시 영국은 미얀마를 통치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인도(현 방글라데시) 거주 로힝야 인들을 대거 미얀마로 이주시켜 그들을 미얀마의 관료와 군인으로 등용했고, 미얀마 인들의 농토를 몰수하여 로힝야 족에게 분배해 주었다. 그 결과 로힝야 사람들이 미얀마의 행정과 경제권을 장악하고, 미얀마 불교도들을 농노로 부리는 지배계급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물론 로힝야 인 중에서 살 길을 찾아 미얀마로 단순 이주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1930 년 대 이후의 미얀마 농민과 불교도들의 무장독립투쟁 과정에서 미얀마 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거나 대량 학살했다.​ 그러니 미얀마 불교도들의 로힝야 족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을까.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네윈 장군과 군부는 미얀마 국민, 특히 불교도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미얀마 불교도들의 사무친 원한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했다. 그들은 정권을 잡은 이후 로힝야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방글라데시와의 접경지역으로 몰아냈다. 이런 조치들은 미얀마 불교도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고, 그때 이후로 군부와 불교도들간의 밀원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군사정권이 2015 년까지 50년 이상 지속되는 기반이 된 것이다.

이러한 밀월 관계를 완벽하게 깨뜨린 것이 2015 년11 월의 미얀마 총선거였다. 이 선거에서 수치 여사의 민족주의민주동맹 (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은 전체 유효투표의 89%를 득표했다. 군부가 전체 의석(657석)의 25%인 166석을 자동으로 보유하는 기형적 헌법체제 하에서도 390석을 확보하며 집권당이 됐된 것이다. 군부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 (USDP, Union Solidarity & Development Party)은 42석(6.4%)을 얻어서 헌법상 군부 몫인 166명과 함께 의회의 거부권 행사 정족수인 30%를 간신히 넘겼다. 그러나 군부가 아웅산 수치 여사가 대통령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한 헌법 조항 개정을 끝내 거부하여, 수치 여사는 국가자문역으로서 실질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기형적 체제가 출범한 것이다 .

미얀마 헌법에는 국군 통수권과 경찰 통수권이 군 최고사령관에게 귀속되어 있고, 군최고사령관이 국방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명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에게 국가가 가진 힘을 활용하거나 제어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명목상 정권을 잡았지만, 아웅산 수치 정권은 기득권을 해체하고 나라를 혁신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한 상태로 지난 4년간 힘겹게 국가를 이끌어 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 인수 2 년 차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로힝야 민족 인권탄압 문제였다. 이 문제의 표면적 원인은 일부 무장단체들이 내건 로힝야 민족 분리독립 요구였는데, 여기에 잠재해 있던 미얀마 불교도와 로힝야 민족 간의 갈등이 더해지면서 엄청난 화약고가 돼버렸다.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2017년 2월 양곤에서 수치 여사의 핵심 측근으로 이슬람 교인인 코니 변호사가 백주에 살해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문제의 최일선에는 전투적 불교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마바타’ 라는 단체가 있으며, 배후에 군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관측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거가 올해 11월로 박두했다. 군부의 입장에서는 선거에서 정권을 되찾으려면, 수치 여사와 전 국민의 90% 가까운 불교도들을 분리시키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이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바로 로힝야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다. 군부로서는 인권옹호의 상징인 수치 여사가 로힝야 민족의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수치 여사의 입장에서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키워나가기 위해 불교도들의 압도적 지지가 필요한 상황에서, 군부 세력이 던져 놓은 미끼를 덥석 물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서방 세계나 국제적인 인권 단체들이 로힝야 사태를 당장 해결하라고 수치 여사를 압박하는 것은 수치 여사로 하여금 그 미끼를 물도록 종용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금년 가을의 총선거에서 수치 여사가 패배한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체제와 통치방식이야 좀 달라지겠지만, 미얀마는 또다시 군부통치 시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막아내는 일이야 말로 수치 여사의 머리 속에 있는 최우선의 가치가 아닐까? 50년 간 군부사회주의 독재에 시달린 6,000만 미얀마 국민과, 100만 로힝야 인들의 문제다. 수치 여사는 어떤 카드를 먼저 잡아야 할까.

​4년이 경과하면서, 이제는 수치 여사의 정부가 어느 정도 당면한 문제들을 파악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체제가 조금씩 갖추어졌다. 만약 수치 여사가 정권을 재창출하게 된다면 다음 5년 동안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훨씬 과감하게 미얀마의 당면 과제들을 풀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로힝야 문제도 우선적으로 다루어 질 것이라는 기대를 당연히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서방 국가들은 아웅산 수치 정권이 민주적인 정부를 재창출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그 손도 잡아주는 것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2018년 교황이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국제적 인권단체들이 교황을 향해 수치 여사에게 강력한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문 했지만, 현지 상황을 살핀 교황은 “인권은 인류 보편의 가치”라고 짧게 언급했을 뿐이다. 미얀마에서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고려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교황은 국제적인 리더인 것이다.

지금 미얀마 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한국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상당수가 한류에 심취해 있다. 한국에 유학오는 학생들도 급증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진출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미얀마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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