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착취 문제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자기만족 영상” “일기장 그림” 등 발언
의원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 드러나

 

‘N번방’을 통해 미성년자 등 여성들의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 유포한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행위는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라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특히 “운영자뿐만 아니라 가입한 회원들 전원을 조사해야 한다”는 엄정 대처를 지시했다. ‘N번방’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의 도덕과 윤리가 실종되고 있다는 것에 참담함을 느낀다. 도덕은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할 행위 규범으로, 개인의 양심과 직결된다. 따라서 도덕을 어기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더구나, 도덕이 무너지면 정의가 무너지고 원칙이 바로 설 수 없다. 반면, 윤리는 개인의 양심과는 상관없는 인간으로써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인 행동이다. 따라서 윤리를 어기면 강력한 사회적 법적 제재를 가하게 된다. 도덕적․윤리적 가치가 무시되고 저급한 탐욕적 경제 중심 논리가 판을 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이런 병든 사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정치다. 공자도 정치란 “올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이라고 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4일 “N번방 사건 이전의 대한민국과 그 이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 정부는 가장 혹독한 법의 처벌과 광범위한 신상 공개로 음란범죄에 단호하고도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적 촬영물 협박 가중처벌’, ‘불법촬영물 다운로드 행위 처벌’ ‘불법촬영물 방치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처벌’ 등 이른바 'N번방 사건 재발방지 3법'을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 국회의 책임이 자유로울 수 없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지난 1월 국회 청원 사이트에 올라와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디지털 성범죄를 더욱 엄격하게 처벌하고 수사기관에 전담부서를 만들어 달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지난 3월 5일, 국회는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정작 통과된 법은 음란물에 유명인 등의 얼굴을 합성해 퍼뜨리면 죄를 묻고 영리 목적일 경우엔 가중 처벌하는 내용에만 그쳐 청원 내용과 차이가 컸다. 당시 법사위 심사 회의록을 살펴보면, 의원들은 사안을 잘 알지도 못하고, 심각성도 인식하지 못한 채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무책임한 인식을 드러냈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소위 N번방 사건은 모른다”면서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다”,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을 자주 한다”. 미래통합당 정점식 의원은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할 것이냐”,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으냐”라는 기가 막힌 발언을 했다. 이것은 성인지 감수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남성 의원 중심의 대한민국 국회가 가져온 참사다.

지난해 11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아동과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3000여개를 올린 손모씨에 1심 재판부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초범이고 나이가 어리며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1년 6개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지적처럼 “정치권과 정부, 또 사법부의 이런 무지와 무책임이 오늘날의 디지털 성범죄를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위성 비례 정당들의 공천 과정을 보면 참담하다.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청와대에서 물러난 사람, 인턴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해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 음주운전 이력과 아들 국적 포기 논란 등으로 도마에 올랐던 사람, 자신이 속한 조직의 정관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멋대로 바꾼 사람들이 버젓이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포진했다. 이렇게 도덕과 윤리가 파탄난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국회를 탐욕과 위선의 ‘개싸움 판’으로 만들지 않을 까 걱정된다. 이번 총선은 정치권의 도덕과 윤리를 바로 세우는 선거가 되길 고대한다. 지혜로운 국민만 믿을 뿐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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