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신여성]

현재 유행하는 것들이 오늘날에 새롭게 창조된 것은 아니다. 지금 젊은 여성들의 모습과 근대화 초기인 1920∼30년대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에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면 요즘 젊은 여성들은 거짓말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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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껄 제3회’ <자료·조선일보 1932.1.20>

성 노출 의상 선호 ‘화류병’취급 받기도

서구식 외모추구는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저항

“…위통에 살이 아른아른 보일락말락할 만치 얇은 피륙으로 의복을 만들어 입고…(〈신여성〉, 1926년 7월, 23쪽)

모던 여학생. 치마는 짧지만 구두는 크지요. 스포츠맨 슈즈랍니다.(〈동광〉, 1932년 11월)

어떤 여성은 서양사람의 노랑머리를 흉내내느라고 매일 과산화수소를 바르고…(〈여성〉, 1937년 1월, 48쪽)”

속살이 훤히 비치는 시 스루(see through), 뾰족구두와 커다란 스포츠 슈즈, 노랑머리 등… 2003년 서울 거리의 젊은 여성들 모습이 아니다. 1920~30년대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기술과 재료의 발달로 좀 더 다양한 연출이 가능해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 당시나 요즘이나 젊은 여성들 사이의 유행현상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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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선전시대가 오면. <자료·조선일보 1930.1.14>

“요사이 학생들 치마감 적삼감을 고를 때에 속잘들이다 보이는 것 찾느라고 비추어 보기에 야단. 포목전 주인의 걱정하는 말 ‘개화가 다되어 벌거벗고 다니게 되면 우리는 무얼해 먹나’(〈신여성〉, 1924년 7·8월, 69쪽)”

속살이 비치는 얇은 옷이 유행하자 여학생들은 잘 비치는 옷감을 찾기 위해 직접 몸에 걸쳐보면서 옷감을 고르느라 야단이고, 이를 지켜보는 포목전 주인은 시 스루의 유행이 발전해 아예 벌거벗고 다니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1920년대의 모습이다.

우리의 근대화는 외세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뤄졌고 근대화 초기를 식민지배 하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시절은 모두에게 암울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먹고살기도 힘든 때에 무슨 유행이 있었으며 하물며 감각적인 옷차림을 논할 여지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비록 원치 않은 모양으로 근대화가 이뤄졌지만 문명개화는 이뤄졌고 물밀듯이 서구문화가 유입됐다. 이에 따라 서구적인 옷차림으로 바뀌게 됐으며,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패션의 변화는 분명히 존재했고 여성들은 미와 감각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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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유행 의복풍경’ <동광> 1932.11월호. 송곳같은 하이힐과 커다란 ‘스포츠맨 슈즈’를 신은 모던 여학생, 급속도로 올라가는 치마를 입은 여성의 모습.

최초 서양복식 1899년 윤고려가 시작

우리나라에서 서양복식의 시작은 윤고려(윤치호의 부인)로부터 시작됐다. 1899년 그녀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던 S자 스타일의 옷을 최초로 입음으로써 시작된 서양복식의 보급은 1920년대에 확대되기 시작해 1930년대에 이르러 일반화됐다.

1920년대에는 보이시(boyish)한 스타일에 기초를 둔 직선형 실루엣의 의복이 유행했고, 1930년대에는 여성적인 실루엣이 유행하면서 스커트와 소매길이가 짧아져 다리와 팔의 노출이 늘어났다. 양장의 하의 길이가 무릎 위로 올라가고 가슴과 등허리의 노출이 확대되자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많았으며 심지어는 화류병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양장의 보급은 근대화 초기 교육받은 신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복식에 있어서 개혁을 주장하고 이를 실천했다. 옷차림새의 변화는 그 옷차림새를 지향하는 의식과 생활의 변화를 의미한다. 신여성들은 전통복식을 극복해야할 부정적인 요소와 연결시키고 있었다.

서구식 외모의 추구를 통해 전통적·가부장적 억압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에는 초기의 의미가 퇴색되고 무조건 서구화된 겉모습만을 추구하는 것이 신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됐다.

“…체격에 맞지 안는 양키-스타일만 꾸미면 나는 〈코례안〉이 아니요! 가 되는지 〈코례안〉은 설음도 만치만 〈코례안〉이라는 것을 이저서는 안될터인데…(〈조선일보〉, 1932년 12월 23일)”

실제 식민지배 하의 빈곤 속에서 대부분 여성들의 의생활은 열악했다. 그러므로 조국의 현실을 외면한 채 서구의 유행을 추종하는 일부 신여성들의 사치스런 의생활은 사회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글은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지원을 받아 연구하고 있는 〈한국여성 근·현대사〉내용을 새로 쓴것이다.

김은정/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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