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은 학교
  2월 7일 오전 11시 즈음, 수화기 너머로 달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충북여자중학교 성폭력 사건의 가해교사에 대한 1심 선고 결과를 알리는 목소리였다. 원심대로 3년의 징역형이 확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발자는 “싸워왔던 시간이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스쿨미투는 계속되고 있다. 2월 18일, 충북여중 스쿨미투 고발의 가해교사는 항소심을 선언했다. 2020년에도 스쿨미투 고발은 대전 신일여중, 통영 충렬여중 등 전국 각지의 학교에서 이어지고 있다. 각 시도교육청은 가해교사 처벌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가해교사는 경미한 처벌만을 받은 채 교단으로 돌아온다.

스쿨미투는 ‘교권침해’라고?
스쿨미투 이후, 고발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선생님께 어떻게 그럴 수 있냐”였다. 2020년 1월 5일, 경향신문에는 《스쿨미투는 계속 돼야한다…그런데 무고한 교사들은?》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 기사는 “성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한 ‘학교의 사법화’ 및 ‘엄벌주의’가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요지로 작성되었다. 

스쿨미투가 교육적 지도를 방해한다는 주장은 그간 ‘교권’ 혹은 ‘교사다움’이 얼마나 폭력과 연루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2017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초중고 교사에 의한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성희롱 사유로 응답자들이 주요하게 제시한 것은 ‘학생들과 격없이 지내기 위해’, ‘생활지도 차원에서’, ‘내게 관심이 있어서’, ‘학생들을 재미있게 해주려고’였다. 스쿨미투 고발은 그간 교사들이 학생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유지해온 ‘친밀함의 권력’에 대한 폭로다. 

‘무고한 교사’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학생인권은 강화되어야 한다. 그간 학교에서는 학생이 성폭력 문화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억압해왔다. 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은 ‘교사에 대한 반항’으로 여겨졌다. 학생이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다. 학생들은‘사건화’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만일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보다 평등했다면, 그래서 불편함을 문제제기하는 일이 ‘주제넘는 일’ 혹은 ‘건방진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공론화하지 않아도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황은 분명히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스쿨미투 이후의 대책은 학교 문화와 권력 구조를 변화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 개인들을 엄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경향신문의 기사에서 제기하는 ‘엄벌주의’와 ‘학교의 사법화’는 스쿨미투 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스쿨미투 운동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대한민국 교육의 결과다. 

문제의 핵심은 ‘스쿨미투를 악용하는 일부 학생들’이 아니라,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일상적인 공론장이 부재한 현실’이다. 교육 당국은 이제라도 학내 성평등 담론을 조성하고 학생인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사안처리 절차를 넘어선 새로운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야 한다. 이러한 공론장에서 청소년이 ‘민원인’ 혹은 ‘피해자’를 넘어 학교를 바꾸는 주체로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매일 듣고 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에서는 #MeToo에 이어, #WeListen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스쿨미투 이후 우리가 듣는 말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한 사람의 용기를 넘어, 스쿨미투 이후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2020년 새학기, 우리는 학내 성평등에 한 걸음 더 다가선 학교를 마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WeListen 캠페인 참여: bit.ly/WeListen323

 

양지혜 위티 공동대표가 18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위티 사무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양지혜 위티 공동대표.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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