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오면 늘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강의실에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는 게 긴장되기 때문이다. 낯선 세계들을 조우하는 것은 언제나 불안을 동반한다. 올해는 상황상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고민이 늘긴 했지만, 교실이 늘 나에게 묻는 ‘선생은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온라인이던, 오프라인 수업이던 학생들은 잘 수 있다. 본래 내 입장은 자는 것은 네 책임, 네 선택이었다. 한편으로는 무례하다고도 생각했다.

생각이 바뀌어 가기 시작한 것은, 교실이 삶을 살아내는 흥이 넘치는 곳이어야 한다는 여성주의자이자 교육가인 벨 훅스의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는 것은 교육 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상태’라는 청소년의 말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사실 정말 자고 싶은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시간을 그렇게… 그 사람도 깨서 배울 권리가 있는데”라고 말했다. 그때는 우아하게 “아, 그 말도 맞네요” 하면서도, 속으로는 ‘쒸익쒸익 그래도 자는 건 싫어’라고 생각했다.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돌아보니, 엎어져 자는 것은 교육 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라는 그의 말이 적확하다. 학생들의 삶은 나의 평평한 상상보다 복잡했다. 2019년 학자금 대출을 이용한 대학생은 46만명, 2019년 전체 고등학교 3학년 인구가 49만명임을 감안하면, 공부만 할 수있는 학생은 그렇게 흔치 않다. 학자금이 아니라도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사람도 많다.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하고 와도 과제는 남아있다.

하지만 일하지 않아도, 많은 10대와 20대들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불면과 우울은 이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최근 5년간, 우울증으로 진료 받은 사람 중 20대의 증가폭은 22.2%로 가장 높았다.

청소년은 강도 높은 과업으로 오랜 기간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학원과 학교, 학교 숙제와 학원숙제, 생기부용 동아리와 조별과제 등으로 하루는 조각났다. 대학생보다도 많다는 초등학생 학습량을 버티고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대학에 왔지만 수면 조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번아웃이 가장 심각한 세대가 20대라는 통계는 그들의 학업 경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틈날 때마다 잠만 자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깨어 흥에 넘치는 시간이 있다. 그런데 왜 그 시간이 수업시간일 수는 없을까. 청소년들이 교사에 대해 실망한 이야기를 할 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그 선생님은 자도 깨우지도 않아요.” 나에게 관심 없다는 사인을, 내가 이 배움의 커뮤니티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신호를 학생들은 아주 빠르게 캐치한다. 잠이 드는 것은 현대사회가 잠의 지불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경이자 소음과 같은” 존재로 자신을 이해할 때, 청소년들은 잠이 든다. 잠들 수 밖에 없는 맥락을 이해하되, 자는 걸 깨워달라. 나에게 유의미한 시간으로 접속해 달라. 그것이 선생에게 그들이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선생은 그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나의 접근은 오지랖이자, 학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로서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 시각 일 수도 있다. 교실 안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학생들은 자는 행위로 나에게 ‘저항’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고민은 이 시대에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할 수 밖에 없는 고민이다. 어떻게 학생들의 삶과 이론을 연결하고, 삶에 유의미한 지식을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교육학자 프레이리 말대로 학생을 정돈된 지식을 잘 넣어주는 빈 저금통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이름짓고 넓혀가는 사람으로 대할 수 있을까? 컴퓨터 화면 넘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학생을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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