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현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많은 것들을 새로 배운다. 이제껏 생각지도 못하고 무심결에 넘어가버렸던 쟁점들이 현장의 목소리들 속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법이 흥미로운 건 실제 사례들 속에서 온갖 쟁점들이 샘솟듯 솟아나오기에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골똘히 머리를 굴려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워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지금까지는 왜 생각을 못하고 멍하니 넘겨버렸느냐고?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필자의 무지몽매함이랄까. 원래부터 몽매한 매력이 철철 넘치는 필자라고 하는 진부한 사실.)

‘제3자가 성희롱 피해발생 사실을 피해자 동의 없이 공개적으로 게시해 버렸는데, 이게 2차 피해인가요?’ ‘네, 2차 피해입니다.’ 여기까지는 식은 죽 먹기.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진짜 쟁점은 막판에서야 등장한다. ‘그런데요, 고충처리 신고접수가 안 된 시점에 이런 일이 터졌어요. 피해자도 신고를 안 했고, 다른 사람도 신고를 안 했대요. 양성평등기본법 조항을 저희가 들여다보니까 아무래도 꺼림칙해요.’ 음, 뭔가 녹슨 머리에 기름칠을 해야 할 시점이 온 듯한 느낌적인 느낌!

양성평등기본법 제31조 제5항은 국가기관 등의 성희롱 사건 은폐, 성희롱에 관한 국가기관 등의 고충처리 또는 구제과정 등에서 피해자의 학습권․근로권 등에 추가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그 관련자에 대한 징계처분을 정해두고 있는 조문이다. 말인즉, 질문의 요지는 이런 거다. 법은 ‘고충처리 또는 구제과정 등에서 발생한 추가 피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고충신고가 접수된 적이 없었다면 ‘고충처리 또는 구제과정 등에서 발생한 피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예리하다. 답할 가치와 이유가 충분한 물음이기도 하다.

징계처분은 형사처벌과 법적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당사자에 대한 불이익한 제재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징계 관련규정도 가능한 한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징계처분 이후에 피징계자 측이 불복을 한다면 위와 같은 쟁점을 파고들어 공격해 올 소지가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근거 없이 함부로 조치를 취할 수도 없는 법이다.

자, 그러면 위와 같은 사안은 법에서 정하는 2차 피해로는 볼 수 없는 걸까?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3조 제1호와 제2호는 성희롱․성폭력 등의 피해를 입은 사람을 피해자로 정의한다. 피해사실을 고충처리절차 등에 정식으로 신고접수한 사람만을 피해자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같은 법 제14조 제3호에 따라서 피해자는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인정받는다. 성희롱이나 성폭력 피해가 일단 발생하였다면 그 피해가 발생한 시점부터 피해자는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법률상의 권리를 보유하는 것이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신고접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부인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같은 법 제3조 제3호 가목은 ‘수사․재판․보호․진료․언론보도 등 여성폭력 사건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를 2차 피해로 본다고 하는 포괄적 조문을 두고 있다. 고충신고를 하지 않은 피해자라 하더라도 피해가 발생한 이상 그에 따른 ‘회복’의 과정은 당연히 거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 조문이 말하는 ‘회복’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사건처리 절차에 뒤따르는 ‘회복’만을 한정적으로 가리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위 문언은 ‘여성폭력 사건처리의 전 과정 및 여성폭력(으로부터의)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피해’라고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위에서 말하는 ‘회복’이 공식적 사건처리에 부수적으로 뒤따르는 ‘회복’에만 국한된다면, 성희롱 피해를 입었음에도 신고접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법률상 피해자의 신분인 사람에게 완전히 같은 종류의 또는 유사한 추가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유독 이 경우는 법률상의 2차 피해로는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입법취지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기이하다고 볼 수밖에는 없다.

여러 유관 법령이 2차 피해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있는 근본 취지도 함께 고려한다면 피해자에게 그 성희롱 사건으로부터 파생하여 추가적 피해가 발생한 일반적인 경우를 모두 2차 피해로 보아야 함이 온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양성평등기본법 제31조 제5항도 사실, ‘고충처리 또는 구제과정’이라고 못 박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며 ‘고충처리 또는 구제과정 등’으로 명기하고 있기 때문에 해석을 통한 적용범위 확장의 가능성이 닫혀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필자가 자문위원으로 있는 포스텍(포항공대)의 경우에는, 일찍부터 ‘2차 피해’를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이후, 해당 피해사실과 관련되고 그로부터 파생하여 제3자 또는 피신고자에 의하여 피해자 등에게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피해’라고 정의하면서, 피해자․신고자 또는 해당 사건에 관한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피해자 또는 신고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피해자 또는 신고자를 모욕하는 행위 등을 비롯한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예시해 두었다. 고충처리절차 상에 사건이 접수되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여부를 막론하고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이 인정될 수 있다면 그에 관련한 파생적 피해는 모두 2차 피해로 보겠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일까? 공식적인 신고가 없어서 ‘고충처리나 구제과정’이 개시되지는 않은 경우일지라도, 적어도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시행 이후에 발생한 ‘추가 피해’ 사항은 이를 법률상의 2차 피해 발생사실로 보는 데 무리가 없으리라는 것.

그러면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시행 이전에 신고 없이 발생한 추가 피해 사안은 이를 2차 피해로 볼 수 없어서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뜻일까? 아니다. 그렇게 볼 이유는 없다. 양성평등기본법 제31조 제5항 규정의 확장적 해석가능성이 없지도 않거니와,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시행 이전에도 관련법령들은 피해자에 대한 최대한의 보호를 이미 강조해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직장 동료나 상급자 등이 피해자에게 추가 피해를 유발하였다면 2차 피해에 관한 법률규정이 있건 없건 간에 많은 경우에서 그 객관적인 행위내용을 전형적 징계사유 유형의 하나인 일반적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포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있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결론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최종 결론은 도대체 뭘까? 실질만을 고려한다면 ‘2차 피해는 언제나 2차 피해다.’ 이를 법률상의 2차 피해로 포섭할 수 있는지 아니면 ‘2차 피해에 준하는 문제상황’ 등의 형식으로 지칭하는 것이 온당한지는 필자와 같은 율사(律士)들에게 맡겨져 있는 기교적이고도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다. 여러분께서는 오직 피해자 보호에만 온 힘을 다해 주시길.

박찬성 변호사
박찬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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