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보다 예술을 선택한 무용가,
‘딴따라, 올리비아 현신 김’
독일 내 인종차별에 목소리 내는
인권운동가이자 예술가

 

올리비아 현신김 ©Christian Cattelan
올리비아 현신김 ©Christian Cattelan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Say My Name(내 이름을 불러줘)‘라는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독일서 태어나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다시 독일에 돌아가 춤과 연기를 펼치고 있는 올리비아 현신 김(이하 김현신)의 무대였다. 10월 서울 공연에서 만난 그 무대는 괴기스럽고 불친절했다. 그의 노래는 낯설고, 용기 있는 몸이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짐승같은 신음소리, 씰룩대고 걷기, 물컹거리는 물채, 어슴푸레한 조명. 그의 자유로운 몸짓은 우아한 성을 탐내지 않았다. 그의 공연에는 빛도, 소리도, 사람의 움직임도 경계지역에 있었다. 머릿속을 하얗게 흩어놓는 무대를 향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야?’ 정돈과 질서를 조롱하는 무질서.. ‘이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김현신은 독일에서 주목받는 한국인이다. ‘하나우 총기 난사 사건’를 비롯해 연이어 극우나치 테러가 발생하자 독일 신문 디차이트(Die Zeit)는 지난 2월 “인종차별, 우리가 증인이다”라는 제목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방송인·언론인 142명의 목소리를 담았다. 142인 중 김현신이 있엇다. 그는 독일에서 인권보호와 인종차별 등 사회문제에 공헌한 것을 인정받아 2019년 시민단체가 수여한 아마데우 안토니아 상(Amadeu Antonio Preis)을 받았다. 그를 이메일로 만났다.

2019년 작품 ‘Say My Name’. ©Christian Cattelan
2019년 작품 ‘Say My Name’. ©Christian Cattelan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게 된 과정은?

“난 태어나면서 부터 페미니스트였다. 우리 가족에는 강한 여성들이 많다. 그들은 가부장제, 식민 통치, 독재, 이민, 가난 속에서 살아남았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고 혹은 그 단어를 몰랐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이 내게 전해졌다.

난 어릴 때부터 질문이 많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할거야?’ ‘내가 여자친구를 데려오면 어떻게 할거야?’ ‘왜 어떤 사람에게 어떤 것은 금지 되었을까’ 등이 궁금했다. 신앙심 깊은 부모님에게 ‘약자와 함께 하라’고 배웠다. 그러나 나는 독일에서 내가 약자라는 것을 경험했다. 독일어 시험에서 1등을 했어도 선생님은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 4학년 때는 독일 남자아이에게 맞아서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다. 이런 경험들은 내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했다. 페미니즘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공정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바란다면 필수조건이 아닐까? 여성에게만 전념하는 것이 페미니즘이 아니다. 이전에 백인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실수를 했다. 오드리 로드는 ‘만약 어느 한 여성이라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설사 그녀에게 채워진 족쇄가 내 것과 아주 다르다 해도’라고 말했다. 난 페미니즘을 살고있다.”

정치학을 공부했는데 어떻게 예술을 하고 있는가

“어릴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니 예술과 멀어졌다(그는 서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독일어를 복수전공했다). 정치는 말이 너무 많았고 나는 행동을 하고 싶었다. 독일 연출가가 연출한 ‘햄릿’을 보는데 주인공 배우의 연기에 감탄을 했다. 그리고 독일로 가서 연극계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역할은 매춘부, 독일어를 더듬거리는 국수 장사 아시아 여자였고, 그나마도 기회가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연극이나 영화처럼 역할이 고정된 것이 아닌 무용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나의 작품을 만들어오고 있다. 예술이 무한정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어도, 그것에 가깝다고 느꼈다. 나의 예술을 접하고 함께 대화하는 관객이 생각을 바꾸고, 용기를 얻어 행동을 한다면 변화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올해로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이 발표된 지 30년이다. 해러웨이는 여성들 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여성노동자와 식민지의 시선으로 성애화된 아시아 여성들은 서구 백인 여성들과 다른 억압을 경험한다. 해러웨이는 여성, 계급, 식민지라는 교차적 억압으로 어디에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들을 ‘사이보그’라고 불렀다. ‘Say My Name’은 ‘사이보그 선언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해러웨이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 중 대표주자다. 공연에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가?

“해러웨이는 사람과 기계의 경계를 허문 사이보그가 등장하면서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던 틀을 깰 것이라 예상했다. 자연/인공, 정상/비정상, 보통/예외 경계를 허물 것으로 보았다. 역사 속에서 유색인종, 장애인, 퀴어 공동체들을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사이보그의 존재는 이런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왔던 역사를 뿌리째 흔드는 것이다. 가부장제, 식민지제도, 자본주의 안에서 억압받던 사람들은 목소리를 달라고 부르짖기보다 아예 그 제도들을 깨부수는 것이다.”

2018년 작품 ‘MEME – I SEE. AH!’. ©Peter Erdmann
2018년 작품 ‘MEME – I SEE. AH!’. ©Peter Erdmann

 

공연에 담아낸 사이보그들은 어떤 의미인가?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미래는 없다. 그래서 과거의 사이보그 존재들, 즉 여러 세계를 넘나드는, 이분법적 구조/틀(예 여성/남성)의 경계를 오가며 이로 인해 가부장제 사회에 희생자가 된 선구자들을 찾아냈다. 구미호, 라크슈미, 파리넬리 등의 이야기를 재해석했다. 이 부분에서 많은 관객들이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얘기를 했다.

당신의 공연에 대한 독일 내 반응과 평은 어떤가?

“대부분이 좋았다. 보통 독일 공연예술관객은 백인이고 중상층이다. 이번 공연에는 여러 기관과 협업을 해 과학자, 뇌신경학자나 미래학자, 컴퓨터공학자들이 많이 참여했다. 나는 공연을 만들 때 그 내용을 논리적으로 전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을 통해 삶의 복잡성을 다 느끼고 성찰하게끔 하고 싶었다. 재미있는 건 공연 후에 그들과 얘기할 때, 이 공연은 자기분야와 일치하고 아주 논리적이라고 극찬을 했다.”

현재 인공지능은 가부장제 상업주의 속에서 오히려 가부장제를 더 강화하고 있지 않는가?

심각하다. 아마존의 ‘알렉사’나 아이폰의 ‘시리’는 서양 여성 이름이다, 인공지능 중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갖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을 갖게된 핸손 로보틱스의 ‘소피아’도 오드리 헵번의 얼굴을 모델로 삼았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일은 소소한 심부름이다. 반면, 의학이나 경제 쪽 인공지능은 남성 목소리다. 도우미는 여성 인공지능이고 전문직 종사자는 남성 인공지능이다. 영국의 조안나 브라이츤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 이름을 검색하면 연계어로 직업, 성공, 비지니스 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여성이름으로 검색하면 육아·가족·가사노동이 등장한다. 더 끔찍한 일은 흑인계 남성이름이다. 검색하면 감옥과 범죄 연계어가 나온다. 얼굴인식 인공지능도 백인 남성에게 맞춰져서 흑인 남성이나 여성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한국의 내비게이션 목소리가 여성이고 알렉사는 잔심부름만 하는데 아무렇지 않다고 여긴다. 인공지능이 다시 차별로만 발전 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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