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인순 국회 여가위 수석전문위원
여성위 설립 이듬해부터 입법심의관으로 17년
젠더정책 전문가 늘리고 여가위·여가부 모두 강화돼야
21대 국회서 여성경제활동·디지털 성범죄 관련 입법 필요

11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차인순은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홍수형 기자
11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차인순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홍수형 기자

“대학에 입학했을 때, 베티 프리단이 명명했던 ‘이름 없는 병’에 걸린 것처럼 늘 혼란스럽고 답답했습니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법과 제도로 여성들의 삶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기술기반의 사회로 접어든 요즘 여성의 일자리와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는 입법을 강화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불평등하고 불안한 삶의 그림자가 간절한 외침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런 목소리를 담아 법을 만드는 곳이 국회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각 당마다 스토킹·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 및 피해지원 법안, 강간죄 비동의 구성요건 도입 등 여성 안전에 관한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놨다.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부터 2018년 혜화역 시위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안전할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성 안전에 대한 정책이 강력하게 요청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국회에서 관련법을 제정할 때 젠더 관점에서 법안을 살펴온 차인순 국회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요즘 각 당의 여성정책 공약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2002년 여성부를 소관으로 하는 국회 상임위원회로 여성위원회(현 여성가족위원회 전신)가 처음 설치되었고 차위원은 2003년부터 여성위 소속 입법심의관으로 여성 정책을 법제화하는 일에 참여했다. 올해로 18년 째 젠더 관련 입법정책을 살피고 있는 차 수석전문위원을 만났다.

강의 현장의 여성정책에서 현실의 여성정책으로

차 위원은 서울대학교 가정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여성정책 전문가다. 여성정책의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일상에서 느낀 차별과 불평등의 벽이었다.

차 위원은 “그때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금보다 심했죠”며 “일상의 모든 제도나 관습이 남성 중심적이었고 그 규범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대학 교과목에 가사노동실습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대학 동기들이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는데 남성들과 동등한 동료로 대접받지 못했어요. ‘사내 가정주부’ 역할을 강요받으니 대부분 퇴사할 수밖에요”고 말했다.

차 위원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느낀 여성의 차별과 불평등을 법과 제도로 바꾸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전국을 누비며 여성학을 가르치는 시간 강사로 지냈다. 이후 대학 여성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03년 국회에 여성정책 전문가로 발을 들였다.

그는 “가부장적인 사회가 바뀌려면, 강의 현장에 있는 여성정책을 현실의 여성정책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다.

“여성가족부가 젠더 관점의 정책을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고용노동부가 전체 고용노동정책을 만든다면, 여성가족부는 여성경제활동지원의 콘트롤 타워가 돼야 해요. 여성의 노동 형태와 여성 일자리 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정책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성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나아질 수 있어요.”

20대 국회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으로 데이트 폭력 피해자와 정보통신망에서 젠더 폭력 피해자 등 여성폭력 피해자 전반을 지원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2018년 촉발된 미투 운동 이후 의미 있는 법안을 제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1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차인순은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홍수형 기자
11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차인순은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홍수형 기자

젠더정책 전문가 집중 양성해야

차 위원은 8개 부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이 본연의 목적으로 달성하려면 젠더 정책을 만들어 내고 잘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전문가도 늘어나야 한다고 봤다. 국회도 젠더 역량이 더 커져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총 19개 위원회 중 7곳에 입법심의관 8명이 있다. 이 중 여성은 1명에 불과하다. 전문위원은 20명 중 여성이 3명이지만 수석 전문위원 19명 중 여성은 차 위원 혼자다. 젠더 관점으로 입법 정책을 지원하는 전문가는 양적, 질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그는 “여가위에서 통과된 법안이 법제사법위로 넘어갔을 때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면 늘 아쉬워요. 법사위의 기능이 과도한 문제도 있고 아무래도 인식의 차이가 있어요”며 “국회 연수원에서 관리자 교육을 할 때 젠더 관련 강의가 들어가 있는데 부족한 면이 있어요. 교육 과정에 젠더입법정책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젠더정책 전문가 양성을 위해서는 대학 등 교육 제도 안에서 여성학, 법학, 행정학을 통합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정부 부처와 협의하며 입법 정책을 추진하려면 각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수다. 현재는 그런 작업을 해낼 통합적인 교육 프로세스는 대학에도, 정부에도 없다. 차위원은 은퇴 후 이를 담아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차 위원은 “젠더정책은 법률과 행정 그리고 예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젠더 관점을 담아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추상적인 주장에 그칠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기술기반 사회에서 일자리·성범죄 변화

21대 국회에서 주요하게 떠오른 젠더 정책 과제는 여성 일자리와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입법이다. 기술기반의 사회로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일자리의 형태가 바뀌는 가운데 여성이 처한 환경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새로운 형태로 광범위한 피해와 빠른 속도로 확대된다는 측면에서 시급하고 주요한 문제로 언급되고 있다.

차 위원은 “정책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기술기반 사회로 빠르게 바뀌고 있어요. 다양한 근로형태가 등장하고 온라인에서 여성에 대한 공격과 혐오는 커지고 있어요"라며 "21대 국회에서는 이 두 가지 축을 정확하게 읽고 문제에 대처하는 입법 정책을 강화해야 합니다”고 주목했다.

그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이 여성정책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여성정책 공약은 시대를 반영하는데 이번에는 ‘비동의 강간죄’ 개정, 불법촬영 등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 스토킹처벌 강화 등 여성 안전에 관한 정책이 공통 공약으로 나왔죠”며 “각 당이 공통으로 내건 공약은 입법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기대가 큽니다”고 말했다.

차 위원은 미투의 현장과 혜화역, 광화문시위에서 ‘여성에게는 국가가 없다’고 외치던 여성들을 잊을 수 없다.

그는 "국가가 없다고 외치는 이들에게도 '여성을 위한 국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 여성들에게는 함께 만들어갈 국가가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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