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바르는 천연 자외선차단제
미백 효과와 소염 효과까지

오랜 동안 미얀마를 다니면서 여성들이 대체로 날씬하고 특히 피부가 대단히 곱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마이쪼쪼(My Kyaw Kyaw) 군에게 그런 얘기를 하니 이 친구 왈, “맞습니다. 우리 나라 여성들의 피부가 세계에서 가장 곱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했다. 그는 미얀마 여성들이 어릴 때부터 얼굴과 피부에 바르는 타나카(Thanakha)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에 첫발을 디딘 다음 날, 숙소 가까이에 있는 새벽시장 골목을 구경했는데 대다수 여성들이 얼굴에 하얀 색, 혹은 베이지 색의 가루를 칠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양볼과 이마, 콧등에까지도 덕지덕지 밀가루를 바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참 신기했다. 

처음에는 불교와 관련된 일종의 주술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워낙 불교 신자가 전체의 90%에 육박하는 정도이니….

마이쪼쪼는 내가 종교의식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바로 타나카인데, 타나카는 천연 자외선차단제로서 피부보호와 미백효과, 그리고 소염효과가 탁월하다고 자랑했다.

얼굴에 타나카를 바른 타웅뛴지 마을 사람들. ©조용경
얼굴에 타나카를 바른 타웅뛴지 마을 사람들. ©조용경

 

그는 타나카의 효능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미얀마 여성들이 피부가 곱고 미인이 많은 이유가 바로 타나카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미얀마 여성들이 대체로 날씬하고 피부가 고운 건 인정을 할 수 있지만, 연예인처럼 예쁜 도시 여성들은 거의 타나카를 바르지 않고 다니는 걸 보면 타나카 때문에 미인이 많다는 얘기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고집을 부렸다. 

인레 호수 부근에서 만난 파오족 여성. ©조용경
인레 호수 부근에서 만난 파오족 여성. ©조용경

 

한번은 마이쪼쪼가 “미얀마 청소년들 얼굴에 여드름이 난 걸 보신 적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생각해 보니 청소년들 중에서 여드름 박사를 본 기억은 없었다. 그는 타나카가 소염작용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욱이라는 도시의 시장 상인. ©조용경
차욱이라는 도시의 시장 상인. ©조용경

 

양곤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인가? 중심가에 있는 고급 면세점 격인 ‘보조욱 시장’을 둘러 보았는데 넓은 시장 곳곳에 타나카 나무, 혹은 타나카로 만든 화장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있었다. 몇 군데 재래시장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부터 타나카 관련 상품을 파는 가게나 상인들, 그리고 얼굴에 타나카를 바른 여성들이나 어린 아이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사가잉 주 몽유와의 거리에서 따나카 나무를 파는 여인들. ©조용경
사가잉 주 몽유와의 거리에서 따나카 나무를 파는 여인들. ©조용경

 

타나카는 미얀마의 중부 밀림 지역에서 자라는 타나카 나무(Limonia Acidissima)에서 추출한다. 타나카 나무토막을 벼루처럼 생긴 평평하고 둥근 ‘차욱핀’(Kyauk Pyin)이라는 돌판에다 물을 뿌려 가며 갈아서 생성된 우유빛 혹은 베이지색 액체를 말한다. 특히 중부 지역의 바고(Bago) 주와 마궤(Magway) 주에서 자라는 타나카 나무의 품질이나 향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바고 주나 마궤 같은 곳에서는 타나카 나무를 대량으로 식재한다는 데, 수령이 35년 이상 된 나무가 효능이 좋다고 한다. 
 
자료들을 찾아보니, 타나카는 미얀마의 작열하는 태양광선, 특히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며, 강력한 미백 효과를 지니고 있어서 피부를 희고 매끄럽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또 모공수축 및 피부살균 효과가 크고 주근깨 제거, 심지어는 무좀 치료에도 효과적이라는 오래된 기록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항염(抗焰) 작용이 강해서 뾰루지나 여드름 치료에는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고 되어 있었다. 낮에는 타나카를 바르지 않는 도시의 여성들 중에도 피부 미용 효과 때문에 잘 때는 얼굴은 물론이고 팔과 다리를 포함한 전신에 타나카를 바르고 자는 여성들이 꽤 있다고도 했다.

만달레이의 수도원에서 구걸하는 어린 삼형제. ©조용경
만달레이의 수도원에서 구걸하는 어린 삼형제. ©조용경

 

실제로 타나카의 효과를 직접 체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2015년 4월, 미얀마의 새해맞이 축제인 띤쟌(Thingyan) 물축제의 현장을 보려고 미얀마의 중심 도시인 만달레이에서 3박 4일을 머물렀다.

미얀마는 설(4월 17일) 전후가 연중 가장 기온이 높은 시기인데, 그곳에 머문 둘째날인가는 오후 두 시의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어섰다. 가히 살인적인 더위였다. 그런 날 겁도 없이 반 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카메라와 물, 간식 등이 든 배낭을 메고 나가서 몇 시간을 돌아 다녔는데, 마침 호텔 로비에서 아가씨 둘이 사람들에게 타나카 크림을 발라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양쪽 팔뚝에다 타나카를 두텁게 발라 달라고 요청을 했다. 몇 시간 후 숙소에 돌아오니, 얼굴과 두 다리는 벌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쓰라림마저 느껴질 정도였는데, 타나카를 바른 두 팔뚝은 시원한 느낌마저 드는 게 아닌가.

타나카의 자외선 차단효과를 확실하게 체험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는 미얀마를 가게 되면 가끔씩 팔에다 타나카 칠을 한다.

만달레이, 신쀼 행사에 참여한 미얀마 남성. ©조용경
만달레이, 신쀼 행사에 참여한 미얀마 남성. ©조용경

 

미얀마 여성들이 타나카를 사용하기 시작한 역사는 거의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고 한다. 2세기 경에 존재했던 고대 도시국가 뻬익타노(Peikthano)의 여왕이 타나카를 애용했다는 내용이 그 당시의 시가(詩歌) 중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1930년 대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해 바고 시의 거대한 쉐모도(Shwemawdaw) 파고다가 붕괴되면서 파고다 아래에서 옛 벽화가 발견되었다. 그 벽화 속에 15세기에 그 지역에 존재했던 한타와띠(Hanthawaddy) 왕조의 공주가 타나카를 가는 데 사용했던 차욱핀(돌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도 한다. 

요즘도 미얀마의 대다수 서민들은 타나카 나무를 돌판에다 물을 부어 가며 직접 갈아서 사용하고 있지만, 최근 수년 이래로 이런 추세도 많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기존의 방법은 편의성을 추구하는 여성들이나, 급속하게 늘어난 외국 관광객들이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다. 타나카 역시 그런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어 로션, 파우더, 팩 등 일반 화장품의 형태로 다양하게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근래에 들어서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을 중심으로 타나카가 지닌 의약적 효능에 주목하는 경향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미얀마의 전통 의사들은 타나카가 피를 맑게 하며, 타나카 열매나 뿌리는 천연두나 홍역같은 열병과 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서양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타나카에 대해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가설들이 사실로 입증이 된다면, 타나카가 의약품으로 개발되어 요즘 유행하는 우한코로나 퇴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몇 년 전, 미얀마의 한 사업가의 사무실에서 알게 된 비서업무를 담당하는 당시 26세의 젊은 여성은 자신은 타나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릴 때는 엄마가 발라 주었는데, 요즘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자칫하면 타나카 가루가 옷에 묻기 때문에 직장에 출근하는 날은 바르기가 어렵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한 모델풍의 여성은 타나카를 사용하느냐고 물으니 “수입되는 화장품이 타나카보다 품질도 좋고 편리해서, 굳이 타나카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고 얘기했다. 미얀마에서도 전통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는 어러운 것 같았다.

네피도 교외의 논에서 모내기하는 여성 농민들. 이들의 하루 임금은 3달러이다. ©조용경
네피도 교외의 논에서 모내기하는 여성 농민들. 이들의 하루 임금은 3달러이다. ©조용경

 

그러나 일단 농어촌 지역을 가게 되면 경제력이나 낮은 생활의 질 때문에 고급 화장품 사용은 꿈도 꾸지 못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형태로든 태양 아래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그 여인들에게는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자신의 피부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 타나카를 바르는 것이다.

도시의 재래시장이나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여성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특히 가사와 육아, 그리고 고된 농사일 등 3중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농어촌 여성들의 가죽같은 피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농촌여성들이나 대도시의 서민층 여성들, 그리 고 그녀들이 안고 있는 어린아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얼굴 전체에 마치 흰 페인트 칠을 한 것처럼 하얗게 타나카 분말을 바르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서양의 브랜드 화장품들이 많이 들어온다 해도 미얀마에서 타나카가 쉽게 자리를 내 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노동력 제공자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날 만큼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기 전에는 타나카는 필수불가결한 전통화장품으로서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게 될 것 같다. 얼굴에 덕지덕지 타나카 칠을 한 농어촌 혹은 도시 서민층 여성들이 전통화장품으로서의 타나카를 애용하며, 보드랍고 새하얀 피부를 뽐내고 다니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