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오브허벌 멤버
포샤·아키나·리들

감추었던 모습 드러내
환영받는 공간 만들어
드랙공동체이자 대안가족

20일 서울 서대문구 여성신문에서 하우스 오브 허벌은 각자 다양하고 신나는 경험과 팝컬쳐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홍수형 기자
20일 서울 서대문구 여성신문에서 하우스 오브 허벌은 각자 다양하고 신나는 경험과 팝컬쳐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홍수형 기자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고정된 편견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살아간다. 눈물이 많고 여린 감성을 가졌지만 우는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중년 남자, 팔다리에 체모가 많지만 샤워할 때면 모두 깨끗하게 면도하는 젊은 여자. 모두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사회는 편견과 달리 낯선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서울 영등포구 한  드랙 무도회 행사 ‘허볼(Her Ball)’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모습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레즈비언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여자끼리 무대를 걸었고, 자신을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규정하지 않는 이는 과장된 정장 재킷을 입고 거만한 모습으로 거들먹거렸다. 사회에서는 숨겨야만 했고 허락되지 않았던 모습들이 무대에 고스란히 펼쳐졌고 편견 어린 폭력들이 비틀어졌다. 

행사를 준비했던 이들은 ‘하우스오브허벌(House of Herbal)’을 이룬 여성/비여성 드랙 아티스트(Drag Artist)들이었다. ‘하우스오브허벌’의 포샤, 리들, 아키나를 만났다. 포샤는 또 다른 맴버 아장맨과 함께 하우스 오브 허벌을 만들고 마더(Mother,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성소수자다.

“내가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게 하우스오브허벌이에요.”(포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진짜 가족,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들. 하우스오브허벌은 제게 그런 의미에요.”(리들)
“어떤 모습이든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인정해주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아키나)

하우스(House)는 199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성 정체성이 알려진 후 가족으로부터 내쫓겼을 때 이들을 받아주고 가족이 되어주었던 성소수자 문화를 말한다. 갈 곳 없는 성소수자를 받아주었던 마더(Mother)로 불리는 클럽의 호스트는 정기적으로 무도회(ball)을 열었다. 여기서 유색인종 성소수자들이 숨겼던 정체성을 드러내고 드랙을 하고 화려한 무대를 펼쳤던 것이 하우스 드랙문화의 시작이었다. 배제 되는 소수자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백인 동성애자 남성도 출입이 불가능했다. 

“과거 1990년대 볼 문화에서 주가 되었던 것은 리얼니스(Realness)로 불리는 분류였어요. 그 당시 유색인종과 성소수자는 회사의 임원도, 화장품가게 직원도 할 수 없었어요. 이걸 비꼬는 거에요. 임원 리얼니스라면, 겉모습과 행동은 기업의 임원처럼 꾸미고 걷고 행동하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드랙 아티스트는 그렇게 될 수 없죠. 그 무대에서는 가능하지만요.”(아키나)

지난 허벌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매년 열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오는 잡상인인 ‘물장수’로 분장한 소다라는 맴버였다. 퀴어문화축제를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날로 생각하는 성소수자들과 달리 돈을 벌 수 있는 평범한 날 중 하나로 생각하는 물장수로 분장한 성소수자 소다의 모습은 모두의 환호를 받았다. 

지난 8월 열린 허벌(Her Ball) 행사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일반(Realness) 부문 참가자 소다. 소다는 매년 여름에 열리는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오는 물장수로 분장했다. ⓒ하우스오브허벌
지난 8월 열린 허볼(Her Ball) 행사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일반(Realness) 부문 참가자 소다. ⓒ하우스오브허벌

 

드랙이라면 여성은 남성으로, 남성은 여성으로 분장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포샤는 여성이지만 여성으로 분장한다. 한때 포샤는 SNS에 드랙을 한 모습이 퍼지며 “페미니스트라면서 무대는 여성혐오적이며, 페미니즘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회가 규범적으로 받아들이는 성별 이분법적인 복장과 행동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드랙 문화가 알려지고서 오랫동안 따라붙은 논란이다. 

“저는 옷이나 개성 때문에 창녀나 걸레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성녀가 허구이듯이 창녀도 허구라는 것을 무대에서 보여주려고 해요. 사회에서 창녀나 걸레라고 손가락질 되는 옷과 행동을 해요.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해도 저는 창녀도 걸레도 성녀도 아니잖아요?”(포샤)

하우스오브허벌은 단순한 드랙 아티스트들의 공동체를 넘어 대안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집에 돌아온 사람이 가족들 앞에서 외출복을 벗고 편하게 늘어지듯 이들은 서로를 만날 때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생물학적 가족은 사실 서로 간의 합의나 그런 것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가족이잖아요. 저는 생물학적 가족이 나의 어떤 점들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요. 다만 거기에 꼭 갇혀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뿐이에요. 내가 선택한 사람들과,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포샤)

서로가 선택한 관계지만 고민도 많다. 단순한 가족놀이로 그치지 않기 위해 이들은 명절을 함께 보내는 시간을 꼭 갖기도 하고 서로와의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한다. 생물학적 가족 안에서도 오빠와는 친하지만 언니와는 서먹한 그런 관계들이 있다. 리들은 “혈연중심 가족에서 혈연가족이라는 말로 모든 차이를 없던 셈 치기도 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항상 타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더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인정하고 대화하고 고민하며 노력해요.”라고 말했다. 

이들의 공동체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지도 않고 배제적이지도 않다. 새로운 가족을 찾아 떠나는 사람에게는 그곳에서의 행복한 삶을 빌어주고 가족이 되길 원하는 사람에게는 모두의 합의를 거쳐 가족으로서 맞아준다.

하우스오브허벌은 앞으로도 계획이 많다. 가깝게는 여름에 열릴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있고 멀게는 12월 허벌 행사를 열 예정이다. 이밖에도 맴버 개인의 활동도 이어진다. 이들의 소식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hausofherbal)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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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 #아장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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