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0주 이후 낙태 금지하고
낙태 시술 의사 처벌하는 법안
상원에서 56 대 44로 부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나는 강력한 낙태반대론자(Pro-Life)"라고 했다. 그러나 "강간, 근친상간, 임산부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은 제외다"라고 조건을 붙였다. 사진은 16일 백악관에서 연설 중인 트럼프 대통령ⓒ【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대통령은 지난해 트위터에 "나는 강력한 낙태반대론자(Pro-Life)"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강간, 근친상간, 임산부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은 제외다"라고 조건을 붙였다. ⓒAP/뉴시스

 

임신 20주가 지나면 낙태를 금지하고 낙태 중 살아있는 아기를 살리지 않은 의사들을 처벌하는 법안이 미국 상원에서 표결에 부쳐졌으나 2월 25일 부결됐다. 가결에 필요한 60표에서 4표가 모자란 56 대 44로 부결된 것이다. 이 낙태금지법안(‘Born-Alive Abortion Survivors Protection Act’)은 산모의 생명이 위독하거나 성폭행에 의한 임신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경우에 낙태를 금지한다.

수전 콜린스 의원과 리사 머카우스키 의원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공화당 의원이 이 법안에 찬성했다. 민주당은 밥 케이시, 더그 존스, 조 맨친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버니 샌더스 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은 투표하지 않았다.

법안을 처음 발의한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의원은 “낙태 금지 기간을 임신 20주 이후로 정한 이유는 과학자들이 태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한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법안을 발의한 공화당 벤 새스 의원은 “이 법안은 낙태권을 제한하는 것과 관계가 없으며 단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법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abc뉴스(abcnews)에 따르면 법안이 부결되자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극좌 세력의 과격한 요구이며 대부분 미국인들의 상식에도 반하는 관점"이라며 민주당을 비난했다. 하지만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 대표는 "가짜이고 정직하지 못할 뿐더러 평범한 미국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는 극단적인 법안일 뿐"이라고 맞받아쳤다. 또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표결을 밀어붙인 이유는 미국 여성들에게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의 패티 머레이 의원은 "이번 법안은 헌법상에 규정되어 있는 안전하고 합법적이며 보호받을 수 있는 낙태 권리에 반하는 극우들의 전면적인 전쟁을 뜻한다”며 공화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 미국의 낙태 논쟁은 최초로 낙태를 합법화 했던 1973년 연방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의 영향력 하에 있다. ‘로 대 웨이드’란 임신한 여성 로가 낙태를 금지하는 주정부 법무장관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다른 주로 원정 낙태를 가는 비용을 청구하는 소송에서 법원이 로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다. 이 판결 이후 여성의 낙태 권리가 인정되어 현재 미국은 임신 20주 이후에도 부분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7개 국가 중의 하나가 됐다.

2015년에도 이번 법안과 비슷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태아 보호법’(Pain-Capable Unborn Child Protection Act)이 미국 하원에서 가결됐으나 상원에서 부결됐다. 이 법안은 낙태 시술을 한 사람에게 징역 5년형이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나 성폭행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만 경우에만 예외적 조항을 두었다.

법안은 부결됐지만 미국에서 낙태 논쟁은 다시 재점화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낙태에 대한 찬반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논쟁적인 쟁점이다. 2018년도 갤럽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의 48%가 낙태를 찬성한 반면, 48%가 낙태를 반대하는 등 찬성과 반대는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다만 로 대 웨이드 법안에 대해서는 64%가 이 판결을 뒤집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낙태 찬성론자들은 임신 20주 이후에 시행되는 낙태 숫자는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구트마허 연구소(Guttmacher Institute)의 통계를 인용한다. 또 낙태 시술을 하는 중에 유아가 살아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라는 점을 들어 낙태를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라는 말을 쓰지 않고 더 부정적 표현인 영아살해(infanticide)란 단어를 사용하여 낙태를 살인의 일종으로 본다.

미국 현지 분위기는 낙태 반대에 힘을 싣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낙태 권리를 지지하기도 했으나 낙태 반대로 입장을 바꾸고 낙태 반대 집회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Life)’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과 브렛 캐버노 대법관을 임명함에 따라 연방대법원 구성이 보수적인 대법관이 5명, 진보적인 대법관이 4명으로 보수쪽으로 추가 기울었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보수 성향의 판사들이 더 많은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번복하고 자신들의 편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수 성향의 일부 주들도 낙태 금지법 부활 시도에 가세하고 있다. 루이지애나는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진료소와 의사의 수를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상원에서는 낙태수술 시도 뒤에도 살아나온 태아에 대해 의료처치를 하지 않는 의사를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미주리주 주지사는 성폭행과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에도 예외를 두지 않는 낙태 반대 법안에 서명했고 조지아주 주지사 역시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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