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캣맘의 보통날]
겁이 많은 영역 동물 고양이
실종되면 찾아주는 탐정들

겁이 많은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집을 나서는 순간 위험이 도사린 남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혼비백산해 점점 집에서 멀어진다. 이런 고양이 세계에 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젠 당연하다 생각된다. ©KIM DAE JEUNG from Pexels
겁이 많은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집을 나서는 순간 위험이 도사린 남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혼비백산해 점점 집에서 멀어진다. 이런 고양이 세계에 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젠 당연하다 생각된다. ©KIM DAE JEUNG from Pexels

 

고양이 세계에도 탐정이 있다. 그들은 실종된 고양이를 전문으로 찾아준다.

고양이를 잘 모르던 시절에도 나는 이따금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지만, 늘 농담이겠거니 여겼다. 고양이를 알게 된 뒤 나는 세 명의 탐정을 불렀고, 만났다. 내가 입양 보낸 고양이들을 잃어버린 뒤 적극적으로 찾지 않는 입양자를 보다 못해 발을 구르다 못해 불렀다.

첫 탐정은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도봉산이 지척으로 보이는 주택가에 저녁 무렵 도착했다. 조끼를 입은 그의 등에는 ‘동물 사랑’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탐정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고자 하는 조수도 동행했다. 젊은 여성이었다. 그때 내가 찾던 고양이는 에이군이라 불리던 A였다. A는 우리 동네에 살았던 청년이 상추라고 부르던 길고양이의 아들이었고, 엄마가 독살당한 지 사흘 만에 구조되었다. 상추가 죽을 때 우리 골목엔 길고양이 대학살에 버금가는 독극물 살포가 있었다. 새끼들에게 젖을 물려 늘 허기진 어미들이 가장 먼저 죽어 나갔다.

어미들이 죽자 재개발 차익을 노리며 오래도록 비워둔 사직동 주택가에서는 대문 아래로 엄청나게 많은 아깽이가 울며 기어나왔다. 그때 굶주린 아깽이들이 자기 집으로 못 들어오게 하려고 삽을 쳐드는 사람들을 보고 기겁한 내가 구조(어쩔 수 없이)한 고양이들이 하도 많아서 알파벳으로 이름을 지었다. 에이군은 ABCD… 중 A였다.

고양이 순화의 귀재로 통하는 ‘모눈종이의 지붕 밑 다락방’이라는 곳에서 순화되어 그 사이트를 통해 입양된 녀석의 이름은 입양된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 구조된 냥들 중 에이만은 내가 직접 입양시키지 않았다. A가 유난히 애틋한 것은 녀석이 인천의 한 가정에 입양되자마자 파양되었기 때문이다. 입양처에 도착해 이동장에서 꺼내자 겁을 먹고 하악질을 하는 A에게 그 집 가장이 노발대발했고 곧바로 쫓겨왔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파양이었다. 고양이를 입양하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과정조차 몰랐던 그 집엔 이미 한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에이는 순화된 장소로 돌아갔다가 그곳에서 두 번째로 입양한 독신 여성이 잃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애잔하던 그 녀석을 찾는 데 입양자가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안달이 났다. 반려인이 초를 다퉈 찾아야 할(고양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찾기 힘들어진다) 가여운 A를 찾는 데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한 나는 용하다는 부산의 탐정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탐정이 도착했을 때 천신만고 끝에 에이는 집으로 들였지만, 단짝으로 지냈던 암컷의 행방을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나타난 탐정은 길가에 뒹구는 검은 비닐봉지 속까지 들여다보며 사라진 고양이의 동선을 눈으로 쫓더니, 어느 집 담장 위로 뛰어올랐다. 담장 너머로 사라졌던 그가 다시 담장으로 뛰어오른 뒤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집 담장 안에다 이 통덫을 놓으세요. 정확히 이 지점에요”

이미 그 통덫에는 다른 고양이들이 포획되었다 놓여나기를 수차례. 그가 가리키고 가버린 집 마당 안에서 과연 찾으려는 고양이가 포획될지 의문이었지만, 시킨 대로 통덫을 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A의 여친 고양이가 포획되었다. 반려인이 부르면 어디서든 꼬리를 치며 달려오는 개들에 비해 집 밖에서는 겁에 질려 눈 앞의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고양이들이란! 아무튼 내가 만난 첫 탐정은 제 몫을 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만난 탐정은 캔디를 찾기 위해 불렀다. 캔디는 우리 집에 자주 오던 친구가 입양했는데, 이사하는 소란 중에 놀라 달아났다. 캔디와 관련된 긴 이야기를 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러니 그 이야기는 미루고, 오늘은 ‘내가 만난 탐정’이라는 선을 넘지 말자.

우리 집에 세 번째로 들어온 복이(나에게 큰 복이 깃들기를 바라며 시 쓰는 친구가 고집스럽게 지어준 이름이다)와 자매였다. 복이와 캔디는 2017년 여름, 내가 밥을 주는 급식처에다 누가 갖다 버린 아깽이였다. 둘 중 캔디가 먼저 입양되었다. 캔디를 입양한 친구는 늘 같이 있던 자매, 다시 말해 복이가 위험이 도사린 곳에서 어떤 상태로 지내는지 자주 묻더니, 2018년 봄을 코앞에 둔 마지막 한파 때 입양하겠다며 구조해달라고 했다.

간식이라면 물불 안 가리던 복이가 의심에 찬 표정으로 간식을 마다한 채 포획틀을 등지고 멀어져갈 때였다. 떼지어 다가오는 들개들이 보였다. 다급해진 내가 “아가야! 야옹아! 제발 가지 마!” 하며 애타게 부르자, 복이가 되돌아와 천천히 포획틀 안으로 들어갔다. 포획틀 문이 닫히는 순간 인왕산에서 내려온 들개 떼가 그 지점에 도착했다.

낮에도 우리 골목은 물론,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광화문 광장까지 내려가 어슬렁거리는 들개떼를 없앨 수 없는 것은 동물보호단체들 때문이라고 한다. 들개를 포획하기 위해서는 마취총을 쏴야 하는데, 언젠가 한 마리가 깨어나지 못했고, 동물보호단체가 동물 학대라며 들고 일어서는 바람에 수많은 생명들이 들개에게 죽어가고 있다. 나는 우리 골목에서 들개 떼에게 물려 죽은 길고양이를 적어도 서른 마리는 보았고, 최근에는 사체가 훼손된 고양이까지도 보고 있지만, 동물보호단체가 제동을 건 들개 포획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사람이 물려 죽어야 해결”될 것 같다. 한번은 축구회관 근처에서 들개 뒤를 따라가는 경찰차와 119차를 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들개 때문에 신고가 들어와서 뒤를 따라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과연 그날 들개 뒤를 몇 미터나 따라다니다 돌아갔을까?

캔디를 찾기 위해 두 번째로 부른 탐정은 지금 널리 통용되는 캣맘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욕을 잘했고, 수많은 고양이를 집에 들인, 한마디로 기인이었다. 그는 고양이 박사라는 말을 들을 만큼 고양이를 잘 알았다. 하지만 그는 캔디가 사라진 현장에 나타나 반려인을 나무라는 데 급급해 정작 캔디를 찾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를 마냥 믿고 있을 수가 없어 경기도에 거주하는 다른 탐정에게 의뢰하자 그는 자신의 권위를 떨어뜨렸노라며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권위나 세우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고양이가 있는 에덴동산을 꿈꾸는 세 번째 탐정 역시 앞의 탐정들처럼 고양이 사랑이 대단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밥을 주는 장소에 수많은 품종 고양이들(벵갈 고양이까지!)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지금도 오드 아이와 샴 고양이, 러시안블루들이 와서 밥을 먹고 있는 것으로 봐서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나서 찾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고양이를 유기하기란 또 얼마나 쉬운가. 창문을 살짝 열어두기만 하면 호기심 많은 고양이는 제 발로 나간다. 우리 집 참깨도 택배가 왔을 때 삼중 문을 빠져나가 달아난 적이 있는데, 즉시 녀석의 탈출을 알아차린 내가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고민 끝에 제 놈을 구조해 살려준 나를 ‘병원에 처넣어 죽이려고 했다’고 믿는 듯한 녀석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사람이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들으면, 즉시 탐정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한다. 고양이를 찾는 데는 어떤 탐정도 우리보다 유능하다. 겁이 많은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집을 나서는 순간 위험이 도사린 남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혼비백산해 점점 집에서 멀어진다. 한마디로 호기심 많은 고양이들은 호기심 때문에 마지막 걸음을 떼는 존재이다. 그 때문에 안전한 집을 나가 길을 헤매다 죽는다. 이런 고양이 세계에 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젠 당연하다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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