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경의 미얀마 이야기] ②

 

2013년 8월 초순의 어느 무더운 밤, 양곤(Yangon) 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렸을 때 후끈한 열대의 밤바람과 함께 가장 먼저 나를 맞아 준 것은 하반신에 치마를 두르고 게이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공무원 풍의 남성들이었다.

지난 2016년 봄 '아웅산 수치' 여사의 민주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된 것처럼 양곤 공항의 모습은 완전히 새 단장을 했으며, 입국절차 또한 피부로 느낄 정도로 빨라졌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군사정권 치하라 그런지 입국 수속이나 짐 찾는 절차가 한 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길고 지루했었다. 그런 번잡한 통과의례를 마치고 공항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짐을 들어 주겠다는 사람, 택시가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 등 수많은 미얀마 인들이 앞길을 막아섰다. 그들도 한결같이 치마를 입고 있었다. 더러 사진을 통해서 보기는 했지만, 막상 수많은 남자들이 치마를 입고 설쳐대는 모습은 참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 왔다.

‘아! 미얀마에서는 남자들도 치마를 입는구나!’

미얀마의 시골 마을에서 만난 일가족, 다양한 롱지를 입고 있다. ©조용경
미얀마의 시골 마을에서 만난 일가족, 남녀 공히 롱지를 입고 있다. ©조용경

 

콩나물 시루처럼 붐비는 공항 앞 도로들 뚫고 차에 오르자 마자 마중 나온 미얀마 청년 ‘마이쪼쪼’(My Kyaw Kyaw) 군에게 치마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 치마가 바로 말로만 듣던 미얀마의 전통 의상 ‘롱지’(Longyi) 였다.

다음 날부터 미얀마의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는 과정에서 만난 남성들 역시 공무원이든, 기업인이든, 시장 상인이든 거의 예외 없이 롱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틈틈히 롱지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거듭했지만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마침내 ‘왜 미얀마 남성들은 하나 같이 저렇게 거추장스러운 복장을 하고 다닐까’ 하는 나의 병적인 탐구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실제와 상관없이 내 눈에는 롱지를 입고 다니며 화장실 같은 데서 수시로 매무새를 추스르거나 매듭을 다시 묶는 모습이 무척 번거로워 보였으니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 이후의 몇 차례 여행을 통해 미얀마 사람들에게 있어서 롱지는 우리나라의 남성 한복처럼 생활하기에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옷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얀마 중부의 세테인 마을 학생들. 녹색 롱지가 교복이다. ©조용경
미얀마 중부의 세테인 마을 학생들. 녹색 롱지가 교복이다. ©조용경

 

그 이후로 미얀마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 지식도 일취월장해서, 롱지는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입는 옷의 명칭이라는 것, 남자와 여자의 롱지는 모양이나 입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것, 남자가 입는 롱지는 빠소(Pasoe), 여자가 입는 롱지는 따메인(Htamain)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롱지를 입고 양곤 시내의 공사장으로 가는 인부들. ©조용경
롱지를 입고 양곤 시내의 공사장으로 가는 인부들. ©조용경

 

남자들은 청색이나 녹색, 회색 계열의 굵은 줄 무늬, 혹은 체크무늬가 있는 롱지를 즐겨 입는 반면, 여성들은 화려한 색상의 단색, 혹은 꽃무늬가 있는 롱지를 선호하는 편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또 대도시의 사람들은 대체로 길이가 길고 색상이 화려하며 값비싸 보이는 롱지를 입으며,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고 색상이 어둡고 칙칙하며, 천도 어딘지 모르게 싸구려처럼 보인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이나 우리나 결국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미얀마 학생들의 교복은 무늬가 없는 진한 녹색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것은 50년 이상 지속되어 온 군사 정권의 취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 롱지를 입기 시작한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정설은 없는 듯 하다. 어떤 이들은 약 2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롱지 비슷한 의상을 입기 시작했다고 얘기하지만, 19세기 무렵 인디아 남부지역으로부터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유래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인 듯 하다.

어쨌거나 롱지는 국가적인 공식행사에 나오는 대통령에서부터 시골 구석의 농부에 이르기까지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국민이 선호하는, 미얀마의 ‘국민 치마’라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얘기해도 무방할 것 같다.

롱지를 입고 행사장에 나온 테인세인 전 미얀마 대통령과 고관들. ©조용경
롱지를 입고 행사장에 나온 테인세인 전 미얀마 대통령과 고관들. ©조용경

 

롱지는 남녀 모두 공통으로 입는 의상이지만, 입는 방법에서 남녀간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남자는 넓은 원통형의 롱지 속에 몸통을 집어넣은 다음, 두 손으로 양끝을 잡고 옆으로 활짝 편다. 그리고는 왼쪽 부분을 배꼽 쪽으로 먼저 접고, 오른쪽 부분을 같은 방식으로 접은 다음, 배꼽 위 부분에서 끝부분을 속으로 감아 넣으면서 테니스 공 만하게 단단히 매듭을 짓는다. 이렇게 매듭을 짓는 과정이야말로 고도로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나도 두 세번 실습을 해보았는데, 매듭을 짓고 몇 발자국만 걸으면 자꾸만 풀어지는 통에 롱지 입어보기를 포기 해버렸다. 반면 여자는 롱지의 오른쪽 끝이 왼쪽 허리께로 오도록 몸을 감싼 다음, 허리 부분을 안쪽으로 말아 넣으면서 매듭을 짓는다고 한다. 롱지를 입을 때 보통 여성은 상의로 에인지(eingy)라고 부르는 밝고 화려한 디자인의 블라우스를, 남성은 깃이 없는 와이셔츠 비슷한 흰색의 셔츠를 받쳐 입는다. 남성들의 경우, 공식행사 같은 데서는 셔츠 위에 우리 한복의 마고자 비슷한, 흰 색의 ‘따익 폰’(Taik Pone)을 덧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공식적인 복장은 참 멋있어 보였지만, 그러나 불편한 점이 많아 보였다. 롱지는 양복을 입을 때처럼 허리띠나 지퍼, 혹은 단추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허리에서 포개진 부분을 바깥으로, 혹은 안으로 말아 넣고 매듭을 짓는 방식이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그 매듭이 헐렁해지거나 풀어지기 쉬운 구조이다.

그러다 보니 공중 화장실 혹은 거리의 후미진 장소에서 사람들이 뒤돌아선 채로 롱지의 매듭을 풀어서 활짝 편 다음 다시 허리에 휘감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종종 볼 수가 있다. 그건 배가 나온 사람이 수시로 허리띠를 풀고 흘러내린 바지를 추스린 다음 다시 허리띠를 조여 매는 행동과 유사한 것 아니겠는가. 우리 같으면 남 모르게 화장실에나 들어가서 할 일을 미얀마 사람들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뒤돌아서 태연하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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