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승소, 아방궁·종묘점거프로젝트
마땅한 승소, 아방궁·종묘점거프로젝트
  • 김영옥 / 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전임연구원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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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예술가 표현의 자유 공표한 최초의 사건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 종묘는 조선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이다. 전주 이씨 종친회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의 엄숙한 상징’인 이곳 50여 만 평의 공간에는 대략 80위의 왕과 왕후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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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26일 페미니스트 미술가 그룹 <입김>이 준비한 ‘아방궁-종묘점거프로젝트’는 행사 당일 전주 이씨 종친회의 방해로 티격태격하다 끝났다.

사진은 전주이씨 종친회에 의해 휘장이 뜯기는 모습.

종묘는 역사의 왜곡된 진행 흔적·페허의 알레고리
<입김> 사건은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한 계기

2000년 9월 26일, 한 떼의 여자들이 바로 이 ‘엄숙한’ 종묘 앞에 몰려들었다. ‘아방궁 - 종묘점거 프로젝트’를 막 실행시키려는 삼십대의 젊은 여성 예술가들, <입김> 팀이었다. <입김>의 ‘아름답고 방대한 자궁’ 설치·행위예술 프로젝트는 행사 당일 전주 이씨 종친회의 ‘방해 프로젝트’에 걸려 한바탕의 티격태격으로 끝났다가 한 달 후인 10월 26일 대학가 여성 문화활동가들의 신나는 공연까지 덧붙여진 눈물과 감동의 전시회-축제로 부활했다.

조선왕조의 성스러운 전통이 살아 숨쉬는 종묘를 ‘점거’한다는 것은, 그것도 여자들이 예술과 전위의 이름을 빌어 남세스러운 ‘자궁’이나 ‘질’을 설치하면서 점거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 못할 퇴폐라고 한탄하는 종친회 어르신들. 거기에 맞서 ‘입김’ 팀은 “예술이란 현실을 뒤집어보고, 질문하고, 사유하는 행위라고 믿는다. ‘종묘점거’라는 예술적 상상력을 용인하지 못하는 전주 이씨 종친회의 고답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창작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무력행사이며, 전 예술인의 창작에 대한 명백한 월권과 탄압이다”라고 주장했다.

9월부터 10월까지 지속되었던 이 ‘아방궁 사건’은 종친회의 극렬한 반발이 없었다면 요즈음 젊은 예술가들이 벌이고 있는 이러저러한 다양한 행사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방궁 프로젝트’는 종친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 상이한 해석학적 입장들이 일시에 가시성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어떤 경합의 장, 정치적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중앙에 놓여있는 것은 바로 ‘여자’라는 이름이다. 이미 그 구상 단계에서 예술적 아이디어와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의 지원금을 받으면서 준비된 ‘종묘점거프로젝트’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 시각으로 예술, 문화활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와 효과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아방궁’ 사건의 진행 과정은, 몇몇 여성 예술가들의 ‘가부장적 유교문화 뒤집기’라는 프로젝트에 종묘라는 특정한 역사공간이 선택된 것이 우연한 발상이 아니었음을 일깨우며 역사가 구성되는 시·공간이 어떻게 젠더화되어 있는가를, 그 역사의 시·공간을 채우는 문화유산이 어떻게 여전히 타자에 대한 정교한 배제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종묘는 더 이상 일반 시민의 ‘의식’ 속에서 생생히 살아 작용하는 역사적 상징물이 아니다. 시민들은 그들의 일상 속에서, 그들이 공들여 짜는 생의 시간표 속에서 종묘와 어떠한 방식으로도 관계 맺지 않는다. 한 민족의 면면한 전통과 문화의 생명력을 증거하는 상징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세워진 역사의 이면을, 그 왜곡된 진행의 흔적을 담고 있는 폐허의 알레고리로서 종묘는 오늘 그곳에 있다. 그러한 알레고리로서 종묘는 오히려 역사에서 지워져버린, 지금도 지워지고 있는 이들의 제거된 목소리가 뒤엉켜 있는 시민들의 저 ‘무의식’의 한 단면을 가리키고 있다.

<입김>의 ‘아방궁 - 종묘점거 프로젝트’는 너무나 굵게 강압적으로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지워냄으로써 바로 역사의 저 ‘숨겨지고 지워진’ 흔적들을 찾아내고자 한 시도였으며, ‘전주 이씨 종친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느닷없이 무감각해진 역사의식의 진공상태에서 튀어나온 저 ‘국가의 엄숙한 상징 지킴이들’은 시민들의 ‘무의식’ 속에서 기억되고 발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흔적들을 다시 한번 지독한 왜곡의 상태로 잘못 읽어버린 한 실 예인 것이다.

공간의 의미를 새로 새기는 것, 한 공간을 묶어두고 있는 과거의 의미망을 해체시켜 새로운 의미‘들’의 몽타주로 재구성하고, 또한 그럼으로써 이미 획일적으로 선점되어 버린 미래의 의미까지도 자유로운 가능성의 소망이미지로 해방시키는 것 - 이것은 사방에서 몰아치는 ‘포기하라’의 거센 강권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적 공동체의 미래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과제가 아닐까. 그리고 여자로서, 일인칭 화자로서 말하기를 선택한 여성 예술가들이야말로 이런 의미에서 가장 능력 있는 몽상가가 아닐까.

당시 ‘국가의 대리인’임을 자처하며 ‘아방궁 프로젝트’의 순조로운 실행을 방해한 전주 이씨 종친회의 행위를 두고 법원은 지난 6월 13일 드디어 ‘불법’ 판결을 내렸다.

아무도 함부로 ‘국가’를 대표할 수 없음을, 혹은 역으로, ‘국가의 대리인’ 자리가 합법이나 정의와는 무관한 자리임을 확인시켜 주는 판결이다. 3년 간의 긴 재판과정을 여성주의 문화·예술의 자긍심과 의지로 다져왔던 <입김> 멤버들에게 깊은 신뢰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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