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낳고 미세먼지 필터
생산직으로 재취업
밤늦게까지 일하는
동네 미용실 노동자의
일·생활 균형 지원책 시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한다. 마스크 가격이 오르고, 중국 상인들이 마스크를 사재기한다는 얘기들이 들린다. 사스, 메르스, 신종 코로나로 이어지는 호흡기 질환에 마스크는 필수가 되었다. 마스크 관련 기사들을 접하다 지난해 인터뷰했던 선영(가명)씨가 떠올랐다. 선영씨는 미세먼지를 거르는 필터를 만드는 회사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다. 그녀의 이력은 너무도 독특했다. 7년 경력의 미용사였는데 첫째 출산 후 일을 그만두고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할 일을 찾다가 필터제조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왜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지 않느냐는 나의 순진한 질문에 지영씨는 이분이 미용업계를 너무 모른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평소 밤 9시가 넘는 퇴근 시간에 주말이나 휴일에도 근무를 해야해서 아직 아이들이 어려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필터회사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건 아니다. 그녀가 일·생활 균형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말한 두 가지는 집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과 ‘9 to 6’로 정시퇴근이 가능하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사장님 부부가 좋으셔서 아이가 아프거나 하는 등 변수가 생기면 그런 것들에 대해 배려를 해준다고 했다. 지영씨의 직장은 최저임금에 식비 10만원이 다였지만 연 15일의 연차휴가엔 설연휴, 추석연휴 등이 모두 포함되어 오롯이 쉴 수 있는 날은 근로자의 날 뿐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일·생활균형할 수 있는 지금의 직장에 감사했다. 지영씨는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그때 다시 미용사로 취업할 거라고 한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2019년 남성 육아휴직자 현황을 발표했다. 민간부문 육아휴직자 5명 중 1명이 남성으로 남성 육아휴직자가 전체의 21.2%를 차지한다고 한다. 남성 육아휴직자 확대는 돌봄 책임을 남녀가 함께 가져가면서 가정 뿐 아니라 직장 조직을 성평등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다만 남성 육아휴직자의 56.1%300인 이상 대기업에 다닌다는 점이 안타깝다. 이건 비단 남성 육아휴직자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많은 연구자료들은 한국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이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의 경우 기업규모가 큰 곳에서 제도 도입 및 활용도가 높다고 말한다. 비정규직이거나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여전히 이용하기 어렵다. 노동자의 모성권과 부모권이 얼마나 좋은, 얼마나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느냐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사용률도 중요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복귀율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제도의 본래 목적은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재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복귀율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주로 공공부문, 대기업, 정규직 위주로 고용이 안정적인 곳에서 나타난다. 복귀율 만큼이나 중요한 복귀 후 고용유지율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들에 따르면 육아휴직이 여성의 고용연장에 효과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들이 주를 이룬다. 기업의 조직 운영 원리와 조직 문화는 변화하지 않았는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일을 하면서 돌봄을 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돌봄을 하라고 직장에서 분리하는 방식이다. 휴직 후 직장에 복귀하면 다시 매일같이 야근을 해야하고 언제 퇴근할지 모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누군가 아이를 대신 돌봐주지 않고서는 직장생활이 지속되기 어렵다. 여성이 임신·출산·육아로 인해 시장노동단절을 겪지 않는 방안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이용율과 함께 어떻게 하면 아이를 돌보면서도 일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방안 모색과 적극적인 실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미용사 선영씨가 출산 후에도 일을 지속할 수 있으려면 동네 작은 미용실의 미용사들도 기본적인 노동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모성권과 부모권 뿐 아니라 일·생활균형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보를 사업주와 미용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토대에서야 동네 미용실은 일·생활균형이 가능한 곳으로 조금씩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김양지영 여성학자
김양지영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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