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여성 여대에 가다
‘트랜스젠더’ 여성 여대에 가다
  • 진혜민 기자
  • 승인 2020.02.07 07:00
  • 수정 2020-02-07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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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정정 A씨 숙명여대 입학
“차별에 저항 vs 여성 영역 위협”
지지·반대 공방 확산
12일 숙명여대 게시판에 트랜스잰더 대자보가 붙어있다. ⓒ여성신문 홍수형 사진기자
6일 숙명여대 게시판에 트랜스잰더 대자보가 붙어있다. ⓒ홍수형 기자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자대학 입학이 처음 공개되면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젠더(gender·사회적 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법원에서 성별 정정을 허가받은 A씨가 숙명여대 법과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이 대학 학생들과 누리꾼들 사이에서 반대 여론이 등장했다. 학내 게시판에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반대한다’는 글이 잇달아 올라오며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았다. 입학처에 항의 전화를 하고 총동문회에 항의 이메일을 보내며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반면 숙명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을 환영했다. 이들은 2일 입장문을 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밝힌 A씨의 결정을 지지하며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결실에 축하를 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4일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자대학 입학 반대를 외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이날 성신여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 서울 지역 6개 여자대학 21개 단체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여대는 남자가 여자로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라며 “본인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여성 혐오 사회에서 여자의 삶을 알고 존중하기보다 여자들의 공간과 기회를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언니네트워크와 퀴어여성 네트워크는 5일 ‘우리는 계속 위협이기를 원한다’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내고 “‘하필 여대냐’는 질문이 여성 인권 운동으로 둔갑하는 초라하고 편협한 현실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폭력 및 성적 괴롭힘, 학대를 문제화하고 대책을 요구할 때,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분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는 자들에게 해명하지도 간청하지도 말자”고 했다. 이어 “그것이 사회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죽으라는 말과 과연 다를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덧붙였다.

12일 숙명여대 게시판에 트랜스잰더 대자보가 붙어있다. ⓒ여성신문 홍수형 사진기자
6일 숙명여대 게시판에 트랜스잰더 대자보가 붙어있다. ⓒ홍수형 기자

한국에서 성별 전환의 가장 분명한 표지는 주민등록번호의 변화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경우(MTF·Male To Female), 뒷번호가 2로 시작하는 주민 등록번호를 새로 받는다. 한 인간이 지닌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별에 대한 사회적 승인이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으로 전환하면(FTM·Female To Male) 첫 숫자가 1로 바뀐다. 이번 논란의 시발점이 된 A씨는 지난해 10월 법원에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 정정 신청이 완료돼 법적으로 분명한 여성이다. 이화여자대학교는 학칙 제14조 1항에서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을 “여자로 한다”고 명문화하고 있으며, 서울여대와 덕성여대도 각기 학칙 제 12조에서 “여성이라야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성신여대와 숙명여대, 동덕여대는 성별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다. 이러한 학칙에 따르면 A씨의 경우 입학에 문제 될 소지가 전혀 없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에 반대하는 여론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막연한 이질감과 혐오다. 또 다른 하나는 여성의 기준을 타고난 생물학적 기반에 두는 페미니즘 계열이다. 지난 4일 성명서를 채 택한 6개 여자대학 동아리 21개 가운데 11개가 래디컬페미니즘을 동아리 이름에 명시하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성별 변경은 성별로 인해 실질적 차별을 받는 여자들의 피해 사실을 흐리게 한다”며 △법원이 성별 변경 신청을 기각하고 △국회가 성별 변경 불가 법류를 제정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이 기존의 ‘여성 영역’으로 들어오는데 대한 최근의 논란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논의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현재 국내에서 성 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규모는 5만~25만명으로 추산되는데(<한국보건 사회연구>, 2015년 12월호) 국내 트랜스 젠더의 90%가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 전환(MTF)으로 막연히 추측되고 있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같은 소수자들로 묶인 여성들끼리 서로 대립하는 것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김 교수는 “우선 반대를 말하는 성명서 근저에는 여장남자의 침입 사건, 디지털 성폭력 등 ‘두려움’이 있다”며 “그러나 트랜스젠더 여성은 일반 남성과의 차이가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는 “트랜스젠더 여성은 자신을 정체화하며 소수자로서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야 한다”며 “두 그룹 모두 사회적 소수자성이 있는데 서로가 인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래디컬 페미니스트도 이들의 소수자성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트랜스젠더도 여성들의 공간 상징성 등 그들의 삶의 근간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대립구도는 평행선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에게는 여대가 공학보다 훨씬 안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김 교수는 “트랜스젠더 여성도 여대가 아닌 공학을 갔을 경우 남성에 의해 불법촬영의 공포를 느낄 수 있고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 잔혹성이 있다는 것이 인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결국 트랜스피플들이 인권 가시화를 하는데 있어서 여성들끼리의 대립 구도로 비춰 진다”며 “이 문제에서 또 조롱이나 훈수 둘 수 있는 위치는 결국 남성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는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여성 입학을 반대하는 혐오 논리의 종착점은 생물학적 본질주의”라며 “일상에서 트랜스젠더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응하고 이를 해결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논쟁은 올해 초에 발생한 이 두 사건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부터 우리가 일상에서 트랜스젠더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응하고 이를 해결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정신 및 행동 장애’로 분류했던 WHO가 30년 만에 이를 모두 삭제했다. 사진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상징하는 깃발(Transgender Pride flag). ⓒFlickr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정신 및 행동 장애’로 분류했던 WHO가 30년 만에 이를 모두 삭제했다. 사진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상징하는 깃발(Transgender Pride flag). ⓒFlickr

한국의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처음 트랜스젠더에 대한 법적 성별 변경이 이뤄졌다. 당시 대법원은 성전환자 성별정정 허가의 기준을 판례와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통해 △만 19세 이상의 행위능력자로서 △부모의 동의를 얻었으며 △전환된 성으로의 외부성기 성형수술 등을 포함한 ‘성전환수술’을 받을 것 등을 제시했다. 이 지침은 지난해 8월 13년 만에 개정되었는데, ‘부모의 동의서’가 빠졌다. 

우리나라의 성전환 기준은 성별 변경이 가능한 국가들 중 가장 엄격하다. 외부성기의 성형 수술이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11년 성전환자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생식능력 제거 및 ‘성전환수술’을 규정한 독일 성전환자법 조항에 대해 위헌판결했다.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에서도 이에 대한 법원의 위헌판결이 이어져, 성전환자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전환된 성에 부합하는 외부성기’를 갖출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해당 조항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외부 성기 수술을 국가의료보험체계에서 보장하는 방안과 성기 수술 없이도 성전환이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구별된다.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트랜스젠더의 성전환과 관련된 의료적 조처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 의료보험 체계에서 보장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캐나다·미국처럼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면 그들의 삶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2017년 한국 트랜스젠더 278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경험과 건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40% 넘는 이들이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고 밝힌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전환을 하는데)의료적 조처가 필수인 한국에서 가장 큰 장벽은 비용”이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한국에서 사회적 소수자 연구를 해왔고 수많은 관련 논문을 읽었지만 이런 수치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성기 수술 없이 성별 전환이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 성별 전환 조건이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자기결정권·행복추구권 등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가치들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바탕으로 한다. 박 변호사는 “성별 정정은 법원에서 이루어지지만 통일된 법률이 없어 가이드라인만 있는 상황”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외부성기 수술을 요구하지 않는 법원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법원들을 넓혀나가고 통일된 법이 없으니 불안정한 상태”라며 “(외부성기 수술 없이도 성별 정정이 이루어지도록)통일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운동단체를 통해 입장을 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쿄 분쿄(文京)구에 위치한 오차노미즈(お茶の水) 여자대학. 이 대학은 2020년부터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에는 모두 77개의 여자대학이 있는데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사진출처 일 NHK ⓒ뉴시스·여성신문
도쿄 분쿄(文京)구에 위치한 오차노미즈(お茶の水) 여자대학. 이 대학은 2020년부터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에는 모두 77개의 여자대학이 있는데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사진출처 일 NHK ⓒ뉴시스·여성신문

일본에서는 최근 법적으로 여성이 아닌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허용하는 여자대학이 생겨나고 있다. 국립대인 오차노미즈(お茶の水) 여대와 나라(奈良)여대는 호적상 남성이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올해부터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사립대인 미야이가쿠인(宮城學院)여대가 내년부터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인 학생의 입학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도쿄여자대학·니혼여자대학·쓰다쥬쿠(津田塾)대학·지쿠시죠가쿠인(筑紫女学園)대학도 트랜스젠더의 입학 허용을 검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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