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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영민>

우먼파워 우먼CEO 이영남

15년 전 아무런 기술 없이 집을 담보로 소자본 5,000만원에, 임대 공장에서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자본금 24억5천만원, 직원 수 180명을 거느린 어엿한 기업, 이지디지털을 이끌고 있는 이영남 사장. 또 한번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는‘끼있는 CEO’이영남 사장을 만났다.

“누구는 혼을, 누구는 상품을, 누구는 분위기를 팔지만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다는 이영남의 믿음을 팔죠”

1999년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힘없이 쓰러지고 있던 때. 오히려 대기업의 기술과 자본, 인재 모두 인수합병에 성공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벤처기업이 있었다. LG정밀 계측기 사업부를 인수한 서현전자. 서현전자는 LG의 기술력뿐만 아니라 인재까지도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우후죽순 생겨나 문을 닫는 당시 벤처기업 풍토에 성공사례를 남겼다.

대기업과의 인수합병 및 투자유치를 무리 없이 이끌어 낸 주인공은 누굴까? 1988년 창업이래 여성CEO로서는 유일하게 계측기 제조업체 분야에서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한 이영남(46)사장. 이 때 이사장은 (주)서현전자의 사명을 (주)이지디지털로 바꾸고 계측기뿐만 아니라 통신네트워크장비를 포함한 기술 제조업체로서 제 2의 도약을 시작했다.

지금은 자본금 24억5000만원, 직원 수 180명을 거느린 어엿한 기업의 사장이 된 이영남씨. 하지만 아직도 성공에는 목이 마르다. 이 사장은 최근 세계지도를 펼쳐들고 더 넓은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또 한번의 전성기를 꿈꾼다.

‘본 글로벌’여성친화적인 해외 마케팅

경제계 조찬 회의가 있는 날에는 새벽 5시부터 움직이는 이사장. 일주일을 통틀어 겨우 한 시간 짬을 내 지난 달 23일 오전 10시 기자와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매일같이 빡빡한 일정에 피곤할 법도 하지만 생기를 잃지 않은 그의 표정에서 젊음과 프로다움이 물씬 느껴졌다.

“남성 위주의 엔지니어 사업을 백그라운드 없이 혼자 억척스럽게 해나갔지만 크고 작은 인맥들, 특히 전자 쪽 인맥이 없어 힘들었죠. 내 후배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1988년 아무런 기술 없이 집을 담보로 소자본 5,000만원, 직원 40명을 데리고 임대 공장에서 사업을 시작할 당시 아무래도 가장 아쉬웠던 건 인맥이었다. 해서 2001년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에 취임되면서 여성 CEO들의 휴먼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을 제일 과제로 삼았다. 자사 경영도 힘든데 올해 다시 여성벤처협회 회장 역할을 연임하게 된 데도 여성 CEO들이 이영남 사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며 스스로도 ‘선배가 있어줬으면’하는 후배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들면서 기업에서는 여성친화적인 서비스가 요구됩니다. 때문에 여성 CEO의 탄생은 곧 국가 경쟁력이죠. 여성 CEO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끼리의 휴먼 네트워크 인프라와 여성기업을 위한 투자펀드, 해외마케팅 이 세 가지가 충분히 뒷받침돼야 합니다.”

요즘 이영남 사장에게 있어 해외마케팅은 중요한 화두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엔 투자를 받는 게 난관이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네트워크 없는 여성 벤처기업은 투자에서 늘 소외됐다. 투자유치를 위해서 마케팅은 필수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기업이 성장을 한 이후에는 단순 마케팅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보다 넓은 시장으로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육성을 통한 내부 역량을 키우는 데 관심을 모아야 한다.

7월 4일 이영남 사장을 주축으로 발족하는 ‘여성 CEO 해외마케팅 포럼’에서도 해외진출과 마케팅에 관한 공부와 공동협력 및 지원을 병행한다. 이사장의 주장은 ‘본 글로벌(Born Global)’이다. 인터넷 환경 구축으로 이제는 기업 태생부터 글로벌이어야 한다는 것. 포럼의 발족으로 서로간 해외 특수를 위한 마케팅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거라 믿는다.

이영남 사장은 끼있는 여자다. 술자리에선 분위기 메이커, 직장에선 믿음직한 상사, 회의테이블에선 대담한 공략가. 한마디로 사람을 다룰 줄 안다는 말이다. 때문에 기자들이나 기업인들 사이에선 여우(?)라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을 즐기면서 일한다.

IMF 당시 연쇄부도의 위기에서도 은행은 그에게 막힌 자본 줄을 돌려주었고 외국 바이어들은 선지급 후납품 조건으로 환률에서 오는 차익까지 선물했다. 그렇다면 그의 전략은 무엇일까?

‘끼 있는 분위기 메이커’의 행복전략

“믿음입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조신해서도 또한 너무 튀어서도 안 되는 게 이 바닥이죠. 하지만 일관되게 밀고 가야 할 것은 정확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누구는 혼을, 누구는 상품을, 누구는 분위기를 팔지만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다는 이영남의 믿음을 팔죠.”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주)광덕물산에서도 회장에게 충언할 기회가 있으면 서슴지 않고 나섰고 남들이 꺼리는 영업 일에도 과감히 소질을 보여 입사 6년 만에 회장으로부터 창업의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

가난한 홀어머니를 모신 2대 독자 남편 장형서(46)씨와 결혼해 지금껏 잡음(?)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도 가족에게 그의 전략이 통했기 때문이다. 손자를 빨리 낳아 시어머니께 안겨준 것도 남편을 되찾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 그의 귀띔. 시집 친척들을 자주 찾고 시어머니 친구 분들을 거의 매일 집에 초청해 그이들에게 안방까지 내 주었던 것도 시어머니의 대외적인 입지를 세우면서 안으로 고부갈등을 푸는 그만의 노하우라고.

어차피 엄마 손에서 크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면 외국에서 자립심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 지금은 미국 LA 현지 법인 대표이사인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살며 돌봐주고 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제 남편이죠. 저를 많이 이해하고 도와주잖아요. 예전에는 비즈니스를 위한 술자리에 남편을 가끔 불러냈어요. 내가 누굴 만나는지 알아야 남편도 저를 믿고 밀어주고, 바이어들 또한 제 남편을 알면 저를 더 믿어주더라구요.”

남편이 키 183cm, 몸무게 100kg, 게다가 호남형이라 든든하다고 자랑하는 이회장. 가끔 여자로만 바라보는 이들에겐 ‘이영남의 사업적 에너지가 남편이다’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또한 전략이다.

“사무실에 아주 불쑥불쑥 들어와요. 저희들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직원들 생일이면 직접 챙겨도 주시구요. 회의 때도 임원진만 참여시키는 게 아니라 대리급 팀장까지 참여시켜 발언권을 주죠. 그런 부분에서 아주 가까우세요.” 이지디지털 서울사무소 주민영 계장의 말이다.

감성적인 마인드는 여성 CEO의 강점

이회장이 IMF 위기를 맞을 때 은행에 내걸었던 조건도 직원들의 급여만은 책임져달라는 것이었다. 직원들과의 친화력은 차라리 융화와 가깝다. 아직도 기술적인 백그라운드가 없어 트렌드를 읽어나가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직접 먹을 것을 챙겨 연구소를 찾아간다. 아무리 바빠도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며 알아가는 기술적인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은 뭐니뭐니해도 호흡이 중요하다.

또한 그는 구매, 전산, 현장 등 직접 뛰어드는 스타일이다. 다양한 부문에서 실무경험이 많기 때문에 직원들이 하나 하나 단계를 밟아가기보다는 빨리 빨리 스킵해서 자신을 뛰어 넘어주길 바란다. 이 회장은 ‘CEO가 회사의 중심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자신이 최고’라는 마인드를 심어준다. 그것이 여성 CEO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강점이기도 하다.

“여성은 브랜드가 아닙니다. 그런데 가끔 상황이 불리할 때만 여성이란 이름을 들먹이는데 그건 쓸데없는 자존심이죠. 가끔 기자들이 남편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흥분하는 CEO들이 있는데요. 대답하면 되지, Why not? 일을 할 땐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일 해야죠. ”

여성이 가지는 장점을 발휘함과 동시에 여성이 가지는 위크 포인트는 빨리 고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는 남녀를 구분 짓는 세계가 아니니까.

“제 삶이 로맨틱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요즘 TV 드라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최근에 <아내>하고 <노란 손수건>이란 드라마가 있죠? 가끔 시간이 나면 그런 걸 보면서 인생이나 애정에 관해 대리만족을 느끼는데, 참 좋아요. 그러면서 나만의 릴랙스한 시간을 가지고.”

비즈니스는 여성의 감수성을 드러내기에는 아직은 거친 땅이다. 드라마 볼 시간이 있으면 긴장해서 경제뉴스를 봐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영남을 아는 사람에게서 아직까지 사막의 기운을 느낀 사람은 없다. 언젠가는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노인들을 위해 사회복지사업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그다.

연간매출 300억,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이지디지털. 이지디지털을 움직이는 이영남 회장실을 나서며 눈에 띈 데스크 톱 화면에는 아들과 딸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떠 있었다.

이영남 사장 약력

▲1981년 동부산대학 졸업 ▲1981년 (주)광덕물산 입사 ▲1988년 (주)서현전자 설립 ▲1999년 현재 (주)이지디지털로 사명 변경 ▲1999년 한국여성벤처협회 부회장 취임 ▲2000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수료 ▲2000년 한국벤처기업대상 철탑 산업 훈장 수상 ▲2001년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 취임 ▲2003년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 취임 ▲2003년 여성 CEO 해외마케팅 포럼 회장 선출

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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