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정당에 여성 진입한다고
이 여성정치인의 정치가
대안정치가 될 수 있을까?

 

여성정치의 역사가 여성정치인의 역사일까? 여성정치인은 해방 이후 정부 수립을 위해 구성된 과도입법의회에서부터 있어왔고 20대 국회에는 51명의 여성의원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의 존재가 여성정치의 역사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여성정치인의 수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고자 교육을 하고 선거제도를 바꾸고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고 할 수 있는 모든 활동들을 “여성정치의 이름으로” 해왔는데 지금 와서 드는 이 뜬금없는 질문의 정체는 뭘까?

운동으로서 여성정치, 국민의 대표로서 여성을 세우고 그 여성을 통해 여성의 이해와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여성정치는 대안정치였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적 공간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여성들을 정치적 주체로 만들어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던 정치, 그리고 분열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공존을 추구했던 정치, 그것이 바로 여성정치였다. 대안정치로서 여성정치, 그것은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여성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대안정치로서 여성정치운동은 30년 전 지방자치의 부활과 함께 시작했다. 지방자치의 부활은 대통령직선제와 더불어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거둔 성과이었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지방의회가 해산된 지 30년 만에 1991년 3월 26일에는 광역의회선거가 그리고 6월 20일에는 기초의회선거가 실시되었다. 여성정치는 생활정치와 풀뿌리민주주의의 담지자로서 여성의 참여를 주장하였다. 물론 선거결과는 0.9%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광역의회의원 866명 중 8명, 기초의회의원 4303명 중 40명이 당선되는데 그쳤다.

이처럼 새롭게 열린 정치공간에 대한 희망으로 도전했던 여성정치운동은 참담한 결과를 맞이해야 했지만 두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공천 거래와 한도 없는 선거비용 등 비민주적인 선거제도의 개혁 없이는 여성정치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과 적극적 조치의 필요성이었다. 그 후 30년 동안 여성단체는 여성정치인 발굴 및 유권자의식 교육과 더불어 선거공영제, 정당민주화, 그리고 적극적 조치로서 여성할당제 도입을 목표로 정치제도개혁 운동을 추진했다.

1995년 선거공영제, 후보자 공천 과정, 선거비용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이 개정됐고 여성할당제 도입을 위한 범여성운동이 추진된 지 10년만인 2004년 비례대표 50%, 지역구 30% 여성할당제의 도입 하에 첫 번째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3%로 두 자릿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현재 여성 국회의원 17%, 광역의회의원 19.4%, 기초의회의원 30.8%로 여전히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치이긴 하나 여성정치는 여성정치인의 수적 증대를 통해 대안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전략은 앞으로도 유효할 건가? 기성정당 안에 여성을 좀 더 많이 진입시킨다고 해서 그렇게 들어간 여성정치인의 정치가 대안정치가 될 수 있을까? 역대 가장 많은 여성국회의원이 활동하고 있다는 20대 국회는 과연 2018~2019년의 #미투 운동과 혜화역 시위를 통해 터져 나왔던 여성들의 요구에 얼마나 반응했던가? 호떡집에 불난 듯이 호들갑을 떨며 입법 발의안들을 내놓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여성정치인의 수는 늘었어도 여성과 젠더 의제는 여전히 마이너다.

이제 여성정치는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동수민주주의와 여성주의 가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여성/여성주의정당을 통한 정치라는 새로운 전략을 숙고해봐야 한다. 여성은 다양하다. 그 다양함은 가치와 비전, 세대와 연령 등 차이들에 기인한다. 다양하기에 하나의 광주리에 담는 것이 깨질 위험이 높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광주리에 담긴 여성들의 힘은 강해진다. 기성 정당 내의 소수자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다양한 여성과 다양한 여성주의가 함께 하는 독자적인 정치공간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렛대가 필요하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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