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방법원 앞 양육비 제도 개선 촉구.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수원지방법원 앞 양육비 제도 개선 촉구.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아이들의 생존권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명예보다 우선시한다는 판결이 지난 15일 나온 가운데 양육비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혼 뒤 아이 양육비를 주지 않는 과거 배우자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사이트인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의 사이트 관계자에게 법원이 지난 15일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공공의 이익 실현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활동을 하면서 대가를 받는 등 이익을 취한 적이 없고, 대상자를 비하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다수의 관심대상이 되고 있고, 문제 해결 방안이 강구되는 상황”이라며 “피고인의 활동은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다수의 양육자가 고통 받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아이들의 생존권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명예보다 더 우선시한다는 판결로 인해 양육비 문제에 대해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는 이번 무죄판결을 환영하며 ‘변호인단·양육비해결총연합회’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 이하 12명의 배드파더스 변호인단은 이번 판결의 결과를 매우 환영하며 “특히 재판부가 양육비 문제를 공적 문제로 보고, 양육비 채무의 불이행이 결국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단순한 금전채무 불이행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음을 명확하게 확인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둔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부모들은 양육비 수혜에 있어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조사대상 이혼·미혼 한부모 2039명 중 양육비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3.1%에 달했다. 최근까지 정기지급을 받은 경우는 15.2%였다. 또한 조사대한 한부모들은 자녀양육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양육비·교육비 부담’이라고 응답했다. 한부모 양육비 관련 법적 대응 경험도 7.6%로 낮은 수치였다.

OECD 주요 국가들의 경우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국민이 알아야 할 국가적 문제이자 공적 관심 사안으로 보고 강력한 제재 조치를 두고 있다. 국가 발급 면허증 및 여권 취소 등 행정조치에서부터 기소 및 구금, 징역형 등 형사조치를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양육비 대지급 제도 운용을 통해 국가가 먼저 나서 아동빈곤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는 개인의 행위가 국가 의존적인 피부양자를 발생시킴으로써 결국 국가 재정을 위협한다는 인식 아래, 미성년 자녀를 유기하거나 부양을 거부하는 행위를 형사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미국 아이다호 주에서는 14년형까지 선고되는 중범죄이다. 미국은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위치탐색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양육비를 체납 중인 비양육 부모의 여권발급을 거부하고 있다.

캐나다도 양육비를 지속적으로 체납하는 비양육 부모에 대해 여권을 비롯한 각종 면허 발급 거부 규정을 두고 있다. 독일은 양육비 미지급이 지속될 경우 최장 3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15000유로(한화 약 1900만원)의 벌금과 징역 2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오스트리아는 부양의무위반에 대해 최소 6월부터 최장 3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스위스는 최소 3일에서 3년까지 징역형 선고가 가능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양육비 이행 강화 방안: 운전면허 제재 관련 미국 사례 분석’을 제목으로 한 양육환경 개선 보고서 (4)를 작년 12월 2일 배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양육비 이행률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양육비이행관리원이 개입해 양육비 이행 확약을 받은 경우에도 양육비 이행률이 2018년 기준 32.3%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비율은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는 2014년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이용률은 높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양육비이행관리기관이 법률 소송과정을 지원할 뿐 직접적인 양육비 회수나 전달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에 작년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희경·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이 양육비 지급 불이행에 대해 일부개정법률안 및 대표발의를 통해 방안을 제시했지만 현재 계류 중이다.

한편 배드파더스 대표 구본창씨는 WLK(WE Love Kopino)라는 단체에서 필리핀 코피노들의 양육비 청구소송을 돕는 일을 해왔다. 한국에서도 양육비 미지급 실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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