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용 재킷에는 흔하지만
여성 옷에선 보기 힘든 주머니
단지 성별에 따라 제품·색깔
구분하는 행위는 차별이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여성신문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여성신문

 

“제가 이렇게 인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를 때는 꼭 여성가족부 서명이 적힌 연설문을 들고 오르는데요. 남성 연사들은 빈 손으로 가볍게 연단에 오릅니다. 그리고는 꼭 속주머니에서 연설문을 꺼냅니다. 그러나 제 옷에는 아직 속주머니가 없습니다. 미세한 영역에 있어서도 성 구별이 남아 있습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5일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 준비한 환영인사 원고를 들고 이렇게 말하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일상에서도 여전히 성별에 따라 구분하거나 차별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여성가족부 장관의 뼈 있는 이야기였다.

이 장관의 말처럼 여성복 재킷에는 안주머니가 없는 경우가 많다. 안주머니는커녕 주머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막혀 있거나 손가락 조차 넣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장식용 주머니가 달린 옷도 많다. 반면 남성복 외투 대부분에는 안주머니가 달려있다. 양쪽에 모두 달려있기도 하고 펜을 꽂을 수 있는 주머니까지 따로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남성 옷에는 흔한 안주머니가 여성 옷에는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에서는 17세기 후반부터 남성용 바지에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주머니가 달렸다. 반면 여성 옷에 주머니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00년이 지난 18세기 무렵부터다. 당시 주머니는 복주머니 형태로 허리에 따로 차는 형태였다. 19세 초 손에 드는 핸드백이 널리 퍼지면서 그마저도 자취를 감췄다. 여성의 몸선을 드러내는 옷이 유행을 타면서 주머니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온라인에서는 “여자 옷에도 안주머니를 달아달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장식용 가짜 주머니가 아닌 남자 옷처럼 실용적인 주머니를 만들어달라는 당연한 요구다. 여성들의 요구를 반영해 일부 의류 회사에서는 여성용 재킷에도 안주머니를 만들고 성별 구분이 없는 공용 옷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은 반갑다.

아직도 남자 화장실에는 아기를 위한 기저귀 교환대가 없고, 임신부를 배려하는 지하철 좌석은 늘 분홍색이다. 홈쇼핑 방송에서도 여성 쇼호스트는 고기를 썰고 요리를 하지만 곁에 서 있는 남성 쇼호스트는 여성이 만든 음식을 맛본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아직 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가득하다.

지난해 3월 14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핑크 노 모어’ 캠페인 출범 기자회견에서 어른들과 사회가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여성신문
지난해 3월 14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핑크 노 모어’ 캠페인 출범 기자회견에서 어른들과 사회가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여성신문

 

최근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색깔 등에 따라 여아용과 남아용 제품을 구분하는 것이 영·유·아동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성차별적인 제품의 유통 행태를 시정해달라”는 진정을 냈다. 2020년 인권위에 접수된 1호 진정이다. 이들은 “분홍색 제품은 여아용, 파란색 제품은 남아용으로 소개하는 등 성별 따라 제품을 구분하는 것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인권침해”라며 “세상에는 여자 것도, 남자 것도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더디지만 이 오래된 틀에 미세한 금이 가고 있다. 균열을 내는 이는 인권위에 진정을 넣은 여성처럼 결국 평범한 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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