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감정노동·임신·비혼으로 본 한국사회
성폭력·감정노동·임신·비혼으로 본 한국사회
  • 김진수 기자
  • 승인 2020.01.23 14:22
  • 수정 2020-01-23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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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집 『여자는 울지 않는다』 펴낸
극작가 이보람·이연주·이오진·신효진
성폭력 피해자부터 비혼 노인까지
현실 속 여성들이 느낀 폭력·
노동·고통 등 고스란히 담아내
『여자는 울지 않는다』에 자신의 희곡을 담은 네 극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신효진, 이보람, 이오진, 이연주 극작가(왼쪽부터). ⓒ여성신문
『여자는 울지 않는다』에 자신의 희곡을 담은 네 극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신효진, 이보람, 이오진, 이연주 극작가(왼쪽부터). ⓒ여성신문

성폭력의 상처를 안고 살고 감정 노동에 번번이 스트레스 늪에 빠진 콜센터 직원, 원치 않은 임신에 불안해하고, 비혼의 삶을 선택하는 누군가의 이야기, 이 모든 것은 보편적인 이야기다. 나의 가족, 친구, 지인까지 모두 겪는 이야기들이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네 편의 창작 희곡이 한 권의 책에 묶였다.

희곡집『여자는 울지 않는다』은 이보람, 이연주, 이오진, 신효진 네 명의 여성 극작가가 쓴 희곡 4편을 묶었다. 현재 대학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극작가들이다. 이 책에 실린 희곡들은 무대에 올라간 작품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다. 공통점은 있다. 발화자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여성의 문제를 끄집어내 소수자의 문제는 보편화했다.

『여자는 울지 않는다』는 각각 성폭력(‘여자는 울지 않는다’)과 감정노동(‘전화벨이 울린다’), 임신과 결혼(‘개인의 책임’), 비혼과 노년(‘밤에 먹는 무화과’)이라는 주제로 한 희곡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녹여낸다. 어딘가에서 한 번씩 마주했을 법한 이야기들이지만 희곡을 읽는 순간 현실인지 픽션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상상력을 피우게 한다.

10일 만난 4명의 극작가는 여성의 이야기가 함께 묶인 것에 의미를 뒀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하나로 됐다는 것 자체만으로 힘이 됐다는 것이다.

‘개인의 책임’의 이오진 극작가는 “2019년에는 여성 서사의 맥락이 생겼다. 예전에는 개별적이었다면 이제는 큰 맥락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 동안에는 각각의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달라진 시대 속에서의 같은 흐름을 탄다는 의미다.

시대적으로는 미투 운동이 불었다. 그 이전에 문화예술계에는 SNS에서 ‘#00_내 성폭력’ 고발이 일었다. ‘밤에 먹는 무화과’의 신효진 작가는 “제 작품은 아직 미발표이긴 한데 여성극작가들이 여성이 주인공인 희곡들이 (책으로) 큰 맥락에서 이야기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4~5년 전과 비교하면 대학로에 여성 극작가들이 늘었다고 했다. 이연주 극작가는 “2014년에는 젊은 여성극작가가 많이 없었다. 오래 못 간다는 경향이 있었다. 출산의 문제도 있었고 어떤 시스템 안에서 버텨야하는 것도 있었다”고 했다.

이보람·이연주·이오진·신효진 지음/제철소/1만 6000원.
이보람·이연주·이오진·신효진 지음/제철소/1만 6000원.

2013년 데뷔한 이보람 극작가는 “데뷔 했을 때만 해도 여자 선배님이 없었다. 결혼하고 사라진 선배들이 많았다. 문예창작학과에는 여자 비율이 훨씬 많은데 ‘이상하다. 유명한 사람은 왜 남자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 5년 사이에 여성 극작가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여성의 이야기는 더 많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연극계에서 좀 활동한 이보람, 이연주, 이오진 작가는 선배 여성 극작가들로부터 여성이 주인공인 희곡을 써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받았다. “여성 서사가 아직 낯설고 새롭다고 생각해요. 연극에는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가 진입하기가 상대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괜찮아요. 관객에게 많이 열려 있습니다.”(이보람)

표제작인 ‘여자는 울지 않는다’는 심리 상담소 원장인 주인공 여성의 이야기이다. 성폭력 가해자로 의심받는 남편과 과거에 자신에게 상담을 하러 온 성폭력 피해자를 떠올리며 혼란에 빠진다. 사실은 주인공도 어릴 적 의부에게 성폭력을 당한 아픔이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말해도 신뢰하지 않고 대처해주지 못하는 사회 현실을 빗댔다.

이 희곡을 쓴 이보람 작가는 대학교 때 1년 동안 성폭력피해지원센터에서 봉사를 했다. “피해자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처벌이 끝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해요. 사건 이후에 피해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한데 말이에요. 특히 성폭력은 드러내기 힘든 상처잖아요.”

2015년 초연됐을 때만 하더라도 여자 관객들은 공감했지만 남자 관객들은 “이게 무슨 이야기냐”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미투가 터지고 나서는 ‘지금 공연하면 다르게 읽힐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자는 울지 않는다’는 19일까지 무대에서 또 한 번 공연했다. “이번에는 여자 이야기라서 보러 온 관객이 많아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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