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지원 세이브앤코 대표
세이브앤코, '섹슈얼 웰니스' 강화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 없애
여성이 유해성분 약42배 흡수

박지원 세이브앤코 대표.ⓒ세이브앤코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성생활을 이야기하기엔 불편한 주제다. 여성이 데이트 시 성관계나 콘돔, 피임을 얘기하는 순간 ‘밝힌다’ ‘헤프다’ ‘문란하다’ 등 수식어가 붙는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한국에서 성은 남성들의 전유물로 남성이 콘돔을 주로 구매하고 소비한다. 여성은 남성이 구입하는 ‘초박형’에 피임을 의지하는 수준이다. 이런 한국 사회 풍조에서 여성의 성에 담긴 편견을 뒤집겠다는 섹슈얼 웰니스(성적 건강) 브랜드가 나와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지원(35)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 디자인 대학 조교수는 2018년 2월 세이브앤코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여성의 건강에 중점을 둔 콘돔을 만들고 있다. 세이브 제품은 출시되자마자 석 달간 1억5000만원 판매고를 올렸다.

2018년 9월 론칭한 세이브는 지난해 9월 여성기업과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세이브앤코는 어떤 회사인가.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브랜드다. 여성의 성생활과 여성 건강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다. 여성에게 좋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 힘쓰는 회사로 전직원이 여성이다. 세이브(SAIB)는 편견(BIAS)를 거꾸로 뒤집은 이름이다.”

세이브를 창업한 계기는.

“콘돔은 수 십년 간 품질 면에서 남성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보수적으로 발전해 왔다. 알려진 정보가 없거나 남성 위주 소비자이기 때문에 제조사들이 안전한 성분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유해한 성분이 많이 들어간 콘돔이 시중에서 판매 중이지만 알고 있는 분이 많이 없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창업했다. 성병과 원치 않는 임신, 성관계를 안 할 권리 등 한국 여성이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그 문화를 바꾸는 데 앞당기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첫 제품으로 콘돔을 기획, 만든 의도가 궁금하다.

“국내서 여성이 성을 이야기하거나 피임에 대해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분위기다. 성에 무지한 것을 미덕처럼 여긴다. 미국에선 나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데도 성에 무지한 것은 창피한 일이다. 교수 부임 후 사회적 인식 개선, 공공캠페인 등 비영리목적의 ‘문제 해결 방안’을 가르치는 ‘사회적 디자인 수업’ 첫 시간에서 한 여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이 문화적 충격을 줬다. 그 여학생이 학교 보건소에서 무료 콘돔을 대량 수집해 금요일 밤 축제 현장에서 나눠주는 ‘세이프 섹스 존’을 운영하고 그 반응을 찍은 다큐멘터리였는데 수업에서 의견을 내야 하는 제 얼굴이 빨개져 성문화, 성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콘돔이 남성용 성인용품으로 분류된 것도 놀랍지만 여성에게 유해한 성분이 있다는 것인가.

“여성의 몸에 들어감에도 콘돔들이 별다른 정보 공개나 제재없이 팔리고 있다.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성분은 니트로사민(2급 발암물질)으로 라텍스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이다. 니트로사민은 아기 젖꼭지와 아이들 장난감에서 발견됐을 당시 크게 이슈화된 적 있다. 콘돔에는 안전 기준 없이 니트로사민이 발견된 제품이 대다수다. 부가적으로 남성의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 넣은 각종 화학 자극제와 색소, 향료 등 좋은 것이 거의 없다. 살정제인 노녹시놀-9, 사정을 지연하게 만든 마취성분인 벤조카인 등이 들어있다. 콘돔이 남성에게 피부에 묻어 닦아내는 정도라면 여성은 장기에 닿아 약 42배 정도 유해 성분이 더 흡수된다. 입으로 먹는 것보다 질 내부로 들어가면 신진대사 등 장치가 없어 치명적이다. 콘돔 유해 성분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2019굿디자인 어워드’ 국무총리상 수상 등 15개 디자인 어워드 수상한 세이브 파우치 세트. ⓒ세이브앤코

 

여성이 선택하는 콘돔 시장이 뚜렷하지 않다. 성인용품 사업을 하기에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남성이 구매하는 시장에서 사업이 될까란 우려가 많았다. 시장 자체가 남성 편향적으로 형성돼 여성 입장에서 여성 목소리를 강하게 내야 했다. 온라인 고객들을 분석해보면 남녀 비중이 반반이다. 남성들이 배려하는 마음에서 구매하고 있다.”

세이브 프리미엄 콘돔이 ‘2019 굿디자인 어워드’에서 국무총리상 등 국내외 15개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시각 디자이너인 박 대표가 디자인에서 가장 중점을 둔 사항은.

“전체 경험을 염두했다. 실제로 여성이 구매까지 가는 과정이 어려웠다. 콘돔을 구입하러 간 여성이 남성이 선호하는 형태인 콘돔을 손으로 집어 계산대에 가져갈 때까지 꺼려질 정도다. 밀어내는 역할을 디자이너가 하고 있지 않는가란 생각이다. 최대한 여성들이 구입하고 소지하는 데 거리낌 없게 하는 것을 목표로 화장품으로 보이도록 했다. 틴케이스 사용이 그 예다. 콘돔인 줄 모르게 하면서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남성들이 지갑 속에 콘돔을 가지고 다니면 ‘매너남’이라고 듣지만 실제로 잘못된 습관이다. 얇은 콘돔이 눌리거나 긁히면 마찰이나 압력에 쉽게 손상이 된다. 보관까지 고려했다.”

박 대표는 제품 수익 중 성평등과 여성권리 강화를 위해 기부하고 있다. 추구하는 목표는.

“상품 수익의 10%로 캠페인 상품을 만들고 발생한 수익을 모두 기부하고 있다. 여성이 성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성생활을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인식을 바꾸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이달 중 피임이나 성건강 정보, 젠더 이슈, 젠더 방향성, 독자들 고민 상담 등을 담은 콘텐츠를 블로그 형식, 웹사이트로 제공할 예정이다.”

다른 신제품 출시 계획.

”콘돔을 먼저 출시한 것은 시급하고 상징적이기 때문이다. 여성 생식 건강에 관련된 다양한 제품들을 준비 중이다. 여성청결제와 러브젤, 프로바이오틱 성분이 함유된 유산균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강조할 한마디.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주도권을 갖는 건강한 성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 이야기를 하기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아 어려울 수 있다. 오픈된 마인드로 여성들이 많이 동참해주셨으면 한다.“

세계보건기구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60% 이상은 어떤 종류의 피임을 하지 않고 남성에 피임을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콘돔 사용률은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11.5%(2015년 기준)이다. 한국 여성의 콘돔 구매율은 약 20%로 미국 여성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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